제품 안전 보고의 타이밍이 기업의 운명을 가른다

2026년 5월, 미국의 대표적 리스크 관리 전문지 Risk Management Magazine 에 주목할 만한 기고문이 실렸다. 저자는 미국 대형 로펌 Blank Rome의 파트너 변호사 Terry Henry와 Lauren O'Donnell, 그리고 어소시에이트 Serena Gopal이다. Terry Henry와 Serena Gopal은 집단 불법행위(mass torts)와 복잡 분쟁을 전문으로 하고, Lauren O'Donnell은 기업 소송을 전문으로 한다. 세 사람 모두 제품 안전 규제와 기업 책임 분야에서 실전 경험을 쌓아온 법률 전문가다. 이들이 이 글을 쓴 배경은 단순하다. 최근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의 제재 수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Fitbit 1,250만 달러, Bestar 1,600만 달러, Gree 9,100만 달러에 임원 형사처벌까지. 이 숫자들은 단순한 과태료가 아니다. 기업의 존립을 흔드는 규모다. 시마노 사례: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대가 기고문의 핵심 사례는 일본의 자전거 부품 제조사 시마노(Shimano)다. 시마노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크랭크셋 파손과 관련된 수천 건의 클레임과 부상 신고를 받았다. 그 기간 동안 내부적으로는 9차례에 걸쳐 설계와 제조 방식을 수정했고, 총 25가지 변경을 적용했다.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도 했다. 그런데 CPSC에는 보고하지 않았다. 2023년 9월, 시마노는 결국 68만 개의 제품을 리콜했다. 그리고 CPSC로부터 1,1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CPSC의 판단은 명확했다. 문제를 알았으면서 즉시 보고하지 않은 것, 그 자체가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시마노가 안전 문제를 방치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내부적으로는 계속 개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CPSC가 요구하는 것은 내부 개선이 아니라 즉각적인 보고다. 두 가지는 별개의 의무다. CPSC의 보고 의무: 핵심은 '즉시' 미국 소비자제품...

반복되는 죽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장

2026년 6월 1일 오전 10시 59분. 대전 유성구 외삼동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흰 연기가 솟구쳤다. 5분 뒤 연기는 검게 변했고, 인근 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운전자들까지 그 기둥을 목격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로켓과 미사일 추진체를 만드는 이 공장에서 또다시 사람이 죽었다. 5명 사망, 2명 부상. 그리고 이것이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세 번째 대형 폭발이다. 1. 무엇을 만드는 곳인가 대전사업장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외삼동에 위치한다. 유성구는 대전의 서북부에 자리하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원자력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국가 핵심 연구기관이 밀집한 '과학도시'의 중심축이다. 바꿔 말하면, 이 지역 일대는 국가 안보와 첨단기술이 교차하는 지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은 1977년 삼성그룹이 설립한 삼성정밀공업이다. 창업 첫해부터 미사일 추진기관을 시제 생산했고, 이후 항공기 엔진, 로켓, 유도무기 시스템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15년 한화그룹이 삼성과의 대규모 사업 재편(이른바 '빅딜')을 통해 인수하면서 현재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이어졌다. 대전사업장은 이 과정에서 방산 부문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업장의 공식 주력 업무는 대형 추진기관의 개발과 생산이다. 추진기관이란 로켓이나 우주발사체를 목표 지점까지 날아가게 만드는 엔진에 해당하는 장치로, 폭발력을 지닌 추진제를 내부에 충전해야 작동한다. 추진제 혼화(混和)와 충전 공정 역시 이곳의 핵심 작업이다. 구체적인 생산 품목으로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인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다연장로켓 천무, 장거리 지대공유도무기 L-SAM, 방공무기 천궁-Ⅱ 등이 알려져 있다. 누리호(KSLV-2)에 장착된 액체로켓 엔진 관련 공급계 밸브와 자세제어 시스템도 이 사업장과 연관된 생산 계보에 있다. 사업장 면적이나 총 근무 인원에 관한 구체적 수치는 공개된 바 없다. 방산 보안시설이라는 특성상 내부 구조, 설비 현황, 인...

호주 정부는 왜 3M을 제소했는가

PFAS 소송이 던지는 컴플라이언스의 질문 1. 호주 정부는 왜 3M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가 2026년 5월, 호주 정부는 미국의 소재·화학 기업 3M을 상대로 약 14억 달러(A$2조)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핵심은 PFAS, 이른바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이다. PFAS는 열·오염·물에 강한 특성 때문에 수십 년간 소방용 폼을 비롯한 수많은 산업 제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물질은 자연 환경에서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며, 간 손상, 저체중 출산, 고환암 등 심각한 건강 문제와의 연관성이 여러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어 왔다. 호주 정부의 주장은 명확하다. 3M은 자사 소방용 폼 제품을 판매하면서 해당 물질이 "안전하고, 생분해 가능하며, 무독성"이라고 보증했다. 그러나 실제로 3M은 PFAS의 유해성을 확인한 자체 시험 결과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주 국방부는 수십 년간 이 폼을 군 기지에서 사용했고, 결과적으로 토양과 수계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지금까지 오염 대응에만 A$13억이 투입되었고, 피해 지역 주민들과의 합의금으로 A$4억 이상이 지급되었다. 20만 톤 이상의 오염 토양이 처리되었고, 130억 리터가 넘는 물이 정화 작업을 거쳤다. 3M의 반박도 단순하지 않다. 자사는 호주에서 PFAS를 제조한 적이 없고, 문제의 제품 판매를 20년 전에 이미 중단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호주 국방부가 판매 중단 이후에도 20년 가까이 해당 폼을 계속 사용해왔다고 지적한다. 책임의 경계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불가피한 이유다. 2. 3M의 컴플라이언스, 제대로 작동했는가 이 소송이 단순한 배상 분쟁을 넘어 산업계 전반에 중요한 이유는, 기업 내부 컴플라이언스 체계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컴플라이언스는 법을 지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식별하고, 이를 이해관계자...

하트퍼드 리스크 모니터가 말하는 것들

기업이 직면한 복합 위기의 시대, 2026년 미국의 경영자들 보험사는 왜 리스크 보고서를 내는가 하트퍼드(The Hartford)는 미국에서 200년 넘게 운영된 상업 보험사다. 산재 보상, 재산, 일반 책임, 상업용 자동차 등 기업 운영 전반을 커버하는 상품군을 가진 곳이다. 그런 회사가 매년 '리스크 모니터(Risk Monitor)'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행한다. 단순한 마케팅 자료가 아니다. 500명 이상의 미국 중대형 기업 리더를 직접 설문해, 지금 이 시점에 기업을 실제로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데이터로 정리한 문서다. 왜 보험사가 이 일을 하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리스크를 가장 정밀하게 이해하는 집단이 보험사이기 때문이다. 손실이 현실화될 때마다 그 청구서를 받는 주체가 바로 이들이다. 따라서 하트퍼드의 시선은 이론이 아니라 손해율, 청구 패턴, 시장 변화에 기반한다. 그 관점에서 읽어야 이 보고서가 제대로 보인다. 2026년 리스크 환경: 개별 위협이 아닌 복합 연쇄 2026 리스크 모니터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리스크의 성격 변화다. 과거의 리스크는 개별 사건이었다. 공장 화재, 사고, 소송. 각각이 독립적으로 발생하고 독립적으로 처리됐다. 지금은 다르다. 보고서는 현재의 위협을 "복합적이고 빠르게 확산되는 힘"으로 정의한다. 사이버 침해 하나가 운영 중단을 낳고, 운영 중단이 공급망 지연으로 번지며, 거기에 규제 조사까지 겹친다. 경제 변동성은 비용 구조를 흔들고, 그 압박이 근로자 안전 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리스크가 서로를 먹이는 구조다. 이 연결성이 2026년 리스크 환경의 핵심이다. 미국 경영자들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 설문에 응한 리더들의 발언은 보고서의 가장 생생한 부분이다. 수치 뒤에 있는 불안의 질감이 드러난다. 사이버와 데이터 보안에 대해 한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 유출, 랜섬웨어, 민감 정보에 대한 무단 접근 가능성이 걱정된다." 또 다른 리더는 ...

미 대법원이 메타의 항소를 기각했다 — 소셜 미디어 책임 시대의 서막

미국 대법원이 2026년 5월 27일, 메타(Meta Platforms)의 항소를 조용히 기각했다. 버몬트주 검찰총장이 제기한 인스타그램 청소년 중독 소송을 피해 보려던 메타의 마지막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판결문 하나 없이 그저 '기각'으로 끝난 이 결정은, 그 간결함과는 달리 미국 빅테크 산업 전반에 상당히 무거운 함의를 남긴다. 사건의 배경: 설계된 중독 버몬트주 민주당 소속 검찰총장 채리티 클라크(Charity Clark)는 2023년 메타를 상대로 주 소비자보호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핵심 주장은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인스타그램이 십대 청소년의 발달 중인 뇌를 연구하고, 그 신경학적·심리적 취약점을 의도적으로 활용해 앱 사용을 강박적이고 과도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의도된 설계라는 주장이다. 버몬트주에 따르면 메타는 인스타그램이 버몬트 십대를 포함한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광고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해 중독성을 강화했고, 동시에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소비자를 조직적으로 오도했다. 이 소송은 42개 주 검찰총장이 연합해 연방 및 주 법원에 제기한 공조 행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메타의 반박, 그리고 그 한계 메타는 관할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스타그램을 버몬트에서 설계한 것도 아니고, 버몬트에서 허위 진술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버몬트 법원에서 소송을 당해야 하느냐는 논리다. 나아가 50개 주 모든 법원에서 이런 소송에 응해야 한다면, 이는 미국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하는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버몬트 대법원은 2025년 이미 이 논리를 일축했다. 메타가 버몬트 시장에서 경제적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유해한 설계와 오도적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버몬트 법원이 관할권을 갖는 것은 헌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 판단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판결의 진짜 의미 대법원의 기각 결정이 갖는 법리적 의미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메...

60년 된 서소문 고가도로 - 안전점검 중에 무너졌다

2026년 5월 26일 오후 2시 32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철거 공사가 한창이던 서소문 고가차도의 상판이 무너졌다. 감리단장과 현장관리소장, 외부 전문가 3명이 사망했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사고 당시 이들이 현장에 있던 이유가 더 비극적이다. 오전에 슬라브 절단 작업 중 단차가 주저앉아 공사를 즉시 중단했고, 오후 2시에 안전 진단을 실시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현장에 들어간 순간 거더(구조물을 떠받치는 보)가 끊어지며 붕괴가 발생했다. 안전을 확인하러 들어간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아이러니 하나가 이번 사고의 본질을 압축한다. 1. 예고된 붕괴, 반복된 안전불감증 서소문 고가차도는 1966년 준공된 폭 15m, 왕복 4차선 도로였다. 60년 동안 서울 도심 교통의 핵심축 역할을 했지만, 구조물의 내면은 오래전부터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2019년 3월에는 가로 1.8m, 세로 1.6m, 두께 6cm짜리 콘크리트 조각이 도로 위로 떨어졌다. 마침 지나는 차량이 없어 피해는 면했다. 이후 2021년 고가차도 바닥판 탈락, 2024년 보 콘크리트 탈락, 보 강선 파손 등 사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정밀 안전 진단은 D등급을 내렸다. A에서 E 사이의 등급 중 D는 '즉각 보수가 필요한 수준'이다. D등급을 받은 이후에도 2021년과 2024년에 박락 사고가 이어졌고, 서울시는 추가적인 콘크리트 탈락을 우려해 안전망을 설치하고 철판을 덧대왔다. 콘크리트가 떨어지고, 보가 파손되고, 바닥이 뜯겨 나가는 사건이 수년간 반복됐다. 그러는 동안 이 구조물 아래로 매일 시민들이 지나다녔고, 결국 철거 공사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걸 '예기치 못한 사고'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공공 발주 공사에서 이런 패턴은 서소문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는 붕괴된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했다. 2022년에는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 공공이 발주하고...

뉴욕 대교구 vs. 처브: 보험 분쟁의 전말과 시사점

1. 분쟁의 배경 — 무슨 일이 있었나 뉴욕 대교구(Archdiocese of New York, ADNY)는 수십 년에 걸친 성직자 성학대 피해 청구 사건, 이른바 CVA(Child Victims Act) 사건 의 한복판에 서 있다. 뉴욕주는 2019년 아동 피해자법(CVA)을 통과시키며 과거 소멸시효가 지난 성학대 피해 청구도 일정 기간 내 소송이 가능하도록 창구를 열었다. 이에 따라 수십 년 전 성직자로부터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이 대거 소송을 제기했고, 뉴욕 대교구는 수백 건에 달하는 청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교구는 피해자 보상을 위해 3억 달러 규모의 기금 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며, 인력 감축과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 중이다. 문제는 이 막대한 배상 재원의 상당 부분을 보험으로 충당하려 했는데, 핵심 보험사인 **처브(Chubb)**가 보장을 거부하면서 본격적인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었다는 점이다. 2. 뉴욕 대교구는 어떤 보험에 가입했나 대교구가 처브에 가입한 보험은 일반 배상책임보험(General Liability Insurance) 계열의 상업용 종합 보험으로 추정된다. 이 유형의 보험은 조직이 제3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발생하는 법적 배상 비용, 소송 방어 비용, 합의금 등을 보장하는 구조다. 종교 기관은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배상 책임 리스크에 대비해 이러한 보험에 가입한다. 특히 교구처럼 방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수많은 직원·성직자·시설을 관리하는 기관은 다수의 보험사와 다층적인 계층 구조(primary + excess layers)로 보험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교구가 처브 외에도 여러 보험사와 분쟁 중이라는 맥락도 이를 뒷받침한다. 3. 처브의 보장 거부 — 왜 문제가 되었나 처브가 보장을 거부한 근거는 보험법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의도적·예상 가능한 행위 면책 조항(Intentional/Expected Acts Exclusion)'**이다. 처브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성직자의 성학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