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5일 화요일

직원 부정행위, 어떻게 탐지하고 막을 것인가

[해외 리스크 매거진 리뷰] 직원 부정행위, 어떻게 탐지하고 막을 것인가


출처 및 기고자 소개

2026년 4월 30일, 미국의 리스크 관리 전문 매체 RM Magazine에 주목할 만한 기사가 게재되었다. 제목은 "Going Rogue: How to Detect and Prevent Employee Misconduct", 직역하면 '이탈자: 직원 부정행위를 어떻게 탐지하고 막을 것인가'다. 기고자 Neil Hodge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리스크 관리·컴플라이언스·기업 지배구조 분야를 오랫동안 전문으로 취재해온 인물이다. 분량은 길지 않지만 조직 내 부정행위의 구조적 원인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탐지와 예방을 위한 실용적 관점을 균형 있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리스크 관리 실무자들에게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기사 요약

기사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직원이 선을 넘을 때, 그것은 정말 그 개인만의 문제인가?

Hodge의 답은 명확하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흔히 기업 스캔들을 고위 경영진의 대형 비리와 연결짓지만, 현실에서는 평범한 직원의 작은 규칙 위반에서 시작되는 사례가 훨씬 많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이는 일탈이 반복되고, 아무런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점차 대담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되돌리기 어려운 임계점을 넘어버린다. 이른바 '점진적 일탈(gradual drift)'의 메커니즘이다.

이 지점에서 기사의 핵심 논지가 선명해진다. 부정행위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조직이 설계한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과도한 실적 압박, 윤리보다 성과를 우선시하는 보상 체계, 묵인되는 작은 위반들, 내부 통제의 공백.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 채용 단계에서 아무리 철저히 검증해도 사후 관리 없이는 의미가 없다. 기사는 배경 조사나 신원 조회 같은 사전 검증 방식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며, 과거 기록만으로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성과 패턴 분석, 즉 재직 기간 전반에 걸친 체계적 접근이다.

그렇다면 어떤 신호에 주목해야 하는가. 기사가 제시하는 경고 지표들은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 설명이 어려운 높은 성과, 불필요한 접근 권한 요청,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 이유 없이 느려지는 업무 흐름. 특히 한 사람이 검토·승인·실행을 단독으로 통제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을 때 위험도는 급격히 높아진다. '프로세스 드리프트(process drift)', 즉 업무 절차가 서서히 변형되거나 우회되는 현상은 부정행위의 전형적인 전조임에도 현장에서 쉽게 묵과되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역할에 대한 시각도 신중하다. AI와 데이터 분석이 이상 패턴 탐지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시 체계의 과잉은 오히려 직원 불신을 심화시키고 우회 행동만 정교하게 진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기사 속 한 문장이 이를 예리하게 짚는다. "정보가 많다고 예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 사이의 간극, 그리고 감시와 신뢰 사이에서의 균형 감각을 동시에 요구하는 말이다.

예방 전략의 핵심은 구조와 문화의 정합성에 있다. 직무 분리, 이중 승인, 권한 분산은 부정행위 차단의 제도적 토대이며, 보상 체계를 재설계하여 윤리가 실적에 밀리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관리자에게는 경고 신호를 인식할 수 있는 훈련과 실제 개입 권한이 동시에 부여되어야 하며, 내부 신고 채널은 형식적 존재가 아닌 실질적으로 신뢰받는 통로여야 한다. 침묵하는 조직에서는 어떤 통제 시스템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경영진이 투명성과 책임의 규범을 몸소 실천할 때, 비로소 일탈이 은폐되지 않고 드러나는 환경이 형성된다.


리스크관리 인사이트

이 기사를 읽으며 가장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리스크 관리가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리스크를 외부에서 오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시장의 변동성, 규제의 변화, 자연재해, 공급망의 교란. 그러나 조직 내부에서 발생하는 행위 리스크는 그 성격이 다르다. 외부 리스크는 대개 예측 모델과 헤징 전략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리스크는 수치로 포착되기 이전에 이미 조직 문화 속에 잠복해 있다.

Hodge의 기사가 지적하는 핵심은 바로 이 '잠복성'이다. 부정행위는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작은 편의, 작은 예외, 작은 묵인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조직 내 비공식 규범으로 자리를 잡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상 자체가 감지되지 않는 상태에 이른다. 마치 서서히 달궈지는 냄비처럼, 변화는 느리고 내부에서는 더욱 포착하기 어렵다.

이 맥락에서 리스크 관리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통제 시스템의 유무가 아니라, 그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의 여부다. 많은 조직이 직무 분리, 이중 승인, 내부 감사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형식으로만 존재할 때, 통제가 있다는 착시가 오히려 실질적인 감시를 대체해버린다. 진정한 내부 통제는 서류상의 절차가 아니라, 그 절차가 일상 속에서 살아 숨쉬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기술에 대한 과잉 신뢰도 경계해야 한다. AI 기반 이상 탐지 시스템이나 행동 분석 플랫폼은 분명히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감시 인프라가 정교해질수록 조직은 '충분히 보고 있다'는 자기 만족에 빠질 위험이 있다. 데이터는 반드시 해석되어야 하고, 그 해석은 결국 사람이 속한 조직의 맥락과 가치관에 의해 결정된다. 부정행위를 용인하는 문화 속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도 무력화된다.

리스크 관리자에게 이 기사가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조직에서 누군가 선을 넘으려 할 때, 그것을 멈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움에 기반한 통제는 감시가 사라지는 순간 작동을 멈춘다. 규정에 기반한 통제는 빈틈을 찾는 순간 우회된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에 기반한 통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작동한다. 리스크 관리의 목표가 단순한 손실 최소화를 넘어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것이라면, 그 기반은 결국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행동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엇을 용납하지 않는가에 있다.

부정행위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의 실패다. 그리고 그 실패는 대부분 오랫동안 예고되어 있었다.


2026년 5월 4일 월요일

AI가 사람을 해고할 수 있는가 — 중국 법원이 던진 질문

중국에서의 사건 요약

2025년, 중국 항저우의 한 IT 기업이 AI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품질관리 담당 직원 저우(Zhou) 씨에게 급여 40% 삭감을 통보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당신의 업무를 AI가 대신한다." 저우 씨가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해고를 단행했다.

항저우 중급인민법원은 이 해고를 위법으로 판결했다. 법원의 논리는 명쾌했다. 기술의 발전이 기업에게 일방적 해고나 임금 삭감의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단순한 노동 분쟁의 결론이 아니다. AI 시대의 고용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법정 위에 올려놓은 사건이다.


기술은 중립적인가

흔히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리면 식사를 만들고, 범죄자의 손에 들리면 흉기가 된다는 식의 논리다. 그러나 이 비유는 기술이 사회 구조 안에 이미 특정 권력 관계를 내포한 채로 도입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AI 자동화는 단순히 "더 빠른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협상력의 지형을 바꾸며, 누가 경제적 이익을 가져가는지를 결정하는 구조적 힘이다. AI가 저우 씨의 업무를 대체했을 때, 생산성 향상으로 발생한 이익은 기업으로 귀속되었다. 그 이익을 만들어온 사람에게는 해고 통보가 돌아왔다. 이것이 중립인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기계제 대공업을 분석하며 지적했던 구조가 AI 시대에 재현되고 있다. 기계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자에 대항해 사용하는 수단이 된다는 통찰이다.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배치되는 방식과 그 이익이 분배되는 구조의 문제다.


효율성의 이데올로기

현대 경영학은 효율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AI 도입은 비용 절감, 오류 감소, 속도 향상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들고 온다. 이 앞에서 인간 노동자는 "비효율의 잔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효율성은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효율성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무엇을 위해 효율적이어야 하는지, 그 목적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효율성의 극대화는 결국 인간을 비용 항목으로 환원시키는 논리로 귀결된다.

항저우 법원의 판결은 이 효율성의 이데올로기에 제동을 건 것으로 읽힌다. "효율적이기 때문에 해고할 수 있다"는 논리를 법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효율성의 계산식에 포함되지 않는 무언가 — 고용 관계의 신뢰, 사회적 안정, 개인의 존엄 — 가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했다.


중국의 딜레마, 그러나 보편적인 긴장

중국은 지금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다. 국가 차원에서 AI 기술 패권을 추구하면서도, 청년 실업률 상승과 경기 둔화라는 현실적 압박 앞에 놓여 있다. 정책 자문기구에서조차 "AI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소멸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하는 상황이다.

이 딜레마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2026년 이후 테크 업계에서만 약 8만 명이 AI를 이유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보도가 있다. 기술 혁신의 선두에 선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모순이다. 더 강력한 AI를 개발할수록, 그 AI가 자국민의 고용을 위협하는 역설.

이 긴장은 단순히 "AI를 늦춰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와 사회 적응의 속도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법원의 판결은 그 간극을 메우는 하나의 방식이다 — 사후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사회적 신호로서의 의미는 크다.


고용 관계란 무엇인가

철학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사건은 고용 관계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고용 계약은 단순한 서비스 교환인가. 노동자는 시간과 역량을 팔고,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 이 틀 안에서 AI가 노동자보다 "더 나은 거래 조건"을 제시한다면, 인간을 교체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용 관계를 이렇게만 이해하면, 우리는 근대 노동법이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논리를 버리게 된다. 노동자는 단순한 생산 요소가 아니라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논리. 고용 관계에는 계약 이상의 사회적 의무가 포함된다는 논리. 이것이 해고 보호, 최저임금, 단체교섭권 같은 제도들의 철학적 기반이다.

AI는 이 기반을 흔든다. AI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임금 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기업이 AI를 순수한 도구로, 그리고 인간 노동자를 비용 최적화의 변수로만 본다면 — 그 결말은 저우 씨의 사례처럼 40% 삭감 통보가 된다.

항저우 법원은 그 결말을 거부했다. 이는 AI를 도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AI 도입의 이익을 기업이 독점하면서, 그 비용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앞으로의 물음

이 판결 이후에도 물음은 남는다. 법원이 AI를 이유로 한 해고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AI가 서서히, 조용히, 새로운 채용을 대체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해고되지 않아도, 처음부터 고용되지 않는 세계는 또 다른 문제다.

기술은 계속 진보할 것이다. 그것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진보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리고 진보의 충격을 누가 감당하는가 — 이 배분의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중국 법원의 판결은 그 배분에 대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하나의 답이다. 불완전하고, 사후적이며, 모든 경우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AI가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법이 거부한 순간, 우리는 적어도 이것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는 AI로 무엇을 할 것인가" —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에게 있다.


2026년 5월 3일 일요일

상장회사의 대표이사들은 로펌의 밥인가

영풍-고려아연, 쿠팡, 하이브 사태가 던지는 질문


다른 점 같은 점

2026년 초, 유독 비슷한 패턴의 기사들이 연달아 터졌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투자 배임'을 두고 주주대표소송 전쟁을 예고했고, 쿠팡은 3,370만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미국 현지 로펌들의 집단소송 표적이 됐다. 하이브는 민희진 전 대표를 상대로 주주 간 계약 위반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세 사건의 무대와 당사자는 달라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표이사 혹은 경영진이 법정 피고석에 앉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긴다. 상장회사의 대표이사는 이제 로펌의 먹잇감이 된 건 아닐까?


무엇 때문에 제소하는가

주주대표소송 — 회사를 대신한 복수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스스로 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때 주주가 나서서 회사를 대신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이 소송에서 배상금이 인정되면 돈은 이사 개인이 아닌 회사로 귀속된다. 즉 이론적으로는 '회사와 전체 주주를 위한' 제도다.

영풍-고려아연 사건에서 영풍 측 주주들이 고려아연 이사진을 상대로 이 카드를 꺼내든 이유도 여기 있다. 이그니오 투자가 배임에 해당한다면, 그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해를 이사들이 직접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표면상으로는 회사 이익을 위한 소송이지만, 현실에서는 경영권 분쟁의 연장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법정이 지분 싸움의 또 다른 전장이 되는 것이다.

증권 집단소송 — 투자자 손실의 법제화

쿠팡 사건은 결이 다르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문제가 된 건, 쿠팡이 이를 SEC에 정정 공시한 이후에도 주가가 하락했다는 점이다. 미국 현지 로펌들이 즉각 소송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증권 집단소송 시스템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집단을 이뤄 기업과 경영진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로펌은 성공보수 구조로 수임하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하는 비용을 투자자가 선지급할 필요가 없으니, 로펌 입장에서는 '소송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라면 먼저 달려가는 게 합리적이다.

주주 간 계약 위반 — 신뢰의 사법화

하이브가 민희진 전 대표를 상대로 낸 소송은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핵심 쟁점은 '뉴진스 빼가기' 계획이 주주 간 계약을 위반했느냐였다. 법원은 중대한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민희진 측이 승소했지만, 이 소송이 우리에게 보여준 건 따로 있다. 경영진과 대주주 사이의 내밀한 신뢰 관계, 또는 그 균열이 이제 계약서와 법정을 통해 정산된다는 사실이다. 구두 합의와 암묵적 신뢰의 시대는 끝났다.


대리인 문제의 법정 이전

경영학에서 오래된 개념이 있다.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다. 주주(주인)와 경영진(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 대리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할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스톡옵션, 성과보수, 이사회 감시 같은 내부 거버넌스 장치였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다르다. 내부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않거나 지배주주 자신이 갈등의 당사자가 됐을 때, 주주들이 외부 수단, 즉 법원으로 직접 달려가고 있다. 주주대표소송과 집단소송은 사실상 외부화된 대리인 통제 메커니즘이다.

이것이 효율적인가? 단기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 소송 비용, 경영 불확실성, 핵심 인재의 이탈,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부수적 피해가 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법적 책임의 위협이 경영진에게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억제하는 일종의 사전 억지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소송이 잦아질수록 경영진은 더 신중하게 움직인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왜곡도 존재한다. 소송 리스크가 커질수록 경영진은 과감한 투자보다 무사안일한 의사결정을 선호하게 된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어적 경영이다. 고려아연 이그니오 투자가 배임인지 아닌지를 법원이 판단하게 됐을 때, 앞으로 다른 기업의 이사들이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투자를 얼마나 선뜻 결재하려 할까?


책임이란 무엇인가

이 소송들이 제기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경영의 실패는 도덕적 잘못인가, 아니면 불운인가?

배임죄의 핵심은 고의성이다.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모두 배임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주주들은 손실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경영 판단의 실패로 귀결시키고, 법적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손실에는 반드시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이지만, 항상 공정한 귀인(attribution)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책임을 개인의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적 연결에서 찾았다. 그런데 대기업의 의사결정은 수백, 수천 명의 논의와 승인을 거친다. 대표이사 한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 자'인가? 이 질문에 법원은 대부분 단순화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법은 복잡한 조직 현실을 개인의 책임으로 압축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로펌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분화된다. 로펌은 법의 집행자인가, 아니면 소송의 기획자인가? 미국에서 쿠팡을 향해 달려든 로펌들은 투자자 피해를 구제하는 정의의 수호자일 수도 있고, 집단소송 성공보수를 노린 수익 추구자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동시에 옳다. 그리고 그 모호함 위에 현대 주주 소송의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법정 밖의 해답은 없을까

상장회사 대표이사가 로펌의 밥이 됐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는 틀리지 않다. 지배구조 갈등, 투자 실패, 계약 위반이 모두 법정으로 직행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전적으로 나쁜 현상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책임 없는 경영이 방치됐던 시대보다는, 과도한 소송이 경영을 위축시키는 시대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소송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소송이 거버넌스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고 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신뢰와 소통이 살아있다면, 법정까지 가는 분쟁은 훨씬 줄어든다. 영풍과 고려아연이 법원 밖에서 합의 테이블에 앉을 수 없었던 이유, 하이브와 민희진이 계약서 한 줄로 갈라선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이 소송들은 내부 거버넌스의 실패를 외부 사법 체계가 수습하고 있는 광경이다.

대표이사가 로펌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더 좋은 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더 좋은 이사회와 더 솔직한 주주 관계가 먼저다.


CATL의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열어가는 새로운 가능성

이젠 평화를 얻고 싶다

인류는 오랫동안 에너지를 둘러싼 전쟁을 치러왔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중동에서 피가 흘렀고,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남미의 소금사막이 파헤쳐졌으며, 코발트를 캐내기 위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광산으로 내몰렸다. 전기차가 미래라고 외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배터리를 만드는 원료를 놓고 세계 강대국들은 치열한 공급망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배터리가 지구를 구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 배터리 때문에 또 다른 지구가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2026년 4월 말에 전해진 한 소식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중국의 배터리 기업 CATL이 에너지저장 기업 하이퍼스트롱과 3년간 총 60GWh 규모의 나트륨이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나트륨이온 배터리 협력 중 최대 규모다. 숫자만 보면 그저 또 하나의 대형 계약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 소식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읽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자원을 둘러싼 오랜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작은 첫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하다. 나트륨은 지구 어디에나 있다. 리튬처럼 특정 국가의 특정 광산에서만 캐낼 수 있는 희귀 자원이 아니다. 소금에도 있고, 바닷물에도 있고,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속에도 있다. 이 배터리가 진정으로 상용화된다면, 에너지 저장의 원료를 두고 국가가 군사력을 앞세워 협박하거나, 거대 자본이 광산을 통째로 사들여 가격을 흔드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기술이 단순한 배터리 이상의 무언가라고 느낀다.

물론 현실은 아직 이상과 거리가 있다.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낮기 때문에, 같은 크기와 무게로 더 많은 전기를 담을 수 있는 전기차 분야에서는 당장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생산 비용도 현재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완벽하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CATL은 이번 계약을 발표하면서 주요 공정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포 문제, 수분에 취약한 특성, 에너지 밀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제품 사양을 보면, 300Ah 이상의 용량에 약 160Wh/kg의 에너지 밀도, 그리고 1만 5천 회 이상의 충·방전 사이클 수명을 확보했다.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영상 70도의 폭염까지 작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금 이 기술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는 에너지저장장치, 즉 ESS 시장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낮에 저장해 두었다가 밤에 공급하고, 전력이 넘치는 계절에 모아두었다가 부족한 계절에 내보내는 그 장치 말이다.

이 시장에서는 에너지 밀도보다 안정성과 가격이 훨씬 중요하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발열이 적고, 넓은 온도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시스템 구조를 단순하게 설계할 수 있어 보조 전력 소비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기존 리튬이온 저장 시스템과 동일한 크기로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깔려 있는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새로 지을 필요 없이, 있는 것을 바꿔 끼우면 된다는 뜻이다. 설치 비용과 구축 기간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기후 기술 전문 매체 클린테크니카는 이번 계약이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실제 시장 투입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실험실을 넘어, 현실 세계로 나왔다는 선언인 셈이다.


CATL이라는 기업을 나는 복잡한 눈으로 바라본다. 거대 중국 자본이 뒤에 있고, 지정학적 셈법도 분명히 있을 것이며, 이 기업의 성장이 곧 기술 패권 경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창업자 쩡위친이 "테슬라도, 포드도, GM도 모두 우리에게 손을 벌렸다"고 말했을 때, 그 말 속에는 자부심만큼이나 날카로운 경쟁심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기업이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통해 만들어가려는 세계를 응원하고 싶다. 기업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리튬 공급망을 쥔 나라가 세계를 움켜쥐는 구조, 광물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 기지가 세워지고 협정이 깨지는 구조, 그 구조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자원 전쟁의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지쳐간다. 석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리튬 때문에 얼마나 많은 땅이 파괴됐는지. 이제는 조금 다른 세상을 꿈꿔도 될 것 같다. 소금처럼 흔하고, 바닷물처럼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전기를 저장하고, 그 전기로 불을 켜고 차를 달리는 세상. 특정 누군가가 독점하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의 세상.

CATL의 60GWh 계약 하나가 그 세상을 바로 열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길 위에 하나의 이정표가 놓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정표가 옳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원 전쟁이 끝나는 날,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 소식을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