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중대재해] 형이 확정된 37곳의 명단이 말하는 것

10월 15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형이 확정된 사업장 37곳의 명단을 관보와 홈페이지에 공표하였습니다. 경영책임자는 도급인과 수급인을 포함하여 모두 39명입니다. 이로써 2023년 9월 이후 공표된 사업장은 81곳에 이르렀습니다.

명단의 면면은 무겁습니다. 2023년 12월, 경북의 한 제련소(A사)에서는 탱크 모터 교체 작업 중 삼수소화비소가 누출되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습니다. 밀폐설비도, 국소배기장치도 없었습니다. 대표이사는 법 시행 이후 경영책임자로서는 처음 구속기소되었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었습니다. 2022년 3월, 충남의 한 제조업체(B사) 공장에서는 에탄올로 세척한 부품을 건조하던 설비가 폭발하였습니다. 인화성 증기를 배출하는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표에게는 법 시행 이후 가장 무거운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무는 사례는 따로 있습니다. 2024년 2월, 경기도의 한 학교 시설 개선 공사 현장(C사 시공)에서 노동자가 1.2m 높이의 이동식 비계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는 별다른 조치 없이 작업을 이어갔고, 다음 날 숨졌습니다. 안전난간은 없었고, 안전모는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1.2m라는 높이가 이토록 무겁게 읽히는 까닭은, 그것이 거창한 설비나 막대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더욱 분명하게 말합니다. 공표된 81곳 가운데 75곳, 92.6%가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 의무를 위반하였습니다. 위험을 알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확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업장당 평균 위반 조항은 3.6개였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여러 겹의 공백이 겹쳐 사고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처벌 수위를 두고는 여전히 말이 많습니다. 경영책임자 85명 가운데 실형은 3명, 3.5%에 불과하고, 90.6%는 집행유예에 그쳤습니다. 법인 벌금은 평균 9,800만원이었습니다. 이 수치만 보면 법의 무게가 생각보다 가볍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닙니다.

첫째, 명단 공표 그 자체가 하나의 처분입니다. 사업장 명칭과 사고 경위, 최근 5년간의 중대재해 이력이 관보에 남습니다. 거래처의 협력사 평가, 금융기관의 여신 심사, 투자자의 ESG 판단이 이 기록을 비켜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형량은 집행유예로 끝날 수 있어도, 기록은 오래 남습니다.

둘째, 형사책임은 이전할 수 없는 위험입니다. 보험은 사고 이후의 손해배상과 같은 재무적 충격을 완화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비하는 배상책임보험 역시 그러한 장치입니다. 그러나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과 명단에 오르는 일 자체를 대신 짊어져 줄 수 있는 보험은 없습니다. 보험이 마지막 방어선이라면, 첫 번째 방어선은 결국 현장의 위험성평가와 그 이행을 입증하는 기록입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소규모 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해서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경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업장의 위험은 확인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그 확인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까.

37곳의 명단은 처벌의 기록이기 이전에, 확인하지 않은 위험의 기록입니다. 다음 명단에 오르지 않는 길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1.2m의 비계에 난간 하나를 세우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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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소개] 처벌을 넘어 영업이익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국회 통과

지난 10월 13일 법률신문에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제목으로 법무법인 율촌의 해설이 실렸습니다. 2026년 10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기업에 미칠 영향을 정리한 글입니다. 정부가 2025년 9월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본격적으로 법률이 된 것이어서, 사업장의 안전보건 체계와 리스크 관리 방식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시점이라 판단되어 그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번 개정의 중심에는 과징금이 있습니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1년 사이 3명 이상의 근로자가 사망하면, 형사처벌과 별도로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영업이익이 없거나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30억 원 이내입니다. 구체적인 부과 기준은 위반 횟수, 기업 규모, 사망자 수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며, 공포 6개월 후 시행됩니다.

작업중지 제도도 크게 넓어집니다. 근로자는 급박한 위험이 '우려'되는 단계에서도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게 되었고, 근로자대표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그리고 하청 근로자도 원청에 직접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뿐 아니라 근로자가 의식불명이거나 생사가 불분명한 사고에도 작업중지를 명할 수 있으며,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는 시정이 끝날 때까지 작업을 재개할 수 없습니다.

반복되는 사고에 대한 제재도 강화되었습니다. 동시에 2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로 3년간 영업정지를 2회 이상 받은 사업주가 다시 영업정지 요청 대상이 되면, 장관은 사업 등록 말소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는 건설공사 발주자에서 도급인으로, 건설업에서 그 밖의 업종으로 확대됩니다.

이 개정이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중대재해의 대가가 이제 형사책임에 그치지 않고 재무제표에 직접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과징금은 재량행위이므로 같은 사망사고라도 안전조치 위반의 정도와 기업 규모에 따라 금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고, 그 산정을 다투는 행정쟁송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평소의 안전보건 관리 이력이 사고 이후 제재의 크기를 좌우하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몇 가지를 점검해 두실 것을 권합니다. 첫째, 시행령에서 정해질 과징금 산정 기준의 동향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둘째, 작업중지 요구의 접수, 대응, 작업 재개에 이르는 절차를 사내 규정으로 정비하고, 협력업체 근로자의 요구까지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셋째, 과징금과 같은 행정 제재는 일반적으로 보험으로 전가하기 어려운 영역이므로, 사고 이후의 비용이 아니라 사고 이전의 예방과 그 기록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비입니다.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관리, 적정 공사비와 공사기간 보장 등은 여전히 입법 과제로 남아 있고, 건설업에서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안전보건 의무와 제재의 수준은 앞으로도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법이 바뀌기를 기다려 대응하기보다, 지금의 관리 체계가 바뀐 법 앞에서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지 먼저 물어볼 때입니다.

기사 원문: https://www.la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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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법령 개정 내용 소개를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보다 자세한 해석은 산업재해 전문 변호사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26년 9월 17일 목요일

[법령 소개] 중대 불법하도급, 국토부가 직접 처분: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

전문건설신문은 건설 현장의 중대한 불법하도급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직접 행정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불법하도급은 단순한 계약 위반에 그치지 않고 안전사고와 산업재해, 대금 체불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은 건설 현장의 안전과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 주요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지금까지 불법하도급에 대한 행정처분 권한은 지방정부에 위임되어 있었습니다. 국토부가 현장 점검에서 불법하도급을 적발하더라도 직접 처분할 수는 없었고, 관할 지방정부에 처분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요청을 받은 지방정부는 다시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처분 여부와 수위를 정하였습니다. 적발과 처분 사이에 한 단계가 더 끼어 있었던 셈이며, 이 과정에서 최종 처분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지적되어 왔습니다.

개정안은 이 구조를 바꿉니다. 적발 주체, 하도급 금액, 공종, 공정률, 관할구역 등을 기준으로 국토부가 직접 처분할 수 있는 사안이 정해지고, 세부 기준은 국토부 고시로 마련됩니다. 고시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은 종전처럼 지방정부가 처분합니다.

정부의 직접처분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처분의 속도입니다. 적발한 기관이 곧 처분하는 기관이 되므로, 지방정부에 대한 처분 요청과 재조사 단계가 생략됩니다. 그동안 처분이 지연되는 사이 공사가 끝나거나 하도급 관계가 정리되어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지던 문제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처분의 일관성입니다. 같은 유형의 위반이라도 관할 지방정부에 따라 조사 강도와 처분 수위가 달라질 여지가 있었습니다. 중대한 사안을 국토부가 직접 다루게 되면 전국적으로 같은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셋째, 제재의 현실성입니다. 적발 이후 처분까지의 시간이 짧아지고 결과가 예측 가능해진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불법하도급이 '적발되더라도 시간이 걸리는 문제'에서 '적발되면 곧바로 처분되는 문제'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다만 직접처분의 대상은 고시로 정해지는 중대 사안에 한정됩니다. 어떤 금액과 공종, 공정률의 현장이 대상이 될지는 앞으로 마련될 고시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개정안은 제재와 함께 자진신고의 길도 열어 두었습니다. 국토부가 고시하는 기간 안에 불법하도급 사실을 스스로 신고하고, 처분이 확정되기 전까지 시정을 마치면 영업정지나 과징금을 절반 범위에서 감경받을 수 있습니다. 국토부는 현장 단속만으로는 자진신고와 시정을 이끌어낼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을 개정 배경으로 들었습니다. 처분은 빠르고 엄격하게 하되, 스스로 바로잡는 기업에게는 기회를 주겠다는 구조입니다.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개정은 원청과 하수급인 모두에게 현재의 하도급 구조를 점검할 이유를 제공합니다. 재하도급 관계, 계약서와 실제 시공 주체의 일치 여부, 하도급 대금 지급 이력 등을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문제가 발견된다면 자진신고 기간을 활용하는 것도 실질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불법하도급이 사고로 이어진 뒤에는 행정처분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책임까지 함께 따져지게 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은 공포 후 4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됩니다. 함께 개정된 새만금사업법 시행령은 새만금사업의 지역기업 우대와 조성토지 공급 방식을 다루며, 공포한 날부터 시행됩니다.

출처: 전문건설신문 http://www.ks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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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법령 개정 내용 소개를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보다 자세한 해석은 건설·산업재해 분야 전문 변호사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26년 8월 7일 금요일

이름만 있던 안전관리자: 주차장 추락사고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검찰이 건설업체와 그 대표이사를 기소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영책임자가 기소된 첫 사례입니다.

사고는 2022년 3월에 일어났습니다. 건물 신축공사 현장 지하 3층에서 환기구 도장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지하 4층으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안전대를 걸 수 있는 설비도, 추락을 막아줄 방호시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가장 오래 곱씹게 되는 대목은 사고 그 자체가 아닙니다. 사고 약 4개월 전, 현장의 안전관리자가 퇴사하였습니다. 회사는 인건비 부담과 구인난을 이유로 후임을 뽑지 않았습니다. 대신 본사 직원 한 명을 안전관리자로 '지정'하였습니다. 서류 위에는 안전관리자가 있었으나, 현장에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이 더해집니다. 사고 이전, 고용노동청 등으로부터 추락방호시설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다는 점입니다. 위험은 이미 외부의 눈으로 확인되어 있었고, 회사에 전달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착각 하나를 보여줍니다. 형식을 갖추면 책임도 갖춘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첫째, 명목은 방어가 되지 못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묻는 것은 안전관리자가 명부에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 역할이 실제로 작동하였는가입니다. 이름만 걸어둔 체계는 사고 이후 오히려 의무를 알면서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정황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둘째, 지적받은 위험은 더 이상 모르는 위험이 아닙니다. 감독기관의 지적, 내부 점검의 기록, 협력사의 건의는 모두 위험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로 남습니다. 지적을 받았다면 개선의 기록 또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 기록이 없을 때, 사고는 불운이 아니라 방치의 결과로 평가됩니다.

셋째, 아낀 비용과 치르는 비용은 같은 저울에 오르지 않습니다. 안전관리자 한 명의 인건비를 아낀 대가로,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고, 회사와 경영책임자는 형사재판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손해배상은 보험으로 일부 대비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과 기업이 잃는 신뢰는 어떤 계약으로도 이전할 수 없습니다.

사고가 난 지 4년이 넘은 지금에야 기소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사고의 책임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이 남겨진 기록과 남겨지지 않은 기록이 책임의 무게를 결정합니다.

안전관리자는 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는 서류 위에 있습니까, 아니면 현장에 있습니까.

#중대재해처벌법 #안전관리자 #추락사고 #경영책임자 #건설안전 #리스크관리

2026년 7월 4일 토요일

한 공공건축물 붕괴 사고로 본 주체별 책임

2025년 12월 11일 오후, 지방의 한 공공 문화시설 신축 현장에서 옥상층 콘크리트를 붓던 중 지붕을 받치던 철골 트러스의 용접부가 끊어졌습니다. 지붕층과 1층 바닥은 붕괴가 시작된 지 불과 4초 만에 무너져 내렸고,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공정률은 72%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결론은 분명하였습니다. 실제 시공된 용접 접합부의 강도는 설계강도의 22~31%에 불과하였습니다. 사고는 시공자의 부실시공과 감리의 관리감독 소홀에 주된 책임이 있는 인재(人災)였습니다.

그러나 "주된 책임"이라는 표현은 곧 다른 책임도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사고를 주체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하나의 실패가 아니라 여러 겹의 방어선이 동시에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시공 — 붕괴의 직접 원인

설계도는 두 철골 사이의 홈을 용접재로 빈틈없이 채우는 완전용입용접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를 위한 개선가공이 누락되었고, 용접 부위에는 철근 등 이물질이 무단으로 삽입되었습니다. 착공 전 적정한 용접 방법을 안내해야 할 시공상세도는 소홀히 작성되었고, 요구 기량이 검증되지 않은 용접사가 투입되었습니다.

이후 관할 지방국토관리청의 특별점검에서는 안전관리계획 미이행, 품질관리기술인 관리 미흡, 무등록자 재하도급까지 적발되었습니다. 사고 직후 시공사는 무너진 구조체가 공동수급사의 몫이었다고 해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나누려는 그 말이야말로,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책임지고 있었는지가 처음부터 흐려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감리 — 마지막 방어선의 공백

감리는 시공의 오류를 걸러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조사 결과 감리 측은 미흡한 시공상세도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고, 용접사의 기량 검증과 시공 후 용접부 검사도 부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불량을 확인하고도 전수검사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용접부의 결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그것을 확인할 권한과 의무는 분명히 존재하였습니다.

감리단장은 2026년 6월 시공사 현장소장, 하도급업체 대표이사 및 현장소장과 함께 구속되었습니다. 국토부는 감리업체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을 추진하고 있으며, 법령상 감리의 영업정지 상한은 12개월로 시공사(8개월)보다 오히려 깁니다. 감리의 책임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겠다는 제도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설계 — 설계 자체보다 '전달'의 문제

이번 조사는 설계 자체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원인은 어디까지나 '설계와 다른 시공'이었습니다. 다만 이 현장에는 독특한 외관을 구현하기 위해 설계 단계에서 제안된 특수 공법, 곧 길게 뻗은 장스팬 철골 트러스 위에 슬래브를 올리는 고난도 구조가 적용되어 있었습니다.

고난도 공법일수록 설계의 의도는 시공상세도를 거쳐 현장의 용접 한 줄까지 정확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번 사고에서 무너진 것은 바로 그 전달의 사슬이었습니다. 검찰이 기소 과정에서 임의 설계변경과 안전성 평가 누락을 함께 적시한 점도, 설계와 시공 사이의 간극이 이 사고의 한 축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발주처 — 공법을 승인한 자의 책임

해당 특수 공법은 발주처의 공법심사위원회가 제작·시공 방법과 안전성을 검토하여 승인한 것이었습니다. 공법을 선택하고 승인한 주체는 그 공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발주처 소속 공무원 4명은 입건되어 후속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아직 책임의 유무와 범위가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단정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다만 유가족들이 이른바 '꼬리 자르기'를 경계하며 발주처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해 온 까닭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기타 — 하도급 구조와 제도의 빈틈

경찰은 현장의 직접 과실을 넘어 입찰 비위와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구조적 문제까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입건된 인원은 40명에 이릅니다. 무자격 용접공의 투입과 무등록자 재하도급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공사비가 내려갈수록 숙련과 검증이 사라지는 구조의 결과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조사위원회는 재발방지책으로 용접 품질검사 기준의 상세화, 감리의 용접시공 및 시공 후 검사 계획 확인 의무의 명확화, 현장 용접사 자격검증 강화를 제안하였습니다. 제도가 이제야 명확히 하려는 그 의무들은, 뒤집어 말하면 지금까지 모호하게 남아 있던 책임의 공백이었습니다.

책임은 나뉘지 않고 겹칩니다

2026년 7월, 검찰은 현장소장과 감리단장 등 11명(구속 4명)과 법인 4곳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형사책임은 개인과 법인별로 따로 물어지겠지만, 사고는 결코 한 주체의 몫으로 나뉘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설계의 의도가 시공상세도에서 흐려졌고, 시공은 그 흐려진 지점에서 무너졌으며, 감리는 그것을 걸러내지 못하였고, 발주처는 그 모든 과정을 승인하였습니다.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이 사고가 남기는 교훈은 명료합니다. 각 주체의 책임은 칸막이처럼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겹쳐 있으며, 그 겹친 지점이 비는 순간 사고가 일어납니다. 각 주체가 마련해 둔 보험과 계약상의 책임 범위 역시, 이 겹침의 지점을 기준으로 다시 점검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현장에서 설계의 의도는 마지막 용접 한 줄까지 전달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사람은, 실제로 확인하고 있습니까.

#건설사고 #붕괴사고 #감리책임 #발주자책임 #부실시공 #건설안전 #리스크관리

2026년 1월 30일 금요일

[판례 소개] 대법 "같은 현장, 같은 위험을 나눈 사람은 '제3자'가 아니다"

[판례 소개] 같은 현장, 같은 위험을 나눈 사람은 '제3자'가 아닙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2026. 1. 22. 선고 2022다214040 판결

법률신문은 2026년 1월 22일 「[판결] 같은 현장에서 일하다 산재… 보험금 반환 청구 대상 아냐」(안재명 기자) 기사를 통해, 산재보험 구상권의 범위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도하였습니다. 건설현장의 장비 임대차 관계와 산재보험이 맞닿는 지점을 다룬 판결로, 현장 실무와 리스크 관리 양쪽에서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기에 소개해 드립니다.

건설현장에서 장비를 빌릴 때 운전기사까지 함께 제공받는 계약은 흔합니다. 그런데 그 기사가 사고를 내어 현장 근로자가 다치면,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급여를 지급한 뒤 기사와 장비 임대업체에 그 금액을 돌려달라고 청구해 왔습니다. 재해근로자와 '보험관계가 없는 사람'은 산재보험법상 제3자이므로 구상 대상이 된다는 것이 오랜 판례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판결은 바로 이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사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수급 업체가 임대업체로부터 지게차와 기사를 함께 빌렸고, 기사는 현장 업체의 지시에 따라 그 업체 근로자와 함께 철근을 옮기다 사고를 냈습니다. 1심과 항소심은 기사와 임대업체가 피해 근로자와 다른 회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공단의 구상을 인정하였습니다.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누가 산재보험료를 내느냐가 아니라, 같은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에 관한 공동의 위험관계를 이루고 있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기사는 현장 업체의 지휘·명령 아래 피해 근로자와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었으므로 동일한 위험을 공유한 사람이며, 따라서 '제3자'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공단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두 대법관은 결론에 동의하면서도 기준을 새로 세울 필요는 없다는 별개의견을 냈습니다. 장비 임대 계약을 하도급과 같이 보아 도급사업 산재보험 규정을 유추 적용하면, 임대업체 역시 보험관계 안에 들어오므로 같은 결론에 이른다는 취지입니다.

이 판결이 갖는 의미는 소속보다 현장을 본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의 건설현장에는 원청, 하수급인, 장비업체, 그 기사들이 함께 일하며 같은 위험을 나눕니다. 서류상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중 일부에게 구상 책임을 지워 온 해석은 학계에서도 비판을 받아 왔고, 이번 판결로 그 기준이 재정립되었습니다.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지점이 있습니다. 장비 임대업체와 운전기사로서는 현장 사고로 공단의 구상 청구를 받을 위험이 줄어들 여지가 생겼습니다. 다만 '동일한 위험의 공유'는 사안마다 지휘·명령 관계와 작업 형태를 따져 판단될 것이므로, 장비 임대차 계약에서 지휘 관계와 책임 범위를 어떻게 정해 두었는지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배상책임보험의 담보 구조와 계약 조건도 이번 판결에 비추어 한 번쯤 점검해 볼 만합니다.

※ 본 글은 판결 소개를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기사 원문: https://www.la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233



※ 본 글은 판결 소개를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보다 자세한 해석은 산업재해 전문 변호사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