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이 공정거래법 위반, 특히 담합과 같은 중대 불법행위로 인해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받을 경우, 이를 단순한 '영업상 손실'이나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을 넘어, 경영진의 법적 책임으로 직접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바로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회사가 입은 과징금 상당의 손해를 이사(임원) 개인에게 묻는 사례들입니다.
주주대표소송의 법적 논리
이러한 소송은 상법에 규정된 이사의 의무에 근거합니다.
이사의 의무: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상법 제382조 제2항) 및 '충실의무'(상법 제382조의3)를 부담합니다. 여기에는 회사가 법률을 위반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고, 준법감시 및 내부통제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의무가 포함됩니다.
임무 해태: 만약 이사가 불법적인 담합 행위를 인지하고도 묵인했거나, 혹은 내부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이러한 불법행위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다면, 이는 명백한 '임무 해태'에 해당합니다.
회사의 손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된 막대한 과징금은 회사의 재산이 유출된 명백한 '손해'입니다.
따라서 주주들은 "이사의 임무 해태로 인해 회사가 과징금이라는 손해를 입었으니, 해당 이사가 회사에 그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주요 사례 및 최근 법원 동향
이러한 논리가 가장 첨예하게 다투어진 분야는 대규모 입찰 담합이 발생한 건설업계이며, 최근 법원의 태도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입찰 담합 (가장 주목받는 사례)
사건 개요: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 담합(공구 분할)에 참여한 28개 건설사에 총 4,380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소송 제기: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은 담합에 가담한 현대건설,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 삼성물산 등 주요 기업의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과징금 손실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주요 경과 및 판결 (중요):
초기 1심에서는 '과징금 부과와 이사의 임무해태 간 인과관계 입증 부족' 등을 이유로 주주(원고) 패소 판결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2022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SK에코플랜트 이사들을 상대로 한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담합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하고, "과징금은 담합으로 인해 회사가 입을 수 있는 예상 가능한 손해"라며 이사들의 준법감시 의무 위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현재 대법원 상고 진행 중)
이 판결은 과징금 손실에 대한 이사의 개인 책임을 법원이 명시적으로 인정한 매우 의미 있는 판례로 평가됩니다.
2. 4대강 살리기 사업 입찰 담합
사건 개요: 4대강 사업 1차 턴키 공사 입찰 담합으로 인해 다수의 대형 건설사들이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소송 제기: 2014년경부터 관련 기업(현대건설, GS건설 등) 주주들이 이사들을 상대로 유사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쟁점: 이 역시 담합이라는 불법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이사들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비록 하급심에서 주주 승소가 쉽지는 않았으나, 호남고속철도 건과 더불어 경영진의 준법경영 책임을 묻는 법적 논쟁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기타 산업 (LPG 공급 담합 등)
건설업 외에도 LPG 공급사(E1, SK가스 등)들의 가격 담합 사건 등에서 과징금이 부과된 이후, 이사들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시사점: 준법경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과거 법원은 과징금 손실과 이사 개인의 임무해태 사이의 인과관계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여 주주 측의 입증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불법행위는 경영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이사의 '준법감시 의무'를 강조하는 추세입니다.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이 더 이상 회사의 '비용'으로만 취급될 수 없으며, 이사 개인의 직접적인 손해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결론적으로, 기업 경영에 있어 실질적인 내부통제 및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은, 단순히 규제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이사 개인의 법적 책임을 방어하기 위한 필수적인 경영 활동이 되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