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와 위기 시, 어떻게 다르게 움직여야 할까요?
기업에 예기치 못한 위기(화재, 팬데믹, 공급망 마비, 랜섬웨어)가 닥쳤을 때, 잘 만든 BCP(사업 연속성 계획) 매뉴얼이 서랍 속에 잠자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위기의 순간, 매뉴얼을 실행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사람', 즉 '조직'이 없다면 BCP는 종이 뭉치에 불과합니다.
특히 한정된 자원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SME)일수록, 위기 시 소수의 인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BCP 성공의 핵심은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정의하는 **'현실적인 조직 구성'**에 있습니다.
"계획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전부다."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
아이젠하워의 말처럼, BCP는 '계획(Plan)'이 아니라 '계획하는 과정(Planning)'이며, 이 과정의 중심에는 '조직'이 있습니다.
1. 중소기업이 BCP 조직 구성에 오해하는 것
많은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우리는 작아서 BCP 조직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냥 내가 다 하면 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장 위험한 생각입니다.
오해 1: "새로운 부서나 인력을 뽑아야 한다."
진실: 아닙니다. BCP 조직은 '새로운 팀'이 아니라 기존 인력에게 '명확한 역할(R&R)'을 부여하는 '겸임 조직(TF)' 형태가 기본입니다. 핵심은 '책임자'를 지정하는 것입니다.
오해 2: "CEO 혼자 결정하면 된다."
진실: CEO는 위기 시 최종 의사결정을 하지만, 현장의 모든 실무(IT 복구, 직원 안전, 고객 응대)를 알 수 없습니다. 각 부서의 실무 전문가가 참여해야 실제 작동하는 계획이 나옵니다.
오해 3: "BCP는 IT팀이나 총무팀의 일이다."
진실: 랜섬웨어는 IT팀의 일이지만, 그로 인해 생산이 멈추고(생산팀), 고객 주문을 처리 못 하면(영업팀), 기업 전체의 문제입니다. BCP는 **'전사적 활동'**입니다.
2. BCP 성공을 위한 중소기업 조직 구성 3원칙
거창한 조직도가 아니라, 위기 시 '실제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CEO의 강력한 의지 (Top-Down): CEO는 단순히 "BCP 하세요"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BCP 조직의 '최고 후원자(Sponsor)'가 되어야 합니다. 자원을 배분하고, 최종 계획을 승인하며, 모의 훈련에 직접 참여하여 조직에 무게감을 실어야 합니다.
'겸임'을 통한 효율성 (Flexible Role): 중소기업 현실상 BCP 전담 인력은 불가능합니다. 기획, 인사, 재무, 생산, IT 등 핵심 부서의 담당자가 'BCP 실무'를 겸임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수평적 협력 (Cross-Functional): BCP 조직은 상하 조직이 아닌, '수평적 협의체'여야 합니다. IT팀은 생산팀의 RTO(복구 목표 시간)를 알아야 하고, 인사팀은 재난 시 비상 연락망을, 영업팀은 고객 응대 매뉴얼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3. [가이드] 중소기업 BCP 기본 조직 구성 (안)
중소기업에 가장 현실적인 '기본 BCP 조직' 모델을 제안합니다. 이 조직은 **'평상시(계획/훈련)'**와 **'위기 시(실행)'**에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합니다.
① 최고경영진 (CEO / The Sponsor)
평상시: BCP의 최종 책임자. BCP 정책 및 전략 승인. 자원(예산, 인력, 시간) 할당. BCP 관리자 임명.
위기 시: '비상대응위원회(ERT)'의 위원장 역할. 위기 상황 선포. 최종 의사결정(공장 폐쇄, 사업장 이전, 대외 발표 등).
② BCP 위원회 / TF (The Steering Committee)
구성: CEO를 포함한 핵심 임원 및 부서장 (생산, 영업, 재무, 인사/총무 등)
평상시: BIdentify Impact Analysis(BIA) 결과 검토. 핵심 업무(Critical Business Function) 및 RTO/RPO(복구 목표 시점) 확정. BCP 전략 승인.
위기 시: CEO를 보좌하는 **'비상대응위원회(ERT)'**가 되어 각 부문의 피해 상황을 취합하고, 신속한 복구 실행을 지휘합니다.
③ BCP 관리자 (BCP Manager / Coordinator)
중요! BCP 조직의 '엔진'이자 '실무 총괄'입니다. 중소기업에서는 기획팀, 총무팀, 또는 생산관리팀의 핵심 인력이 **'겸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상시:
BCP 프로젝트 관리 (BIA 수행, 계획서 작성 총괄).
부서별 실무팀 독려 및 의견 조율.
BCP 문서(매뉴얼, 절차서) 취합 및 관리.
모의 훈련 기획 및 주관.
BCP 계획 정기적 업데이트.
위기 시: 위원회(ERT)의 '간사' 역할. 위기 상황실(War Room) 운영. 상황 전파 및 커뮤니케이션 채널 관리.
④ 부서별 실무팀 (Departmental Working Group)
구성: 각 부서(생산, IT, 영업, 인사, 구매 등)의 실무를 가장 잘 아는 핵심 담당자.
평상시:
(BIA 수행) 우리 부서의 핵심 업무 식별, 업무 중단 시 영향도 분석, RTO/RPO 산정.
(복구 계획 작성) 우리 부서의 BCP 세부 절차서 작성 (예: IT팀의 시스템 복구 절차서, 인사팀의 비상연락망 및 급여 지급 절차서).
모의 훈련 '참여'.
위기 시: '부서별 현장 대응팀' 역할. BCP 관리자의 지휘 하에, 사전에 작성된 절차서에 따라 각자의 복구 업무를 신속하게 수행합니다.
4. 평상시 조직 vs. 위기 시 조직 (중요!)
BCP 조직은 평상시(계획)와 위기 시(대응)에 그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평상시 (Planning Mode): 조직의 목표는 '철저한 계획 수립'과 '반복적인 훈련'입니다. BCP 관리자가 프로젝트 매니저처럼 움직입니다.
위기 시 (Response Mode): 조직의 목표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일사불란한 실행'입니다. CEO(위원장)를 중심으로 하는 '비상대응위원회(ERT)' 체제로 즉각 전환되어야 하며, BCP 관리자는 '간사'로서 지휘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도록 지원합니다.
맺음말: '문서'가 아닌 '사람'을 준비하십시오
BCP는 서랍 속 매뉴얼이 아니라, 위기 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지 정해진 '약속'입니다.
중소기업의 BCP 성공은 거창한 조직도나 값비싼 솔루션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회사의 핵심 인력들을 모아 'BCP 관리자'를 임명하고, "우리 회사에 불이 나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할 일:
CEO의 의지를 바탕으로, BCP를 총괄할 'BCP 관리자'를 1명 임명하십시오. (겸임으로 충분합니다.)
그 관리자를 중심으로 핵심 부서(생산/운영, IT, 인사/총무) 담당자를 모아 'BCP 실무 TF'를 구성하십시오.
이 TF의 첫 번째 미션으로 '우리 회사의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 1가지'와 '핵심 업무 3가지'를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준비된 조직만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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