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 전체'로 확대되면서, 기업 경영의 무게추가 '이사회 중심 경영 모델'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변화의 시점에서, 캘거리대 경영대학 김희천 교수의 DBR 기고문 **"상법 개정 이후 이사회 운영 전략"**은 단순한 규정 준수를 넘어,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 창출을 위한 이사회의 구조적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실질적인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위대한 이사회'를 설계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이사회가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4가지 구조적 실패 요인
김희천 교수는 미국의 사베인스 옥슬리법(SOX)이나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사례에서 보듯, 제도적 독립성 강화만으로는 이사회의 기능 부전(board dysfunction)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사회가 실패하는 핵심적인 구조적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1. 전략적 리더십의 포기
이사회 리더십은 경영진 감시나 전략 승인에 머무르지 않고, CEO의 선임과 해임, 비전과 전략 수립, 리스크 관리, 조직문화 형성 등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성공 사례: 애플의 부활 📈
1997년, 애플 이사회 리더였던 에드거 울라드는 당시 CEO였던 길버트 아멜리오의 해임을 제안하고, 스티브 잡스를 고문으로 복귀시키는 최고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사회는 잡스와 정기적으로 소통하며 회생 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협업적 리더십(collaborative leadership)**을 발휘했고, 3년도 안 되어 기업 가치가 20억 달러에서 180억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실패 사례: 코닥의 파산 📉
코닥 이사회는 디지털 전환 전략의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CEO가 제안한 11개 신사업을 별다른 토론 없이 일괄 승인하며 전략적 리더십을 방임했습니다. 이는 결국 누적 적자 심화 끝에 2012년 파산으로 이어졌습니다.
2. 단기 성과에 대한 지나친 집착
일부 이사회는 분기 실적이나 주가 상승 등 단기적인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여, 장기 투자 대신 매출과 순이익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기 전략에만 집중합니다. 이러한 단기 지향적 사고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하고 조직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실패 사례: 보잉 737 맥스 참사 ✈️
보잉 이사회는 250억 달러가 소요되는 신규 항공기 개발 대신, 기존 기종을 개량하는 단기 처방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승객 안전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설계하는 데 집중했으며, MCAS 오작동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운항을 중단하지 않아 연이은 두 차례의 대형 참사(총 346명 사망)를 막지 못했습니다. 보잉은 단기 이익에 치중한 결과,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36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3. 핵심 사업에 대한 전문성 부족
이사들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더라도, 정작 회사의 '돈줄'인 핵심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나 전문성이 부족하면 중대한 전략적 의사결정에서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실패 사례: 리먼브러더스 파산 🏦
파산 당시 리먼 이사회는 10명의 사외이사 중 9명이 은퇴한 인사였고, 금융 또는 투자은행 실무 경험을 지닌 인사는 단 두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사회는 제왕적 CEO 딕 풀드의 고위험 부동산 자산 전략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견제할 수 없었습니다.
실패 사례: 모토로라 '레이저' 사태 📱
모토로라 이사회는 휴대폰 분야 전문성이 부족했고, 신형 무선 폰 '레이저(Razr)'의 잠재력을 무시하며 CEO를 성급하게 해임하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습니다. 해임 직후 출시된 '레이저 V3'는 전 세계적으로 1억 3천만 대 이상 판매된 히트작이 되었으며, 이는 이사회의 무지와 잘못된 판단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4. 보이지 않는 심리적 역학 (집단사고)
개별적으로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이사들로 구성된 모범적인 이사회조차, **집단사고(Groupthink), 확증 편향, 몰입의 심화(escalation of commitment)**와 같은 심리적 요인들이 의사결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워런 버핏의 자기 성찰 💬
워런 버핏은 자신이 경영진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너무 자주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고백하며, 동료 의식과 인간관계 유지가 독립적인 비판 정신보다 우선시되는 경향을 지적했습니다.
실패 사례: GE의 알스톰 인수 💥
GE 이사회는 12차례 검토 끝에 알스톰 인수를 승인했지만, 인수 초기 CEO가 제시한 기대 수익에 과도하게 고착되었고, 부정적인 정보를 고려하지 못했으며, 투자를 지속하려는 심리적 압박이 작용하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인수는 결국 GE에 220억 달러 규모의 영업권 손실을 안겨주었습니다.
🎯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이사회를 위한 2가지 전략적 설계
김희천 교수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법이 아니라 기업의 능동적인 설계와 운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며, 이사회 스스로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 '자신만의 이사회' 유혹을 떨치고 전문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라
CEO가 측근이나 우호적인 인물로 이사회를 구성하려는 유혹은 이사회 실패의 구조적 원인(전문성 결여, 감시 기능 상실, 집단사고)으로 직결됩니다. 따라서 이사회 구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합니다.
산업 전문성 중심 개편: 2024년 말, 인텔은 경쟁력 회복을 위해 금융, 학계 중심에서 **반도체 산업에 정통한 전문가 중심의 '반도체 특화 이사회'**로 대대적으로 개편했습니다. 이는 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다양성을 통한 집단지성 회복: 여성 사외이사는 논쟁적인 의제에 관해 침묵하지 않고 의견을 개진하는 경향이 강하며, 위험에 대한 신중한 접근, 윤리 및 ESG 이슈에 대한 민감성 등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집단사고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2.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된 '참여하는 이사회'를 설계하고 운영하라
규제나 입법을 통한 강제적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독립이사들이 CEO의 권위나 친분에 얽매이지 않고 비즈니스의 본질을 중심에 두고 용기 있게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된 '참여하는 이사회(engaged board)' 문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넷플릭스의 이사회 문화 혁신 📺
정기 경영 회의 참석 의무화: 사외이사들이 관찰자 자격으로 월간 및 분기 경영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여, 회사의 전략과 운영 현황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게 했습니다.
'메모 중심 문화' 전환: 이사회 회의 며칠 전 30페이지 분량의 이사회용 메모를 사전에 전달받아 숙지하게 함으로써, 회의가 단순한 보고나 설명을 넘어서 핵심 이슈에 대한 집중 토론과 전략적 제언의 장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김희천 교수는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규제 준수가 아닌,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선택임을 강조합니다. 이사회가 경영진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승인하는 형식적 기구가 아닌, 전략적 조언자이자 파트너로 기능할 때, 비로소 기업 실패의 위험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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