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토요일

전국 공장의 절반이 '불쏘시개' 위에 세워져 있다

사건의 발단 — 대전 안전공업 공장 화재

2025년 3월 23일, 대전의 한 공장에서 불이 났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졌고, 진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 화재가 계기가 됐다. 정부는 뒤늦게 전국 공장 2,916개를 대상으로 합동 점검에 나섰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조사 결과 — 공장 10곳 중 4곳은 '불량'

점검 결과, 전체의 56%만 '양호'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44%는 소방관계법령 위반 등으로 '불량' 판정이었다. 절반 가까운 공장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본적인 소방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소화기가 없거나, 스프링클러가 고장났거나, 비상구가 막혀 있거나.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불이 나면 막을 수단이 없다.


진짜 문제 — 샌드위치 패널

소방시설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위험 요소가 있다. 바로 샌드위치 패널이다.

점검 대상 공장 건축동 9,051개 중 54.3%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샌드위치 패널은 시공이 쉽고 가격이 저렴해 공장, 창고, 물류센터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문제는 내부 단열재가 가연성 소재일 경우, 불이 붙으면 벽체 안쪽으로 불길이 타고 들어가며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진다는 것이다.

2020년 이후 준불연 기준이 강화됐지만, 기존에 지어진 노후 공장들은 여전히 구형 패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법 개정 이전에 지은 건물은 소급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게 처음 드러난 사실이냐고?

아니다. 이미 수십 년째 반복되어 온 일이다.

2008년,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창고에서 불이 나 40명이 사망했다. 당시에도 패널의 위험성이 집중 조명됐고, 대책 마련 목소리가 높았다.

2020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샌드위치 패널이 화재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불과 12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원인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2021년, 경기 광주 물류창고 화재. 또다시 대형 화재. 또다시 샌드위치 패널. 또다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발표.

사고가 날 때마다 같은 말이 반복된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 그리고 잊혀진다. 그다음 사고가 날 때까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 업체와 소방청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정부는 이번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샌드위치 패널 관리 방안, 불법 증축 단속, 유증기 관리 등 부처 합동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대책 마련을 '부처'만 하면 안 된다.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려면 두 가지 방향의 협력이 필요하다.

첫째, 소방청과 업체의 정기 협력 체계 구축. 현재는 단속과 피단속의 관계다. 소방청이 점검하러 오면 업체는 임시방편으로 가리고, 점검이 끝나면 원상복구된다.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소방청이 업체에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와 기술 지원을 제공하고, 업체가 자발적으로 개선 이력을 보고하는 협력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노후 패널 교체에 대한 실질적 지원. 중소 공장 입장에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드는 패널 교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바꿔라"는 명령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바뀐다. 저금리 융자, 세제 혜택, 단계적 교체 유예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함께 나와야 업체가 움직인다.


마치며

불은 예고 없이 난다. 하지만 피해는 예고된 구조에서 커진다. 44%의 공장이 불량 소방시설을 갖고 있고, 54%가 화재 확산에 취약한 패널로 지어져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이미 사람이 죽었고, 이미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던 문제다.

이번만큼은 발표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다음 화재가 났을 때 또 같은 뉴스가 나오지 않으려면, 지금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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