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4일 토요일

경영자를 향한 법원의 메시지: 중대재해법 주요 기소·판결

2022년 1월 27일, 산업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법 시행 이후 2년이 경과하고, 2024년 1월 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전면 적용되면서,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 경영의 핵심 변수가 되었습니다.

이론이 아닌 현실이 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최근의 주요 기소 및 판결 사례를 중심으로 심도 있게 분석해 드리고자 합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대표적인 사례

법 시행 초기에는 법 적용 1호 대상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며 수사 및 기소가 이어졌고, 법원의 판단도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 법 적용 1호 기소 (보건상 조치 의무 위반) : 두성산업

    • 사건 개요: 창원 소재 에어컨 부품 제조업체인 두성산업에서 근로자 16명이 유해 화학물질(트리클로로메탄)에 급성 중독되는 직업성 질병이 발생했습니다.

    • 의의: 이는 '중대시민재해'가 아닌 '중대산업재해' 중에서도 사망이 아닌 **'직업성 질병'**으로 기소된 첫 사례입니다. 경영책임자(대표이사)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특히 유해 물질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관리(국소배기장치 설치 등)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 대기업 1호 기소 및 1심 실형 : 삼표산업

    • 사건 개요: 2022년 1월, 경기도 양주 채석장에서 발파 작업 준비 중 토사가 붕괴하여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습니다.

    • 의의: 법 시행 직후 발생한 이 사고는 대기업(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실상 첫 번째 주요 수사였습니다. 검찰은 그룹 회장이 아닌, 현장 경영을 총괄한 대표이사(이전 대표)를 경영책임자로 특정하여 기소했습니다.


주요 판결 및 기소 사례

법원의 판결은 법 해석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특히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이 선고되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주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 1호 판결 (집행유예) : 온유 파트너스 (구 정도건설)

    • 사건 개요: 경기도 고양시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가 안전 난간 미설치로 인해 추락하여 사망했습니다.

    • 판결: 원청 대표이사(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습니다 (2023. 4.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 시사점: 법원의 첫 번째 판결로서,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을 인정했으나 '실형'은 면하게 해주면서 향후 양형 기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 1호 실형 판결 : 한국제강

    • 사건 개요: 경남 함안군 소재 한국제강 공장에서 근로자가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 판결: 원청 대표이사(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되었으며,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2023. 4. 창원지법 마산지원).

    • 시사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이 선고된 첫 사례입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노력을 다하지 않았고, 과거에도 유사 사고가 반복되었음에도 실질적인 조치를 외면했다고 질타했습니다.

  • 주요 기소 사례 : SPC 그룹 (SPL 평택 공장)

    • 사건 개요: 2022년 10월,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근로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 진행: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 끝에, 2023년 8월 SPL 대표이사(강동석)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 시사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대형 식품 기업에 대한 기소 사례로, 재판 결과가 향후 대기업의 안전보건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 주요 기소 사례 : DL이앤씨

    • 사건 개요: DL이앤씨는 2022년 법 시행 이후 다수의 현장에서 8건의 중대재해(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 진행: 고용노동부는 본사 및 전·현직 경영책임자에 대한 압수수색 및 집중 수사를 진행했으며, 2024년 검찰이 전 대표이사(마창민) 등을 기소했습니다.

    • 시사점: 반복적인 사고 발생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 의무' 실패의 강력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기업과 회사에 대한 제재

중대재해처벌법은 '양벌규정'을 통해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개인)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법인)에도 책임을 묻습니다.

  • 경영책임자 (개인) 처벌:

    •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시 :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병과 가능)

    • 부상자/질병자 발생 시 :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 법인 (회사) 처벌:

    • 사망 재해 발생 시 : 50억 원 이하의 벌금

    • 부상/질병 재해 발생 시 : 10억 원 이하의 벌금

실제 제재 사례:

  • 온유 파트너스 (1호 판결): 법인에 벌금 7,000만 원 선고.

  • 한국제강 (1호 실형): 법인에 벌금 1억 원 선고.

  • 삼표산업 (1심 판결): 법인에 벌금 1억 원 선고.

현재까지 선고된 법인 벌금액은 법정 최고 한도(50억)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이는 법 시행 초기로서 과거의 유사 판례(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양형 기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향후 법원의 판단이 누적될수록 벌금액은 상향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정부의 방침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방침은 '처벌'과 '지원'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 50인 미만 사업장 전면 적용 (2024. 1. 27.)

    • 정부와 여당은 중소기업의 준비 부족(인력, 예산)을 이유로 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안을 추진했습니다.

    •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유예안 처리가 최종 불발되면서, 2024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 미만) 사업장에도 법이 전면 적용되었습니다.

  • '처벌'에서 '지원 및 예방'으로의 무게중심 이동

    • 법이 전면 시행됨에 따라, 정부(고용노동부)는 영세 사업장의 혼란을 줄이고자 당분간 '처벌'보다는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 주요 지원책:

      1. 산업안전 대진단: 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현황을 자가 진단하고, 미흡한 부분은 정부가 컨설팅과 재정 지원을 연계합니다.

      2. 안전보건 컨설팅 및 재정 지원 확대: 위험성 평가 컨설팅, 노후 위험 설비 교체 비용 지원 등을 대폭 확대합니다.

      3. 공동 안전관리: 개별 기업이 안전관리자를 두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 지역/업종별 공동 안전관리 체계 구축을 지원합니다.

  •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 현 정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산업안전 정책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 이는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와 감독이 아닌, 기업 스스로가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발굴(위험성 평가)하고, 근로자의 참여를 통해 이를 개선해 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사점 및 인사이트

축적된 기소 및 판결 사례들은 기업 경영에 다음과 같은 명확한 시그널을 주고 있습니다.

  1. '실형'은 현실이다 : 더 이상 '설마'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제강 대표이사의 1심 법정 구속 사례는 '징역 1년 이상'이라는 법 조문이 선언적인 위협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법원은 경영책임자가 '형식적인' 노력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했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2.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C-Suite)을 처벌 대상으로 합니다. 현장 소장이나 안전 담당 임원(CSO)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사 및 판결 사례 모두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로 특정하고 있으며, 이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안전보건 시스템을 챙겨야 함을 의미합니다.

  3. 핵심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이다

    재판 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그 시스템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는가'입니다. 특히 **'위험성 평가'**의 실질적 이행(유해·위험 요인 발굴 및 개선 조치) 여부가 경영책임자의 의무 이행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서류상의 시스템이 아닌,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4. 50인 미만 사업장,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다

    법 적용이 전면 확대됨에 따라, 이제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중대재해 리스크를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 제한된 인력과 예산의 한계를 인정하되, 정부의 '산업안전 대진단' 및 각종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하여 최소한의 법적 방어 체계(핵심 위험성 평가, 비상 조치 매뉴얼 등)라도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게 '비용'이 아닌 '필수 투자'로서 안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영책임자의 확고한 의지와 실질적인 시스템 투자가 곧 기업의 존속을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 정보 출처

  •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www.moel.go.kr)

  • 법률신문 - '중대재해법 1호 판결' 분석 기사 (www.lawtimes.co.kr)

  • 한겨레 - '한국제강 1호 실형' 관련 기사 (www.hani.co.kr)

  • 매일노동뉴스 - '삼표산업 1심' 관련 기사 (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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