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7일, 산업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습니다. 법 시행 이후 2년이 경과하고, 2024년 1월 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전면 적용되면서,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 경영의 핵심 변수가 되었습니다.
이론이 아닌 현실이 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최근의 주요 기소 및 판결 사례를 중심으로 심도 있게 분석해 드리고자 합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대표적인 사례
법 시행 초기에는 법 적용 1호 대상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며 수사 및 기소가 이어졌고, 법원의 판단도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법 적용 1호 기소 (보건상 조치 의무 위반) : 두성산업
사건 개요: 창원 소재 에어컨 부품 제조업체인 두성산업에서 근로자 16명이 유해 화학물질(트리클로로메탄)에 급성 중독되는 직업성 질병이 발생했습니다.
의의: 이는 '중대시민재해'가 아닌 '중대산업재해' 중에서도 사망이 아닌 **'직업성 질병'**으로 기소된 첫 사례입니다. 경영책임자(대표이사)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특히 유해 물질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관리(국소배기장치 설치 등)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대기업 1호 기소 및 1심 실형 : 삼표산업
사건 개요: 2022년 1월, 경기도 양주 채석장에서 발파 작업 준비 중 토사가 붕괴하여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습니다.
의의: 법 시행 직후 발생한 이 사고는 대기업(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실상 첫 번째 주요 수사였습니다. 검찰은 그룹 회장이 아닌, 현장 경영을 총괄한 대표이사(이전 대표)를 경영책임자로 특정하여 기소했습니다.
주요 판결 및 기소 사례
법원의 판결은 법 해석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특히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이 선고되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주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1호 판결 (집행유예) : 온유 파트너스 (구 정도건설)
사건 개요: 경기도 고양시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가 안전 난간 미설치로 인해 추락하여 사망했습니다.
판결: 원청 대표이사(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습니다 (2023. 4.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시사점: 법원의 첫 번째 판결로서,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을 인정했으나 '실형'은 면하게 해주면서 향후 양형 기준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1호 실형 판결 : 한국제강
사건 개요: 경남 함안군 소재 한국제강 공장에서 근로자가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판결: 원청 대표이사(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되었으며,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2023. 4. 창원지법 마산지원).
시사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이 선고된 첫 사례입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노력을 다하지 않았고, 과거에도 유사 사고가 반복되었음에도 실질적인 조치를 외면했다고 질타했습니다.
주요 기소 사례 : SPC 그룹 (SPL 평택 공장)
사건 개요: 2022년 10월,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근로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진행: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 끝에, 2023년 8월 SPL 대표이사(강동석)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시사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대형 식품 기업에 대한 기소 사례로, 재판 결과가 향후 대기업의 안전보건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주요 기소 사례 : DL이앤씨
사건 개요: DL이앤씨는 2022년 법 시행 이후 다수의 현장에서 8건의 중대재해(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진행: 고용노동부는 본사 및 전·현직 경영책임자에 대한 압수수색 및 집중 수사를 진행했으며, 2024년 검찰이 전 대표이사(마창민) 등을 기소했습니다.
시사점: 반복적인 사고 발생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 의무' 실패의 강력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기업과 회사에 대한 제재
중대재해처벌법은 '양벌규정'을 통해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개인)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법인)에도 책임을 묻습니다.
경영책임자 (개인) 처벌: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시 :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병과 가능)
부상자/질병자 발생 시 :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법인 (회사) 처벌:
사망 재해 발생 시 : 50억 원 이하의 벌금
부상/질병 재해 발생 시 : 10억 원 이하의 벌금
실제 제재 사례:
온유 파트너스 (1호 판결): 법인에 벌금 7,000만 원 선고.
한국제강 (1호 실형): 법인에 벌금 1억 원 선고.
삼표산업 (1심 판결): 법인에 벌금 1억 원 선고.
현재까지 선고된 법인 벌금액은 법정 최고 한도(50억)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이는 법 시행 초기로서 과거의 유사 판례(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양형 기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향후 법원의 판단이 누적될수록 벌금액은 상향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정부의 방침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방침은 '처벌'과 '지원'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 전면 적용 (2024. 1. 27.)
정부와 여당은 중소기업의 준비 부족(인력, 예산)을 이유로 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안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유예안 처리가 최종 불발되면서, 2024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 미만) 사업장에도 법이 전면 적용되었습니다.
'처벌'에서 '지원 및 예방'으로의 무게중심 이동
법이 전면 시행됨에 따라, 정부(고용노동부)는 영세 사업장의 혼란을 줄이고자 당분간 '처벌'보다는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주요 지원책:
산업안전 대진단: 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현황을 자가 진단하고, 미흡한 부분은 정부가 컨설팅과 재정 지원을 연계합니다.
안전보건 컨설팅 및 재정 지원 확대: 위험성 평가 컨설팅, 노후 위험 설비 교체 비용 지원 등을 대폭 확대합니다.
공동 안전관리: 개별 기업이 안전관리자를 두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 지역/업종별 공동 안전관리 체계 구축을 지원합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현 정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산업안전 정책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와 감독이 아닌, 기업 스스로가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발굴(위험성 평가)하고, 근로자의 참여를 통해 이를 개선해 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사점 및 인사이트
축적된 기소 및 판결 사례들은 기업 경영에 다음과 같은 명확한 시그널을 주고 있습니다.
'실형'은 현실이다 : 더 이상 '설마'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제강 대표이사의 1심 법정 구속 사례는 '징역 1년 이상'이라는 법 조문이 선언적인 위협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법원은 경영책임자가 '형식적인' 노력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했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C-Suite)을 처벌 대상으로 합니다. 현장 소장이나 안전 담당 임원(CSO)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사 및 판결 사례 모두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로 특정하고 있으며, 이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안전보건 시스템을 챙겨야 함을 의미합니다.
핵심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이다
재판 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그 시스템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는가'입니다. 특히 **'위험성 평가'**의 실질적 이행(유해·위험 요인 발굴 및 개선 조치) 여부가 경영책임자의 의무 이행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서류상의 시스템이 아닌,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50인 미만 사업장,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다
법 적용이 전면 확대됨에 따라, 이제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중대재해 리스크를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 제한된 인력과 예산의 한계를 인정하되, 정부의 '산업안전 대진단' 및 각종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하여 최소한의 법적 방어 체계(핵심 위험성 평가, 비상 조치 매뉴얼 등)라도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게 '비용'이 아닌 '필수 투자'로서 안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영책임자의 확고한 의지와 실질적인 시스템 투자가 곧 기업의 존속을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 정보 출처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www.moel.go.kr)
법률신문 - '중대재해법 1호 판결' 분석 기사 (www.lawtimes.co.kr)
한겨레 - '한국제강 1호 실형' 관련 기사 (www.hani.co.kr)
매일노동뉴스 - '삼표산업 1심' 관련 기사 (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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