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5일 토요일

DPP 위협과 한국형 산업 데이터 생태계 구축의 시급성

💡 EU의 '데이터 보호무역'에 맞서는 한국 제조업의 생존 전략

- DPP(디지털 제품 여권) 위협과 한국형 산업 데이터 생태계 구축의 시급성


최근 유럽연합(EU)이 도입을 의무화하고 있는 디지털 제품 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 제도는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판도와 기술 주도권 경쟁의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이슈입니다.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박사님의 심도 있는 기고문은 DPP 제도의 본질을 **'데이터 보호무역'**의 압박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한국 제조업의 능동적 대응 전략, 즉 **'한국형 산업 데이터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김동영 연구원님의 기고 내용을 바탕으로 DPP 제도의 배경과 한국 기업이 직면할 구조적·기술적 위험, 그리고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상세히 소개합니다.


👨‍💻 전문가 프로필: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기고자인 김동영 연구원은 디지털 및 플랫폼 경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제학 박사입니다. 현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KBS '성기영의 경제쇼 디지털경제' 코너에 출연하는 등 디지털 경제 관련 칼럼을 다수 작성해 왔습니다. 특히, 2016년부터 하노버 산업박람회를 참관하며 유럽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현장에서 관찰해 왔습니다.


1. DPP의 본질: 환경을 가장한 '데이터 주권' 전략 🔒

① 순환경제와 DPP의 등장

2025년 4월, 독일에서 열린 하노버 산업박람회(Hannover Messe)의 핵심 주제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였습니다. EU는 순환경제 구현을 위해 세부 계획을 수립하면서 DPP 도입을 의무화했습니다. 이는 마치 국경을 넘을 때 여권이 신원을 보장하듯, 디지털 제품 수출 시 해당 제품을 데이터로 보증하는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② DPP가 요구하는 방대한 제조 데이터

DPP는 제품 수명주기 전반에 걸친 정보가 담긴 데이터 덩어리로, 단순한 라벨링 수준을 넘어섭니다. 유럽에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다음을 포함한 광범위한 제조 데이터를 측정하고 기록하여 DPP 시스템에 등록해야 합니다:

  • 제품의 탄소발자국

  • 원자재 및 부자재의 원산지

  • 제품의 함유 물질 정보

  • 재생 원료 사용 비율

  • 유통·판매·폐기 단계까지의 실시간 추적 정보

이러한 공급망 구조, 원자재 출처, 소재 상세 내역 등은 그 자체가 제조 노하우나 공급망이 담긴 기밀 정보에 가깝습니다. DPP가 제품 개발부터 생산, 유통, 사용 및 재활용에 이르는 모든 단계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때문입니다.

③ 데이터 보호무역으로의 확장: 가이아엑스(GAIA-X)와의 결합

DPP 제도는 EU의 분권형 데이터 공유 생태계 전략인 **'가이아엑스(GAIA-X)'**와 맞물리면서 데이터 보호무역의 수단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DPP는 궁극적으로 EU 데이터 생태계에 참여한 국가 간에만 실질적인 무역이 이뤄지는 '데이터 스페이스 블록' 혹은 **'데이터 프렌드-쇼어링'**의 모습으로 구체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는 제품 경쟁력과 무관하게 EU 시장 진출을 제약할 수 있는 심각한 위협 요인입니다.

EU는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확보를 위해 가이아엑스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분산형 클라우드 철학을 기반으로 신뢰할 수 있는 주체끼리만 데이터를 거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생태계입니다. 이미 자동차 산업에서는 가이아엑스 프레임워크를 받아들인 카테나엑스(Catena-X) 생태계가 구축되어, 공급망 품질 관리 및 ESG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며 DPP 도입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2.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구조적·기술적 위험 ⚠️

① 구조적 위험: 데이터 주도권 상실과 막대한 비용

EU의 데이터 주권 중심 전략과 산업 순환경제 전략이 결합되면, 유럽 중심의 데이터 생태계 참여는 선택이 아닌 강제가 됩니다.

  • 데이터 관리 주도권 상실: 한국 기업은 EU 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DPP를 제출하고, 가이아엑스 기반의 표준 플랫폼을 공통적으로 활용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독자적인 플랫폼이 없으면 EU가 국제 표준을 바꾸거나 표준 플랫폼 사용료를 올릴 때 한국 기업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 막대한 비용 부담: 2026년이면 배터리와 섬유 분야를 시작으로 DPP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간 사용료는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기도 합니다. 이는 한국의 대EU 수출액(2022년 약 92조 원)의 1%에 육박하는 막대한 비용입니다.

② 기술적 위험: 공급망 데이터 수집 인프라의 한계

DPP가 요구하는 상세 데이터 수집 및 관리가 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전 공급망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중소 협력사의 어려움: DPP 요건을 충족하려면 협력 부품·소재 업체까지 모두 준비되어야 하는데, 영세성을 감안할 경우 단기간에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수억 원 규모의 시스템 구축 비용과 관련 전문 인력 운용이 가능한 중소기업이 많지 않은 탓입니다.

  • 시장 접근 제한 우려: 준비 미흡 시, 탄소발자국 데이터나 원료 추적 정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할 경우 EU 수출에 제약이 생길 것이라는 경고가 나옵니다.

③ 산업별 위협: 배터리·자동차 및 섬유 산업

  • 자동차 산업 (배터리):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 강국으로서 DPP 도입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디지털 배터리 여권(DBP)**을 통해 원료, 제조 탄소배출량, 재활용 가능성 등 세부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야 합니다.

    • 공급망 노출 리스크: 자동차 1대당 약 3만 개의 부품 정보를 하나의 QR 코드로 제시해야 하는데, DPP 제출 시 1~N차 부품 공급업체, 소재, 제조 공정 특이사항 등 방대한 정보가 담기게 됩니다. 이는 유럽 경쟁사들이 한국 기업의 원가 구조나 핵심 공급원을 역추적하고, 기술·상업적 노하우를 침해할 단서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 섬유산업: EU는 2030년까지 섬유제품에 DPP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입니다.

    • 영세성 문제: 다품종 소량 생산이 많은 패션업 특성상 많은 기업이 영세하며, 패션기업뿐만 아니라 원단·염색가공 등 협력업체까지 모든 친환경 인증 및 데이터 트래킹 체계를 갖춰야 DPP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3.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 한국형 산업 데이터 생태계 구축 🇰🇷

① 산업 공유지 재편에 대비하라

제조 데이터의 공유는 오랜 기간 지리적 집적으로 형성된 산업 공유지(Industrial Commons), 즉 '제조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은 대면 의사소통이 필요해 지리적 확산이 제한되었지만, 암묵지가 담긴 데이터가 공유된다면 산업 공유지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럽 지역이 이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아시아에 편중된 산업 생태계가 중장기적으로 유럽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② 데이터 사일로 극복과 생태계 조성의 원칙

제조 데이터의 공유와 거래는 생태계가 조성될 때 가능합니다. 생태계는 구성원들이 데이터 공유 및 거래를 통해 **'사적 이익(private returns)'**을 얻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사회적 이익(social returns)이 균형을 이룰 때 유지됩니다.

  • 디지털 시장 실패 극복: 기업 간 상호 신뢰 부족으로 데이터가 회사 내부나 부서 간에도 공유되지 못하는 '데이터 사일로(Data Silos)' 현상은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이어져 디지털판 시장 실패를 초래합니다. DPP 규제와 무관하게, 데이터 공유 및 거래가 가능한 환경 조성은 글로벌 제조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③ 민간 주도의 'K-생태계' 제안과 상호 인증 협력

EU 규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민간 주도한국형 산업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자동차 부문은 독일의 카테나엑스가 리드할지라도, 반도체, 조선, 철강, 바이오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산업군에서는 우리가 리드할 수 있습니다.

  • K-생태계 구상:

    • 반도체: CHIP-K (가칭)

    • 조선: Shipbuilding-K

    • 철강: Steel-K

    • 생명공학: Bio-K

이러한 자체 생태계를 기반으로 EU의 데이터 생태계와 상호 인증 방식의 협력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미 일본은 '우라노스 에코시스템(Ouranos Ecosystem)'을 독일 카네타엑스 플랫폼과 연결해 상호 DPP를 요구하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한국 역시 데이터 주권을 유지하면서 스필오버 효과를 극대화하는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이 시급합니다.


💎 핵심 인사이트: "서둘러야 하지만 조급함은 버려야"

"제조 데이터 생태계는 정부의 일방향적인 설계로 이뤄지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민간 중심으로 데이터 스필오버를 경험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함을 공감할 때 형성될 수 있다. 이에 조급함을 버리고 작은 단위부터 서서히 생태계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추진해야 한다."

데이터 중심의 협력 없이는 디지털 시대에 경쟁우위를 확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정부와 민간이 긴밀히 협력하며 성장해 온 노하우를 이제 제조 데이터 생태계 구축에 활용할 때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NITE 2024년 사고해석 보고서: 데이터가 밝힌 '진짜 위험'

📊 배터리, 온라인 구매, 그리고 고령화: 데이터가 지목한 3대 위험 지난번 NITE(일본 제품평가기술기반기구)의 '사고정보 수집 보고서'가 통계 중심의 '성적표'였다면, 이번에 공개된 **'2024년도 사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