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의 해, 2026년: 우리는 또 무엇을 새롭게 보게 될까 🐎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1980년 저서 『혼란기의 경영』에서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며 "혼란기는 위험한 시기지만 가장 큰 위험은 현실을 부정하려는 충동"이라고 경고했다. 2025년 격변의 한가운데를 지나 2026년을 바라보는 지금, 이 조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중 패권 경쟁에 AI라는 기술의 축이 더해지며 글로벌 지형과 우리의 일상 자체가 '지능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어제의 성공 공식이 구조적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전제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DBR은 2026년을 앞두고 각 분야 전문가 100인으로 구성된 'DBR 인사이트 어드바이저'의 제언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볼 12개의 핵심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 키워드들은 하나의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로 **'어제의 논리를 탈피해 내일의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1. 거스를 수 없는 대전환의 물결: AI 네이티브와 헤게모닉 코피티션
2026년은 탈세계화, 인구 절벽, AI 혁신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맞물리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는 한국 경제가 성장의 정점 이후 하락 국면으로 전환될 위험, 즉 **코리아 피크아웃(Korea Peak-out)**의 우려를 현실화할 수도 있는 시점이다.
가장 주목할 변화는 AI다. 2026년은 AI 에이전트 상용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0여 년간 소비자가 직접 정보를 찾아 행동했던 DIY(Do-It-Yourself) 방식에서 AI 에이전트가 알아서 계획하고 실행해주는 DIFM(Do-It-For-Me)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기술 스택과 비즈니스 전략 전반에 걸쳐 AI 친화적 전환, 즉 AI 네이티브 익스피리언스(AI Native Experience) 설계를 요구한다. 기존의 검색 중심 인터넷이 의사결정 및 실행 중심의 AI 인터넷으로 바뀌면서, AI가 실시간으로 설계·생성하는 유동적인(Fluid) 인터페이스가 표준으로 부상할 것이다.
AI는 또한 조직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평균을 상회하는 '고성과자'를 넘어 AI와 협력하며 압도적인 성과를 지속 창출하는 새로운 인재, **하이퍼 인텔리전트 퍼포머(Hyper-intelligent performer)**의 등장이 예측된다. 이들에게 자원과 권한이 집중되면서 '급여 절벽형 보상 구조'와 '임팩트 계급제'가 나타나 조직 내 양극화와 토너먼트식 경쟁 문화가 심화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규직의 경계가 무너지며 솔로프러너와 외부 파트너, AI 에이전트까지 포괄하는 워크포스 생태계(Workforce Ecosystem)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중 패권 경쟁이 기술의 안보재화, 즉 **테크노 내셔널리즘(Techno-nationalism)**을 통해 더욱 고조된다. 이 경쟁은 목표와 분야별로 경쟁과 협력을 취사선택하는 헤게모닉 코피티션(Hegemonic Coopetition)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과 같은 제3국은 첨단 기술·안보에서는 미국과, 환경·인프라 등 비민감 영역에서는 중국과 협력 프레임을 고도화하는 균형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또한, 중국이 전기차·배터리 산업에서 글로벌 기술·공급망을 주도하는 차이나 인사이드 2.0(China Inside 2.0)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 복잡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상수'로 보고, 기업의 모든 전략을 지정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설계하는 '전략 지정학적 복원력(Geostrategic Resilience)'이 필수 역량이 될 것이다.
2. 불확실성 속, 소비자의 감성을 읽는 기술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장에서 소비를 움직이는 변수는 이성보다 '감성'이라는 분석이다.
경제·사회적 불확실성이 클수록 미소가 구매를 유도하는 스마일노믹스(Smilenomics) 효과는 커진다. 실제로 호스트가 미소를 짓고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의 수요가 증가하는 연구 결과는 미소가 소비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비정보적 단서'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짐을 보여준다.
한편, AI와 플랫폼 발달로 경험 준비 시간이 단축되면서 소비자들은 감정, 시간, 관심 낭비를 최소화하며 특별한 경험을 '수집'하려는 **경험 컬렉터(Experience Collector)**로 변모하고 있다. 기업은 소비자들이 갈구하는 의미(Meaning), 재미(Fun), 상징(Symbol)의 세 가지 '열망 포인트'를 겨냥해 경험을 설계함으로써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경험을 수집하는 주체'로서 브랜드와 깊이 연결해야 한다.
3. 새로운 국력: 소프트 파워와 K콘텐츠 루프
하드 파워가 세계를 가르는 시대일수록 국경을 쉽게 넘는 '소프트 파워'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콘텐츠·브랜드·문화 코드 같은 무형 자산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 세계 시장에 진입하는 '소프트 파워 기반 세계화(Softpower-based Globalization)' 전략이 중요해진다.
한국 소프트 파워의 저력은 구글이 AR 글라스 파트너로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지목한 사례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기술력만큼이나 브랜드, 디자인, 스토리텔링이 제품 완성도를 좌우하며, 한국이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소프트 파워를 경제적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엔진은 K콘텐츠 루프다. K드라마, K팝 등 하나의 장르에서 촉발된 매력이 K뷰티, K푸드 등 타 분야로 확장, 소비되며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형성하는 순환 고리다. 핵심은 IP의 다각화와 플랫폼 시너지다.
이 루프는 콘텐츠를 넘어 물리적 공간으로까지 확장된다. 한국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전 세계 어디서든 한국이라는 장소에 대한 감각적, 정서적 연결을 경험하는 포터블 멀티로컬리티(Portable Multilocality) 현상이 대표적이다. 홍콩의 '부산' 테마 주점, 뉴욕의 '기사 식당' 등 한국적 공간이 가진 총체적 경험을 키트처럼 수출하여 현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시야를 넓히고, 현실을 직시하라
하버드경영대학원 란제이 굴라티 교수는 완벽한 지도를 기다리기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신중하게 첫발을 내딛고 방향을 조정하며 나아가는 **'센스메이킹'**을 강조했다. 길 잃은 부대가 우연히 발견한 불완전한 지도를 붙잡고 무사히 귀환했듯이, 완벽한 예측이 아닐지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비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2026년은 위기 담론의 반복이 아닌 실행 가능한 전략 설계가 절실한 시점이다. 코리아 피크아웃의 우려를 넘어 새로운 경제 성장 궤도를 열기 위해서는 공급망 리스크 관리, AI 기반 생산성 혁신, 그리고 사회적 신뢰 자산 축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새롭게 시작될 붉은 말의 해, 당신은 어떤 변화의 신호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생존을 넘어 혁신으로 나아갈 경로를 설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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