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불행의 경제학, 쿠팡 사태가 만든 먹이사슬의 생태계


알고리즘의 파도 속에서 사유의 닻을 내리는 법

3,370만 명.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거대한 데이터의 집합이자, 사실상 국가 단위의 개인정보가 뚫린 셈이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재난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의 재난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기회가 된다.

재난의 현장에는 언제나 구조대보다 먼저 도착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재난을 '자산'으로 치환하려는 자들이다. 지금 대한민국 법조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쿠팡 집단소송 유치 전쟁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형성된 거대한 먹이사슬의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피해자는 불안에 떨고, 포식자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털 사이트 카페에 모여 자신의 정보가 안전한지, 배상은 받을 수 있을지 불안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불안의 바다 건너편에서 법무법인들은 냉철한 계산을 끝마쳤다.

기사에 따르면 변호사들이 제시하는 성공 보수율은 10~30% 수준이다. 착수금은 무료거나 소액이다. 진입 장벽을 낮춰 최대한 많은 '원고(Client)'를 모집하는 것이 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다. 계산은 간단하다. 1만 명을 모아 인당 10만 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내면, 전체 배상액은 10억 원이 된다. 여기서 성공 보수 30%를 적용하면 법무법인은 단 한 번의 소송으로 3억 원이라는 현금을 손에 쥔다.

이것은 정의 구현을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수주 산업에 가깝다. 피해자의 수는 곧 매출의 파이(Pie)가 되고, 개인의 불행은 법률 서비스라는 상품을 팔기 위한 마케팅 소구점이 된다.

정의의 가격, 10만 원

그렇다면 피해자인 우리의 정보 가치는 얼마로 매겨지는가. 인터파크나 모두투어 등 과거의 판례를 비추어 볼 때, 법원이 산정하는 정신적 손해배상액은 고작 10만 원 안팎이다.

나의 이름, 주소, 연락처, 구매 내역이 전 세계 어딘가로 흘러나갔을지 모른다는 그 찜찜함의 대가가 친구와 먹는 저녁 한 끼, 혹은 커피 몇 잔 값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욕에 가깝다. 그러나 이 소액의 배상금조차 개인이 홀로 싸워 얻어내기엔 소송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단소송이라는 상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밑져야 본전, 커피 값이라도 받자"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미국 소송이라는 신기루

흥미로운 점은 일부 법무법인들이 '미국 법원 제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미국이라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고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에퀴팩스(Equifax)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보자. 당시 합의금은 우리 돈으로 수천억 원에 달했지만, 정작 피해자 개개인이 손에 쥔 돈은 미미했다. 배상금의 상당 부분은 소송을 주도한 변호인단과 관리 비용으로 증발했기 때문이다. 관할권 문제와 지루한 법리 다툼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소송은 승산 있는 전략이라기보다, 경쟁이 치열해진 변호사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마케팅 슬로건일 가능성이 높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작가 라로슈푸코는 "우리는 친구의 불행에서조차 뭔가 기분 나쁘지 않은 점을 발견한다"고 했다. 쿠팡 사태는 현대 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보여준다.

  1. 플랫폼(쿠팡): 보안 소홀이라는 과실을 저질렀으나, 막강한 자본력으로 방어하며 비즈니스를 지속한다.

  2. 피해자(이용자): 정보 주권을 침해당했으나, 실질적인 구제보다는 10만 원짜리 위로금에 만족해야 한다.

  3. 중개자(법무법인):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갈등을 매개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수익을 창출한다.

이 생태계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1만 명을 모으면 3억 원이 생긴다는 명확한 공식 앞에서, 정의는 상품화되고 피해는 자산화된다. 우리는 지금 거대 플랫폼의 실수로 파생된 '불행 시장'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결국, 이 소동이 끝난 뒤 우리 손에 쥐어질 10만 원은 배상금이 아니라, 거대 시스템의 부품으로서 우리가 치른 비용에 대한 영수증일지도 모른다. 소송에 참여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이 거대한 먹이사슬의 일부가 되었다.

변호사들의 뜨거운 구애가 반갑지 않은 이유다. 그들의 열정은 나의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머릿수(Headcount)를 필요로 하기 때문임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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