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8일 월요일

승리의 컵을 들어 올렸지만, 포옛의 작별이 남긴 질문

성적은 완벽했지만 영혼은 다쳤다: 전북 현대의 2025년을 복기하며

전북 현대 모터스 FC의 2025년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4년 만에 K리그1 왕좌를 탈환하고 코리아컵까지 거머쥐며 더블(Double)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라운드 위에서의 전북은 무적이었고, 22경기 무패라는 기록은 그들의 압도적인 힘을 증명했다. 그러나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 영광을 지휘했던 거스 포옛 감독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성적 부진이 아닌, 승장의 사임.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와 스포츠계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무거운 화두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인종차별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의 발단은 포옛 감독의 전술적 파트너이자 오랜 동료였던 마우리시오 타리코(등록명 타노스) 코치로부터 시작되었다. 팀의 더블 우승을 견인한 핵심 브레인 중 하나였던 그가 인종차별적 언행으로 징계를 받고 불명예스럽게 사임한 것이다.

축구는 감독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감독을 보좌하는 코칭 스태프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타리코 코치의 이탈은 단순한 인력 손실을 넘어, 포옛 감독에게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균열을 일으켰다. 자신의 오른팔이 윤리적인 문제로 잘려 나간 상황에서, 포옛은 더 이상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포옛 감독은 웃으며 돌아올 날을 꿈꾸겠다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지만, 그 말속에는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사회적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깊게 배어 있다. 1년 만에 팀을 최정상에 올려놓고도 떠나야만 했던 그의 뒷모습은, 성적지상주의가 덮을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다문화 국가, 절대 금기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단일 민족 국가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K리그 관중석과 그라운드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마주한다. 특히 스포츠, 그중에서도 축구는 전 세계가 공유하는 언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 그리고 스포츠 현장 어딘가에는 인종에 대한 둔감함이 남아 있다. 농담이라는 미명 하에,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적 언행이 용인되던 시대는 끝났다. 타리코 코치의 사례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될 수 없다. 이는 K리그라는 무대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묻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피부색, 종교, 국적을 떠나 오직 실력으로 경쟁하고 땀 흘리는 그라운드는 신성하다. 그곳에서 발생한 인종차별은 스포츠맨십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며, 절대 금기어다. 이번 사건이 주는 충격이 큰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던 페어플레이 정신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이 깊이 인식해야 할 점

기업 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문화는 전략을 아침 식사로 먹어치운다(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라고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전술과 전략(성적)이 있어도, 조직의 건전한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구단 운영진과 스포츠 경영자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깊이 새겨야 할 점은 명확하다.

첫째, 리스크 관리의 범위 확장이다. 선수의 부상이나 전술적 실패만이 리스크가 아니다. 구성원의 윤리 의식과 인권 감수성은 이제 팀의 존폐를 가르는 핵심 리스크다.

둘째, 교육과 시스템의 부재를 점검해야 한다. 외국인 코칭 스태프나 선수가 한국 문화와 글로벌 에티켓 사이에서 혼란을 겪지 않도록, 혹은 무의식적인 차별을 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한 교육과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었는가?

셋째, 성과와 가치의 균형이다. 더블 우승이라는 최상의 성과를 냈음에도 감독이 떠나야 하는 상황은, 현대 스포츠 비즈니스에서 평판(Reputation)과 도덕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AI작


포옛 감독은 떠났고, 전북은 다시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 이별이 남긴 교훈을 단순히 감독 교체라는 프로세스로 덮어서는 안 된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다시 배우고 있다.

그가 남긴 작별 인사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훗날 우리가 조금 더 성숙한 리그 문화를 갖췄을 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이 되기를 바란다.

축구는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임이다. 그러나 어떤 실수는 게임 자체를 멈추게 한다. - 축구 격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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