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데이터의 승부사 염경엽: SWOT으로 본 리더십

1할의 패배자가 쏘아 올린 30억의 반전 드라마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격언이 있다. 하지만 염경엽의 야구는 이 명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는 야구가 감독의 철저한 시나리오와 설계 위에서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하려 드는, KBO 리그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판을 짜는 리더다. 실패한 선수에서 최고의 지략가로, 그리고 이제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거듭난 그의 리더십을 SWOT 기법으로 해부한다. 이것은 단순한 야구 분석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조직을 이끄는 한 리더의 전략 보고서다.



Strengths : 디테일의 건축가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데이터에 기반한 집요한 디테일이다. 스카우트, 운영팀장, 단장을 거치며 습득한 프런트의 거시적 시야와 현장의 미시적 감각을 모두 갖춘 드문 이력을 지녔다. 그는 막연한 감(感)에 의존하는 야구를 거부한다. 대신 상대의 습관, 구종 분포, 타구 방향 등 나노 단위의 데이터를 분석해 작전을 짠다. 특히 뛰는 야구로 대변되는 그의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는 단순한 도루가 아니다. 상대 배터리와 수비진의 심리를 갉아먹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또한, 실패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육성 능력도 탁월하다. 무명 선수의 잠재력을 발굴해 주전으로 도약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선수들에게 구체적인 목표와 매뉴얼을 제시하며 성장을 독려한다. 시스템을 만드는 능력, 이것이 염경엽의 최대 자산이다.

Weaknesses : 염갈량의 역설, 과유불급

강점은 종종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의 치밀함은 때로 지나친 개입(Micromanagement)이라는 비판을 부른다. 선수의 본능적인 플레이를 믿기보다 벤치의 작전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려 할 때, 경기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끊기거나 선수들의 창의성이 위축될 위험이 있다. 또한, 승리에 대한 강박은 특정 투수에게 과부하를 주는 불펜 혹사 논란으로 이어지곤 한다. 단기전이나 위기 상황에서 지나치게 복잡한 수를 두다가 스스로 꼬여버리는 모습, 소위 스마트한 바보가 되는 순간들이 그의 커리어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너무 많은 생각은 때로 직관의 적이 된다.

Opportunities : 왕조 구축을 위한 완벽한 판

그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탄탄한 전력을 갖춘 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두터운 선수층(Depth)은 그가 추구하는 토털 베이스볼을 구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적을수록 그의 용병술은 빛을 발한다. 여기에 KBO의 흐름이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도입, 베이스 크기 확대 등 세밀한 작전과 기동력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변화에 민감하고 공부하는 그에게 새로운 룰은 장애물이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무엇보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우승 못 하는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뗀 경험은 그에게 확신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Threats : 왕관의 무게와 내면의 적

가장 큰 위협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바로 자신의 건강이다. 그는 경기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진 전력이 있다. 완벽주의 성향의 리더가 겪는 필연적인 부작용이다. 승패 하나하나에 과도하게 몰입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스트레스 관리는 그가 롱런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더불어 팬들의 높아진 눈높이도 위협 요소다. 최고의 대우는 그만큼의 성과를 내놓으라는 냉정한 청구서이기도 하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체력과 멘탈, 그것이 2막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2025년의 증명, 그리고 찬사

그리고 2025년 12월, 그가 다시 한번 거머쥔 골든글러브 감독상은 단순한 트로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견제와 챔피언의 저주라는 징크스, 그리고 내부의 안주하려는 본능을 이겨내고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때 실패한 1할 타자였던 그가 이제는 명실상부한 왕조의 설계자로 인정받았음을 세상에 공표한 순간이다. 이 수상은 그가 집요하게 매달려온 데이터와 시스템 야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신을 채찍질하던 그 땀방울이 배신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다.

Insight

염경엽의 야구는 결핍에서 시작해 시스템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그의 SWOT 분석이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리더는 자신의 결점을 치밀한 준비로 메꾸되, 결국 그 준비된 무대를 뛰어노는 것은 구성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치밀하되 집착하지 않고, 뜨겁되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 이 모순된 명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품격을 본다.

"염경엽에게 감독상이란 화려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매일 아침 이불속에서 치러낸 처절한 전쟁의 승전보이자, 가장 낮은 곳에서 스스로를 직시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정당한 대가다."

https://youtu.be/IBxoS0nzJYc?si=NDHcZins0-gAsw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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