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6일 토요일

백색의 공포, 혹은 경고: 2025년 첫눈이 남긴 것

12월 4일 폭설이 내린 부천종합운동장 (KBS뉴스 화면)

"이곳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대한민국 부천입니다."

2025년 12월 4일, 기자의 리포팅은 단순한 날씨 보도가 아닌 일종의 초현실적인 선언처럼 들렸다. 초록빛 그라운드가 순식간에 하얀 도화지로 변해버린 부천종합운동장의 풍경은 아름답기보다 기이했다. 인간이 만든 규칙과 일정, 그리고 열정마저도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음을, 2025년의 첫눈은 묵직하게 증명해 보였다.

마비된 도시, 멈춰 선 일상

수원 FC와 부천 FC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이 폭설로 취소된 사건은 상징적이다.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눈 때문에 경기가 취소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제설 작업을 위해 인력을 투입하고, 눈 위에서도 식별 가능한 붉은 색 공(Color Ball)까지 준비하며 강행 의지를 보였으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발은 인간의 대비를 비웃듯 그라운드를 집어삼켰다.

경기장이 이 지경이라면 도심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를 강타한 이번 기습 폭설은 퇴근길 시민들의 발을 묶고, 도로라는 도시의 혈관을 마비시켰다. 낭만으로 포장되기엔 그 여파가 너무도 가혹한 '교통 대란'이었다. 전광판에 뜬 경기 취소 공지 앞에 허탈해하던 관중들의 모습은, 예고 없이 멈춰 선 도로 위에서 무력감을 느껴야 했던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기후 위기, 풍경이 아닌 재난으로 다가오다

우리는 이 '이례적인' 풍경을 더 이상 우연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12월 초입에 수도권 도심 한복판을 모스크바의 설원처럼 바꿔버린 기상 현상은 명백한 기후 변화의 시그널이다. 과거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설레던 눈 소식이 이제는 '습격'이나 '공습'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재난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예측 불가능성은 기후 재해의 가장 무서운 속성이다. 정교하게 짜인 프로 스포츠의 스케줄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처럼, 우리의 사회 시스템 역시 급변하는 기후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취약할 수 있다. 하얗게 뒤덮인 운동장은 잠시 경기를 멈추게 했지만, 기후 위기가 불러올 파장은 우리 삶의 터전 자체를 멈춰 세울지도 모른다.

눈이 녹고 나면 경기는 다시 열릴 것이다. 그러나 2025년의 첫눈이 우리에게 던진 서늘한 질문은 쉽게 녹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낭만적인 겨울 풍경화인가, 아니면 다가올 기후 재앙의 서막인가. 창밖의 설경을 보며 마냥 들뜰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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