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 토요일

쿠팡 연석 청문회가 남긴 공허한 잔상

2025년의 끝자락, 대한민국 국회는 이례적인 긴장감에 휩싸였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포함한 6개 상임위원회가 연합하여 개최한 ‘쿠팡 연석 청문회’는 단순한 기업 조사를 넘어, 무소불위의 글로벌 플랫폼 권력과 국가 입법권이 정면으로 충돌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틀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남은 것은 명확한 실체 규명이 아닌, 소통 불능의 단절과 감정의 찌꺼기,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거대 자본 통제의 무력함뿐이었다.

새로운 사실 없는 공방, 태도의 논란만 남다

이번 청문회를 관통한 가장 허망한 결론은 '새로운 사실의 부재'였다. 국민이 기대했던 것은 복잡하게 얽힌 개인정보 유출의 실체적 진실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진일보한 대책이었으나, 정작 목도한 것은 낡은 논리의 반복과 감정적인 태도의 충돌뿐이었다.

특히 해럴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의 행보는 한국 정치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그는 과거 한국 기업인들이 보여주었던 '낮은 자세의 사과'라는 관습적 서사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의원들의 고성과 질타에 위축되기는커녕, 논리적인 반박과 강경한 어조로 일관하며 장내를 압도하려 했다. 국회가 제공한 통역기 사용을 거부하며 자신의 언어적 주도권을 놓지 않은 그의 태도는 한국 입법부의 권위를 가볍게 여기는 오만함으로 비쳤다. 침착함을 잃고 고함을 지르는 의원들과 무표정한 얼굴로 법리를 따박따박 따지는 외국인 경영자 사이의 간극은, 오늘날 글로벌 자본이 일국(一國)의 제도를 얼마나 무력하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풍경이었다.

책임의 부재와 전략적 회피: 텅 빈 의장석의 무게

청문회의 본질적 결함은 실질적 결정권자인 김범석 의장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 여덟 번에 걸친 국회의 출석 요구를 외면한 그의 행보는 한국적 기업 지배구조의 허점을 파고든 철저한 책임 회피의 전형이었다. 의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증언대에 선 전문 경영인들은 그 자체로 쿠팡이 세운 견고한 법적·전략적 방벽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의 고리에서는 교묘히 빠져나가는 거대 플랫폼의 구조적 모순은 텅 빈 의장석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주권자의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조차 답변할 의무를 지지 않는 권력, 그것은 이미 국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초국가적 기업권력'의 탄생을 선언하는 듯했다.

숫자의 왜곡과 데이터 주권의 붕괴

정보 유출 사고를 둘러싼 공방은 숫자의 유희에 가까웠다. 쿠팡은 자체 조사를 근거로 유출 규모를 약 3,000건이라 주장하며 사태를 축소하려 했으나, 정부가 파악한 수치는 약 3,300만 건에 달했다. 이 1만 배에 가까운 수치의 괴리는 기업의 투명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데이터는 현대 경제의 혈류이자 시민의 사생활 그 자체다. 그러나 이를 관리하는 거대 플랫폼이 정보 유출의 책임을 은폐하거나 축소 보고하는 행태는 국가의 데이터 주권이 한 기업의 이익 앞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방증했다. 특히 국가정보기관을 배후로 지목했다가 즉각 부인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쿠팡 측의 위증 논란은, 기업이 진실 규명보다 위기 모면에 급급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동의 존엄을 잠식한 효율의 잔혹사

플랫폼 경제가 상찬하는 '혁신적 편리함'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마모된 삶과 죽음이 있었다. 2020년 이후 발생한 30명의 사망자, 특히 제주 새벽 배송 중 스러져간 고(故) 오승용 씨의 사례는 이 시스템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묻게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조차 산업재해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쿠팡은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 대신 행정소송이라는 법적 대응을 선택했다. 유가족의 통곡을 차가운 법리적 논쟁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기업의 태도는, 인간의 존엄이 효율과 비용이라는 냉혹한 지표 아래 매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통렬한 증거였다.

국정조사,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이제 사안은 국정조사라는 더 거대한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이다. 청문회가 남긴 것이 고작 태도 논란과 평행선을 달리는 공방뿐이었다는 비판 앞에서, 정치권은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되었다.

국정조사가 단순한 정치적 퍼포먼스나 기업 길들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플랫폼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혁신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기술적 방어권만을 행사하는 거대 기업과,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려 하나 정교한 논리가 부족한 정치권 사이에서 진실이 표류하는 한, 국민에게 희망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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