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기업규제 전망조사 심층 분석
보고서 소개
발행처: 한국경영자총협회(KEF 경총), 회장 손경식
제목: 2026년 기업규제 전망조사
발행 시점: 2026년 4월
조사 수행: ㈜모노리서치
조사 기간: 2026년 1월 20일 ~ 2월 10일
조사 방법: 구조화된 설문지를 통한 전화·팩스·이메일 조사
조사 대상: 전국 50인 이상 기업 중 설문에 응답한 517개사
응답 기업의 규모별 분포를 보면, 1,000인 이상 대기업이 62개사(12.0%), 300~999인 중견기업이 153개사(29.6%), 50~299인 중소기업이 302개사(58.4%)로 구성되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306개사(59.2%), 비제조업 211개사(40.8%)였다.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88%에 달해 현장 밀착형 응답으로 볼 수 있다.
이 조사의 목적은 국내 기업들의 2026년 기업 규제 전망과 정부에 바라는 규제혁신 정책을 분석함으로써 규제합리화를 위한 정책 제언의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데 있다.
517개 기업은 2026년을 어떻게 전망했나
1. 정부 규제합리화 노력 — "만족"이 다수지만 긴장감은 여전
응답 기업의 **63.8%**가 정부의 규제합리화 노력에 "만족"한다고 평가했다. 세부적으로는 '매우 만족' 2.3%, '다소 만족' 61.5%로 구성되었다. 반면 '불만족' 응답은 23.4%(매우 불만족 3.7% + 다소 불만족 19.7%), '기타(모르겠음 등)'는 12.8%였다.
만족도가 비교적 높게 나온 배경에는 구조적인 변화가 있다. 기존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합리화위원회로 개편되면서 위원장이 대통령으로 격상되었고, 부위원장 3인이 위촉되었으며, 전체 위원 수도 25인 이하에서 50인 이하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정부의 규제 개선 의지 표명이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만족 응답 중 '매우 만족'이 2.3%에 불과하고, 불만족 응답이 4명 중 1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기업 현장의 체감 개선이 여전히 제한적임을 방증한다.
2. 2026년 가장 큰 부담 규제 — 안전·노동·환경이 3대 축
복수응답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규제 순위는 다음과 같다.
| 규제 항목 | 응답률 |
|---|---|
| 중대재해 처벌 등 안전 규제 | 49.9% |
| 근로시간 규제 | 25.0% |
| 탄소중립 등 환경 규제 | 15.5% |
| 상속세·법인세 등 세제 규제 | 11.2% |
|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제 | 8.1% |
| 상법 규제 | 7.9% |
| 기타 | 5.6% |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대표되는 안전 규제를 최우선 부담으로 지목했다. 이는 단순한 법적 리스크를 넘어 경영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3. 정부에 바라는 규제혁신 정책 — 적극행정 면책과 총량 감축
복수응답 기준으로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규제혁신 정책은 다음과 같다.
| 정책 항목 | 응답률 |
|---|---|
| 공무원의 적극행정 면책 강화 | 23.8% |
| 규제 총량 감축제 강화 | 22.2% |
| 의원 입법안 규제 영향분석제 도입 | 18.1% |
| 메가특구 제도 신설 | 16.3% |
| 규제샌드박스 실효성 제고 | 16.3% |
| 기타 | 14.5% |
'공무원의 적극행정 면책 강화'가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이는 기업들이 규제 자체의 철폐보다도, 담당 공무원이 소극적 태도 없이 적극적으로 민원과 허가를 처리해줄 것을 더 시급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제도가 있어도 집행 단계에서 막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4.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 과제 — 투자와 인재가 핵심
| 과제 | 응답률 |
|---|---|
| 정부 보조금·국부펀드 등 대규모 투자 지원 | 42.3% |
| 기술 인재 양성·확보를 위한 교육 개혁 | 38.1% |
| 첨단산업·신산업 획기적 규제 완화 | 29.8% |
| 경쟁국 수준의 전기요금 인하 등 인프라 지원 | 18.6% |
| 해외 투자 유치 인센티브제도 마련 | 14.5% |
| 도전과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가정신 문화 확산 | 11.8% |
숫자 뒤의 맥락 읽기
보고서의 응답률 수치들은 복수응답 기준이기 때문에 단순 합산이 100%를 초과한다. 이 점을 감안하고도 몇 가지 구조적 패턴이 명확히 드러난다.
첫째, 안전 규제의 압도적 지배. 49.9%는 복수응답 환경에서 나온 수치임에도 2위(25.0%)의 두 배에 달한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실상 현장의 공포 요인 1순위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59.2%인 표본 구성을 고려하면, 현장 인력을 대규모로 운용하는 기업들에게 이 수치는 더욱 절박하게 읽힌다.
둘째, 근로시간 규제(25.0%)와 환경 규제(15.5%)의 동반 부상. 이 두 항목은 글로벌 ESG 기준 강화 및 주 52시간제 이후 추가 유연화 논의가 맞물린 결과다. 세제 규제(11.2%)와 개인정보보호(8.1%), 상법(7.9%)이 뒤를 잇는 구조는 규제 부담이 특정 영역에 집중되지 않고 다층적으로 분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규제혁신 정책 수요의 분산. 1위(23.8%)와 5위(16.3%) 사이의 격차가 크지 않다. 이는 기업마다 처한 규제 환경이 다르고, 단일한 정책 해법보다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다.
안전보건, 정보보안, 경영책임의 리스크 관리 — 실무적 함의
안전보건 리스크 —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조적 공포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중대산업재해 예방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한다. 응답 기업의 절반이 이를 최대 부담으로 꼽은 이유는 단순히 벌칙이 무겁기 때문만이 아니다.
핵심은 의무 이행의 불명확성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라는 포괄적 의무 조항이 현장에서 어느 수준이면 충족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이 모호성이 기업으로 하여금 과잉 준수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의도치 않은 법 위반 상황에 노출시킨다.
리스크 관리 전략으로는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안전보건 전담 조직의 독립적 운영과 경영책임자 직속 보고 체계 구축. 둘째, 사고 발생 시 초동 대응 매뉴얼과 법적 대응 절차의 사전 정비. 셋째, 협력업체를 포함한 공급망 전체의 안전 수준 점검 — 중처법은 도급, 용역, 위탁 관계에서도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보안 리스크 — 개인정보보호법의 조용한 확장
응답률 8.1%로 상위권에 오른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제는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개인정보보호법 2023년 개정 이후 강화된 과징금 체계(위반 시 전체 매출액의 3% 이하)와 마이데이터, AI 학습 데이터 규제 논의가 맞물리면서 디지털 전환 중인 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비제조업(40.8%) 응답 기업의 경우 이 항목의 체감 부담은 평균보다 훨씬 높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 유통, 플랫폼 기업들은 대규모 개인정보 처리가 핵심 비즈니스인 만큼, 규제 위반은 영업 정지 수준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스크 관리 핵심은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의 문서화다. 수집-저장-활용-파기의 전 주기를 추적 가능한 형태로 관리하고,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의 권한과 책임을 명문화해야 한다.
경영책임 리스크 — 상법 규제와 이사 의무의 확장
상법 규제(7.9%)가 별도 항목으로 등장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4년부터 이어진 상법 개정 논의,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에서 이해관계자로 확장하는 방향의 개정안은 기업 경영진에게 새로운 법적 불확실성을 안긴다.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특정 결정이 '이해관계자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될 경우, 그 방어 논리를 사전에 구축해두지 않으면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에 의한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이사회 의사록의 정밀한 작성과 의사결정 근거의 체계적 문서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종합적인 시사점
2026년 기업규제 전망조사는 몇 가지 구조적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 안전 규제가 경영 아젠다의 최상위에 올랐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중처법 시행 이후 매년 반복적으로 최상위 부담 규제로 꼽히는 패턴은, 이 규제가 한국 기업 경영 환경의 구조적 변수로 고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규제 완화보다는 명확한 이행 기준 제시가 더 시급한 과제다.
둘, 기업들은 규제의 '양'보다 '질'을 문제 삼고 있다. '공무원의 적극행정 면책 강화'가 규제혁신 정책 1순위라는 사실은, 기업들이 규제 자체의 철폐보다 행정 집행 단계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을 더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규제 총량 감축보다 규제 집행의 신뢰성 제고가 선결 과제일 수 있다.
셋, 혁신 생태계 조성의 전제는 투자와 인재다.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을 위해 규제 완화(29.8%)보다 대규모 투자 지원(42.3%)과 교육 개혁(38.1%)이 더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이는 규제 개혁 일변도의 정책보다 투자 생태계와 인적 자본 확충을 동반한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기업 현장의 인식을 반영한다.
넷, 의원 입법의 규제 영향분석 공백이 현실적 위협이다. 응답 기업의 18.1%가 의원 입법안에 대한 규제 영향분석제 도입을 요구했다. 현재 정부 입법안에는 규제영향분석이 의무 적용되지만 의원 입법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최근 입법 추이를 보면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입법의 상당수가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되고 있어, 이 공백은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인사이트
이 조사 결과를 단순히 '기업들이 규제가 많다고 불평하는 것'으로 읽으면 본질을 놓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규제 부담의 집중도와 그 구조적 원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하나가 전체 응답의 49.9%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기업들의 공포가 특정 규제 하나에 극단적으로 쏠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해당 규제의 설계 방식 자체가 현장 불확실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중처법의 핵심 문제는 결과책임의 구조에 있다. 사업주가 안전관리 체계를 아무리 잘 갖춰도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형사 책임 추궁의 대상이 된다. 이 구조에서 기업 경영자는 완전한 법적 안전지대를 찾을 수 없다. 그 결과 과도한 준법 비용이 발생하고, 일부 기업에서는 위험 업종 진입 자체를 포기하거나 해당 부문을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이런 현상은 규제의 의도(산업재해 감소)와 실제 효과(책임 회피 구조 확산) 사이의 괴리를 심화시킨다. 진정한 산업 안전 향상을 위해서는 처벌 중심 규제 외에 안전 투자 인센티브, 이행 기준의 명확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 지원 체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근로시간 규제 부담(25.0%)도 단순한 노동 규제 문제를 넘어 기업 경쟁력 문제와 직결된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환경에서 연구개발(R&D) 집약 기업들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인 노동 투입이 불가피하다. 경직적인 근로시간 규제는 이들 기업의 프로젝트 기반 업무 방식과 충돌하며, 결과적으로 핵심 인재들이 스타트업이나 해외 기업으로 이동하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탄소중립 규제(15.5%) 부담은 향후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15.5%는 탄소배출권 거래제(K-ETS)와 에너지 효율 규제가 본격화되기 이전의 수치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본격 시행, 글로벌 공급망에서 탄소 발자국 공개 요구 확산 등을 고려하면, 2027~2028년 조사에서는 이 항목이 2위권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 탄소 전략을 단순한 컴플라이언스 과제가 아닌 사업 전략으로 내재화할 적기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 과제에서 '도전과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가정신 문화 확산'이 가장 낮은 응답률(11.8%)을 기록했다는 점은 씁쓸하다. 이 수치는 기업들 스스로가 제도적 지원보다 문화적 변화를 덜 시급하게 여긴다는 의미도 되지만, 동시에 실패 용인 문화 자체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는 독해도 가능하다. 혁신 생태계는 결국 제도가 아니라 문화에서 완성된다는 점에서, 이 낮은 수치야말로 한국 기업 환경의 가장 긴 과제를 암시하고 있다.
본 포스트는 한국경영자총협회(KEF)가 2026년 4월 발행한 「2026년 기업규제 전망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분석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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