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1일 토요일

로사 전 교수 "평판 회복의 해법:'속죄와 용서'"

🔍 들어가며: 평판 리스크, 기업의 운명을 가르다

기업 스캔들은 순식간에 수십 년간 쌓아온 기업의 가치와 평판을 파괴하는 위기 경영의 핵심 리스크입니다.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스캔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중요한 것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하고 평판을 회복하는가'입니다. 아일랜드 더블린대(UCD) 스머핏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이자 기업 평판 및 윤리 경영 전문가인 로사 전(Rosa Chun) 교수는 DBR 416호 기고를 통해, 기업의 평판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속죄(atonement)와 용서'**라는 종교적 개념을 현대 기업에 적용하여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본 아티클의 핵심 인사이트는 기업의 위기 대응 전략이 각 사회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죄책감 문화(Guilt Culture)'**와 **'수치심 문화(Shame Culture)'**라는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1. 문화가 규정하는 '속죄'의 방식: 죄책감 vs. 수치심

로사 전 교수는 기업 스캔들 사례를 통해 서양과 아시아 사회가 죄를 속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제시합니다.

1) 죄책감 문화 (서양 중심)

죄책감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개인 스스로 사회 규율을 위반했다는 내부적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초기 대응 단계에서 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평판 회복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됩니다.

  • 처벌과 보속: 스스로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면 빠르게 사과하고, 이에 상응하는 벌(예: 미국 CEO들의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무거운 징역형)을 충분히 받아야 대중의 용서와 **보속(redemption)**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대응 사례: **페이스북(현 메타)**은 개인정보 유출 스캔들 당시 CEO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대처 방안을 제시하는 등 빠른 인정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주가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배기가스 조작 혐의를 부인하고 은닉하려 했던 폴크스바겐은 소비자 신뢰를 상실하고 주가가 스캔들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수치심 문화 (아시아 중심)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기반을 둔 수치심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자신이 아닌 남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문화는 **체면 보호(face saving)**를 중시합니다.

  • 처벌과 보속: 죄가 확정되기 전 혐의만으로도 악플 등 대중의 '처벌'이 시작되며, 수갑 찬 모습의 사진 등 치욕을 가하는 방식으로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속죄는 주로 책임자가 사표를 내거나 대중 앞에서 90도 이상 허리를 구부려 사죄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이뤄집니다. 극단적인 경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은 수사를 종결시키고 심지어 죄인에서 영웅으로 평가가 반전되는 사례까지 낳습니다.

  • 문제점: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오히려 기업의 투명한 소통을 막고 장기적인 위기관리 능력과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는 한계가 있습니다.


2. 기업의 구원(Redemption) 전략: '내부 평판'과 '코제트'

로사 전 교수는 평판의 회복이란 궁극적으로 속죄와 용서를 통해 일종의 구원, 즉 보속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평판을 회복하기 위한 핵심적인 인사이트를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 핵심 인사이트:

  1. '코제트'를 먼저 챙겨라: 내부 평판의 중요성

    기업은 위기를 맞았을 때 속죄를 구할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 즉 자신들의 **'코제트'**가 누구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이 코제트는 주로 소비자뿐 아니라 직원들을 포함합니다.

    로사 전 교수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통해 직원 신뢰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장발 장이 구원을 받기 위해 딸 코제트의 용서가 필요했던 것처럼 위기의 기업들도 직원들의 신뢰(내부평판)를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원이 느끼는 내부 평판이 소비자의 외부 평판보다 더 중요하며 기업의 경쟁력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문화적 성숙: 죄책감 문화로의 이동

    한국 사회가 위기를 더욱 성숙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치심 문화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죄책감 문화로의 이동은 단순히 기업의 문제를 넘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수치심 문화에서 죄책감 문화로의 이동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건강한 사회란, 기업이 실수나 잘못을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진정한 속죄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용서와 속죄의 문화'가 정착된 사회입니다.


✨ 결론: 지속가능한 평판을 위한 근본적 변화

기업의 평판은 **"평판을 만드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스캔들은 순식간에 평판을 파괴"**합니다. 지속가능한 위기관리와 국제적 신뢰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위기가 발생하기 전부터 직원, 협력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신뢰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위기의 순간에는 투명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속죄를 통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로사 전 교수의 기고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견고한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문화적 성숙과 전략적 변화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대규모 횡령, 내부통제 실패가 경영진의 운명을 가르다

최근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규모의 기업 횡령 사건들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BNK경남은행, 오스템임플란트, 우리은행 등에서 발생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횡령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기업 내부통제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재무적 손실을 넘어 기업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시켰으며, 그 책임은 결국 시스템을 방치한 경영진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본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최근 발생한 대표적인 횡령 사례와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 그리고 경영진이 어떻게 그 책임을 추궁받았는지 통합하여 분석합니다.


1부: "대횡령의 시대" - 내부에서 무너진 기업들

최근 횡령 사건들은 '범행의 대형화', '금융 시스템 악용', 그리고 '장기적·조직적 은폐'라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1. BNK경남은행 (약 3,089억 원): 15년간의 PF 유출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된 이 사건은 한 직원이 무려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을 횡령한 사건입니다. PF 대출 문서를 위조하고 상환 자금을 가족 명의 계좌로 빼돌리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한 개인이 핵심 금융 업무를 독점하며 15년간 감시망을 피했다는 사실은,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음을 입증했습니다.

2. 오스템임플란트 (약 2,215억 원): 자기자본을 삼킨 횡령

코스닥 우량 상장사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횡령액이 당시 기업 자기자본을 초과하며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자금관리팀장급 직원이 은행 잔고 증명서를 위조하고 OTP 등 보안 수단을 악용해, 법인 계좌에서 본인 명의 증권 계좌로 자금을 이체했습니다. 횡령금 대부분은 주식 투자에 사용되었으며, 핵심 재무 담당자가 이토록 쉽게 거액을 유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부회계관리제도의 형식적 운영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3. 우리은행 (약 707억 원 + 100억 원): 반복된 제1금융권의 신뢰 붕괴

제1금융권인 우리은행에서 700억 원대 횡령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100억 원대 횡령이 발생하며 금융권의 고질적인 내부통제 부실을 드러냈습니다. '순환 근무 원칙' 미준수, '명령-휴가 제도'의 형식적 운용 등 가장 기본적인 통제 장치조차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최고 수준의 보안을 요하는 은행 시스템이 언제든 뚫릴 수 있다는 사회적 불신을 야기했습니다.


2부: 실패의 대가 - 경영진은 어떻게 책임을 졌는가

이러한 대형 사고는 주가 폭락과 소액주주 피해라는 직접적인 결과로 이어졌으며, 여론과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최종 책임자인 경영진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1. 오스템임플란트: 신뢰 추락이 부른 '경영권 상실'

  • 사회적 파장: 사건 인지 즉시 주식 매매가 정지되었고, 외부감사인은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비적정'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이는 경영진이 구축한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는 공인이었습니다.

  • 경영진 책임: 창업주인 최규옥 회장은 대국민 사과에 나섰으나, 기업가치 훼손과 행동주의 펀드의 거센 경영 개선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결국 최 회장은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며 경영권을 상실했고, 회사는 2023년 자진 상장폐지되었습니다. 이는 내부통제 실패가 경영진의 경영권 박탈로 이어진 가장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2. 우리은행: 반복된 사고와 금융그룹 회장의 '불명예 사퇴'

  • 사회적 파장: 제1금융권의 반복된 사고에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었습니다.

  • 경영진 책임: 금융감독원은 횡령 사건 및 사모펀드 부실 판매 사태 등을 묶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실패의 최종 책임자로 손태승 당시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통보했습니다. 이는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되는 강력한 제재입니다. 손 회장은 행정소송으로 맞섰으나, 연임 과정에서 여론 악화와 당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불명예 사퇴했습니다.

3. BNK경남은행: 역대 최대 규모와 '전·현직 경영진' 동시 문책

  • 사회적 파장: 15년이라는 범행 기간은 금융당국과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지방은행의 PF 리스크 관리 부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 경영진 책임: 금융당국은 BNK경남은행에 '업무 일부 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고의 장기성을 고려하여 현직 은행장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기간에 재임했던 전임 은행장 2명에게도 중징계를 통보한 것입니다. 이는 내부통제 실패의 책임을 전·현직 경영진 모두에게 포괄적으로 물은 조치입니다.


결론: "개인의 일탈"을 넘어 "시스템의 책임"으로

일련의 사태는 한국 기업 사회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제 횡령은 '운 나쁘게 발생한 직원의 일탈'이 아니라, **'CEO와 이사회가 방치한 시스템적 실패'**로 규정됩니다. 금융당국의 제재, 주주대표소송, 그리고 시장의 냉혹한 평가는 모두 '시스템 구축 및 운영 실패'에 대한 경영진의 최종 감독 책임을 향하고 있습니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적인 컴플라이언스(준법) 활동이 아닌, 경영진의 지위와 기업의 생존을 담보하는 핵심적인 경영 의무가 되었습니다.


NITE 2024년 사고해석 보고서: 데이터가 밝힌 '진짜 위험'

📊 배터리, 온라인 구매, 그리고 고령화: 데이터가 지목한 3대 위험 지난번 NITE(일본 제품평가기술기반기구)의 '사고정보 수집 보고서'가 통계 중심의 '성적표'였다면, 이번에 공개된 **'2024년도 사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