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첫 번째 희생자이자 최후의 보루, 물의 경제학이 전하는 엄중한 경고
지구 생태계의 혈맥이자 인류 문명의 존립 근거인 물 순환 시스템이 인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2024년 10월 21일 발표된 세계물경제위원회(GCEW)의 보고서 '물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Water)'은 기후 변화와 무분별한 토지 이용, 그리고 장기화된 관리 부실이 전 세계 물 순환에 '전례 없는 스트레스'를 가하고 있음을 사료 깊게 분석하고 있다. 본 보고서는 물 리스크를 다룬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로, 단순히 자원 고갈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경제와 인권, 그리고 국가 간 상호 의존성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한다.
물 위기가 초래할 거시경제적 파국과 식량 안보의 붕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물 위기를 방치할 경우 2050년까지 세계 경제 성장률은 최소 8% 하락할 것이며, 전 세계 식량 공급의 절반 이상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물은 기후 위기의 징후가 가장 먼저 발현되는 통로이자, 그 영향이 가장 파괴적으로 나타나는 매개체다. 아마존의 기록적인 가뭄과 유럽 및 아시아를 휩쓰는 대홍수는 이미 물 시스템의 균형이 붕괴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전조 현상에 불과하다.
간과되어 온 ‘녹색 물’의 가치와 국가 간 상호 의존성
보고서는 물의 개념을 강과 호수의 '푸른 물(Blue Water)'에 국한하지 않고, 토양과 식물에 저장된 '녹색 물(Green Water)'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녹색 물은 대기로 증발하여 육지에 내리는 강우량의 약 절반을 생성하는 담수 자원의 핵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물 순환을 통한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연결성이다. 인도와 브라질은 녹색 물을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주요 수출국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그 혜택을 받는 주요 수혜국이다. 예컨대 중국 경제의 안정성이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의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담수가 특정 국가의 자산이 아닌 '글로벌 공동선(Global Common Good)'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수치, 4,000리터의 진실
지금까지 정책 입안자들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의 양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 왔다. 개인의 위생을 위한 직접적인 소비량은 하루 50~100리터 수준이나,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 의류, 공산품 제조에 투입되는 '가상수(Virtual Water)'까지 고려하면 한 사람이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수량은 하루 약 4,000리터에 달한다. 이는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물 부족의 실체가 통계적 수치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낸다.
거버넌스의 부재와 잘못된 인센티브가 부른 인재
물 위기를 가속화하는 주범 중 하나는 정부의 잘못된 보조금 정책이다. 농업 부문의 보조금은 과도한 관개와 낭비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으며, 산업계는 수질 오염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은 채 물을 소비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환경적 압박이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과 아동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물을 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범죄와 질병, 영양 부족은 물 문제가 기후를 넘어선 인권과 성평등의 문제임을 극명히 보여준다.
결론: 국제적 협력과 새로운 물 경제 체제의 확립
지구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대기는 수분을 7% 더 머금게 되며, 이는 더욱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의 대응은 미진하기 그지없다. 지난 50년간 유엔 차원의 물 컨퍼런스는 단 한 차례에 불과했으며, 물 특사 임명 또한 최근에야 이루어졌다.
이제 각국은 자국 중심의 수자원 관리에서 벗어나 초국가적인 물 관리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너무 늦기 전에 담수를 전 지구적 공동선으로 재정의하고, 물의 실질적 가치를 반영한 경제 모델을 수립하는 것만이 인류가 맞이한 기후 위기의 첫 번째 희생자인 물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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