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공정거래법 리스크: 천문학적 과징금에서 경영진 책임까지

최근 기업 경영 환경에서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규제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과거 공정거래법 위반을 '사업을 위한 통행세' 정도로 여기던 시각은 완전히 종식되었습니다.

시장의 건전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집행은 날로 엄격해지고 있으며, 그 제재 수위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법 위반으로 인한 손실이 단순히 '회사'의 재무적 손실로 끝나지 않고,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경영진 개인의 법적 책임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 포스트는 공정거래법 위반의 주요 사례부터 천문학적인 과징금 산정 방식, 그리고 그 책임이 어떻게 경영진 개인에게 귀속되는지 통합적으로 분석합니다.


1. 공정거래법의 엄격한 잣대: 주요 제재 사례

공정거래법은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다양한 행위를 규제합니다. 최근 법 집행 동향을 보여주는 핵심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부당한 공동행위 (카르텔)

경쟁을 가장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로, 과징금 규모가 가장 큽니다.

  • 사례 (건설 분야 입찰 담합): 4대강 살리기 사업, 호남고속철도 등 대형 국책 사업에서 다수의 건설사가 사전에 낙찰자와 투찰 가격을 합의한 행위(입찰 담합)가 적발되었습니다.

  • 결과: 공정위는 관련 기업들에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인 및 관련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는 국가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행위로 엄중히 다뤄집니다.

②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가진 사업자가 경쟁사를 배제하거나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 사례 (퀄컴의 특허권 남용):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 시장의 지배자인 퀄컴이, 휴대폰 제조사들에 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하며 자사 칩세트 구매를 강제하는 등 부당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 결과: 공정위는 이를 지배력 남용으로 판단, 약 1조 3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ICT 기업이라도 국내 시장의 룰을 위반할 수 없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입니다.

③ 불공정거래행위 (거래상 지위 남용)

소위 '갑질'로 불리며, 자신보다 열위의 거래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 사례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이 입점업체에 '최혜국 대우(MFN)' 조항을 강요하여 타 플랫폼에서 더 저렴하게 판매하지 못하게 하거나, 광고비 등을 부당하게 전가했습니다.

  • 결과: 공정위는 이러한 행위가 중소 판매자의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플랫폼 간 경쟁을 저해한다고 보아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전통 산업을 넘어 신산업 분야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④ 경쟁제한적 기업결합 (M&A)

M&A로 인해 특정 시장의 독과점이 심화될 우려가 있을 때 이를 금지하거나 시정 조치를 부과합니다.

  • 사례 (배달의민족-요기요 결합): 국내 1, 2위 배달앱의 결합으로 약 99%의 독점적 시장이 형성될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 결과: 공정위는 결합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요기요'를 제3자에게 매각하라는 강력한 구조적 시정 조치를 명령했습니다.


2. 천문학적 '과징금', 어떻게 결정되는가

공정거래법 위반의 가장 직접적인 제재는 '과징금'입니다. 이 과징금은 부당이득 환수와 위반 행위 억제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부과됩니다.

가. 과징금 산정 방식 (3단계)

  1. 1단계 (기본 산정기준): 관련 매출액 × 부과기준율

    • 관련 매출액: 위반 행위 기간 동안 해당 상품/용역에서 발생한 매출액입니다.

    • 부과기준율: 위반 행위의 '중대성' 정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2. 2단계 (1차 조정): 위반 행위의 기간(장기일수록 가중)이나 횟수(상습범 가중) 등을 고려하여 조정합니다.

  3. 3단계 (2차 조정): 조사 협조 여부, 자진 시정 여부 등(감경 사유)과 조사 방해, 임원 개입 등(가중 사유)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종 부과과징금이 결정됩니다.

나. 과징금 규모 (법정 상한)

2021년 법 개정으로 과징금 상한이 기존 대비 2배 상향되어 제재의 강도가 대폭 높아졌습니다.

  • 부당한 공동행위 (카르텔): 관련 매출액의 20% 이내

  •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관련 매출액의 6% 이내

  • 불공정거래행위: 관련 매출액의 4% 이내

퀄컴 사례에서 보듯, 위반 행위의 파급력이 크고 관련 매출액이 조 단위를 넘어가면 부과되는 과징금 역시 수천억에서 조(兆) 단위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3. "과징금은 회사가 내는 것"의 종말: 경영진 개인의 책임

과거 많은 기업이 과징금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위법 행위를 주도한 경영진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법원의 판례는 이러한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있습니다.

과징금 납부로 인한 회사의 손실은, 해당 위법 행위를 결정했거나 방치한 경영진 개인의 법적 책임으로 직결됩니다.

가. 형사 책임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와 별개로, 위반 행위에 적극 가담하거나 주도한 임원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습니다. 담합의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어, 경영진 개인에게 직접적인 형사 처벌이 가해집니다.

나. 민사 책임 (주주대표소송)

경영진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민사 책임, 즉 **주주대표소송(Shareholder Derivative Suit)**입니다.

  • 법적 근거: 이사는 회사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선관주의 의무)와 충실의무(상법 제399조)를 집니다. 여기에는 법령을 준수하며 담합과 같은 중대 위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감시의무가 포함됩니다.

  • 책임 발생 메커니즘:

    1. 경영진이 담합 등을 주도하거나 방치하여 회사가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납부하는 손해를 입습니다.

    2. 이사회(동료 이사들)가 해당 경영진에게 손해배상(과징금액)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3. 이때 소수 주주(상장사 0.01%)가 회사를 대신하여, "회사의 손해(과징금)를 개인 재산으로 배상하라"며 해당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 주요 판례 동향 (책임의 확대):

    최근 대법원 판례(4대강 담합, 시멘트 담합 관련 소송 등)는 경영진의 책임을 매우 엄격하게 묻고 있습니다.

    • 담합 행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대표이사는 물론 사외이사까지도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감시의무 해태'로 보아 배상 책임을 인정합니다.

    • '담합으로 회사가 이익을 봤으니 손해가 아니다'라는 항변에 대해, 법원은 '위법한 이익은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결론: 경영진의 방패는 '실질적인 준법경영'뿐

공정거래법 위반 리스크는 더 이상 기업의 재무제표에 숫자로 기록되는 '비용'이 아닙니다. 이는 기업의 존립을 위협함과 동시에, 경영진 개인의 법적·재무적 파산을 초래할 수 있는 '핵심 생존 리스크'로 진화했습니다.

이제 형식적인 윤리 강령이나 명목상의 준법 교육만으로는 경영진 개인의 책임을 방어할 수 없습니다. 법 위반 행위를 사전에 탐지하고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내부통제시스템(Compliance Program)의 구축 및 운영만이, 예측 불가능한 법적 위험 속에서 기업과 경영진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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