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1일 토요일

제프리 힐 '자연자본'

 

자연자본: 인류의 영속적 번영을 위한 경제학적 패러다임의 전환

현대 문명은 자연을 경제 활동의 배경이나 무상으로 주어지는 투입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환경경제학자 제프리 힐은 그의 저서 자연자본을 통해 이러한 근시안적 시각이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을 통렬히 지적한다. 이 저작은 자연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필수적인 자본(Capital)으로 재정의하며, 환경과 경제의 해묵은 갈등을 종결지을 명쾌한 논리를 제시한다.


도서의 핵심 구조와 주요 내용

본서는 시장 경제의 실패를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연의 가치를 수치화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통합하는 실천적 대안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구성을 보여준다.

  • 시장의 왜곡과 외부효과의 본질

    저자는 현대 경제학의 가장 큰 맹점으로 '외부효과'를 꼽는다. 공장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수익을 올릴 때,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제프리 힐은 이를 '오염자가 사회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격'이라고 비판하며, 오염자 부담 원칙을 통해 이 비용을 내부화하는 것이 시장의 효율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특히 기후변화를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외부효과로 규정하며 긴급한 대응을 촉구한다.

  • 생태계 서비스와 자연자본의 가치

    자연은 인간에게 가루받이, 물의 순환, 탄소 흡수 등 측정하기 어려운 수준의 혜택을 제공한다. 책은 '다이아몬드와 물의 역설'을 인용하며, 생존에 필수적인 물이 다이아몬드보다 저렴하게 취급되는 현실이 자연자본의 과소평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꿀벌의 가루받이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수조 달러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자연자본이 여타 인적·물적 자본만큼이나 실질적인 경제적 자산임을 입증한다.

  • 공유자원의 비극과 관리 체계

    어업과 삼림처럼 소유권이 불분명한 자원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공유지의 비극' 관점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혁신적인 정책 도구들을 제시하며, 적절한 규제와 시장 메커니즘의 조화가 어떻게 생태계를 재생시키고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지 보여준다.

  • 지표의 혁신: GDP를 넘어 녹색국민소득으로

    저자는 국가의 성패를 단순히 GDP(국내총생산)로만 판단하는 '경제적 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연자본의 감가상각을 반영하지 않는 성장은 자산을 탕진하며 연명하는 가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NDP(국내순생산)와 녹색국민소득 등 환경적 가치를 포함한 새로운 측정 잣대를 제안한다.


저자 및 번역자 상세 소개

  • 저자: 제프리 힐 (Geoffrey Heal)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도널드 웨이트 3세 석좌교수인 제프리 힐은 환경경제학이라는 학문적 영토를 개척한 거인이다. 그는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유엔 산하 IPCC 보고서의 수석 저자로 참여하며 전 지구적 기후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특히 열대우림국가연합(CfRN)과 참여과학자모임(UCS) 등에서 활동하며 이론적 가설을 현실의 정책으로 치환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 그는 경제 성장을 위해 환경을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평생의 연구를 통해 증명해 온 정책 분석가이자 사상가이다.

  • 번역자: 이동구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IT 분야의 프로그래머와 잡지 에디터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경제학적 사유의 깊이와 기술적 문해력을 겸비한 그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경제학적 전문 용어들을 일반 독자들도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유려한 문체로 옮겨냈다. 자연을 향한 개인적인 애정과 경제학적 통찰이 어우러진 그의 번역은 이 책이 단순한 학술서를 넘어 대중적인 필독서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시사점: 미래를 위한 경제적 개종

자연자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인류의 경제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1. 자본의 개념 확장: 이제 자본은 공장과 기계, 현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깨끗한 공기, 비옥한 토양, 예측 가능한 기후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자본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없이는 그 어떤 기술적 진보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2. 보수주의와 환경의 화해: 저자는 미국의 보수주의가 과거 루스벨트나 닉슨 시절에 가졌던 환경 보호의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시장을 파괴하는 외부효과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 설득력을 갖는다.

  3. 세대 간 정의의 실현: 자연자본을 보존하는 것은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자산을 가로채지 않는 윤리적 행위이자, 장기적 성장을 담보하는 전략적 투자다.

이 책은 환경과 경제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관계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며, 자연에 가치를 부여하고 투자하는 행위가 어떻게 새로운 경제적 기회와 풍요로 이어지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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