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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사이버 범죄 세계 3위 경제대국,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Munich Re Global Cyber Risk and Insurance Survey 2026이 드러낸 불편한 진실


사이버 범죄를 하나의 국가로 가정하면, 그 경제 규모는 세계 3위에 해당한다. 2028년까지 글로벌 사이버 범죄 피해 비용은 1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독일·일본·인도의 GDP를 합산한 규모를 넘어선다.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느끼는 감각은 충격이라기보다 일종의 무감각에 가깝다. 너무 크기 때문에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Munich Re가 20개국 9,500명 이상의 C레벨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Global Cyber Risk and Insurance Survey 2026」은 바로 그 무감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AI는 기회이자, 새로운 공격 벡터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AI의 부상이다. 2026년 기준, C레벨 응답자의 71%가 AI를 비즈니스에 유의미한 기술 트렌드로 꼽았다. 2024년의 62%에서 또 한 번 상승한 수치다. 클라우드(52%), 데이터 애널리틱스(53%), 블록체인(24%)을 제치고 AI가 독보적 1위를 차지한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경영 전략의 핵심 축이 실질적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AI에 대한 태도다. 응답자의 66%가 AI가 자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했고, 62%는 기술 자체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미 57%의 기업이 운영에 AI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낙관론 이면에 묻혀 있는 숫자가 있다. AI 도입과 관련한 최대 우려 사항으로 데이터 보안 및 프라이버시(52%), 부정확한 결과(42%), 사이버 공격(42%)이 나란히 상위를 차지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사이버 공격의 맥락이다. Munich Re 전문가들은 AI 툴의 대중화로 인해 사이버 범죄가 점점 더 자동화되고 '민주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도의 기술 없이도 정교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는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위협을 증폭시킨다. "우리 회사는 너무 작아서 공격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이미 시효가 만료된 논리다.


우려는 높고, 대비는 낮다

전 세계 C레벨 임원의 60%가 자사에 대한 사이버 공격 가능성을 "우려" 또는 "매우 우려"한다고 답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이 수치가 80%에 달했고, 일본(70%), 프랑스(71%)도 높은 편이었다. 한국은 59%로 글로벌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숫자는 따로 있다. 전 세계 C레벨 응답자의 89%가 자사의 사이버 보안 보호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고 자평했다. 이 수치는 2021년 81%에서 해마다 꾸준히 상승해 왔다. 위협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는데, 정작 방어 태세에 대한 자신감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는 역설이다.

방어를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로는 직원들의 낮은 보안 인식(40%), 전문 인력 부족(31%), 보안 솔루션 간 통합 및 상호운용성 부재(30%)가 꼽혔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문제라는 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정교한 방어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피싱 메일 하나에 속는 직원 한 명이 그 모든 것을 무력화할 수 있다.

실제 피해 경험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데이터 침해(25%), 비즈니스 중단(27%), 클라우드 서비스 장애(16%), 랜섬웨어(16%) 등 다양한 유형의 사이버 인시던트를 실제로 경험한 기업 비율이 상당하다. 그리고 이 수치와 '우려' 수치 사이의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즉,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현실적 경험이 우려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클라우드 의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단일 장애점

AI 도입률이 57%라면, 클라우드 서비스 의존율은 98%에 달한다. 오늘날 기업 운영의 사실상 전 영역이 클라우드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의존도는 새로운 유형의 시스템 리스크를 만들어낸다.

단 하루의 클라우드 서비스 중단이 일별 매출의 26~50%에 해당하는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응답이 27%였고, 11%는 51~90%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예상했다. 클라우드 제공업체 하나의 장애가 수천 개 기업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 즉 누적 리스크(accumulation risk)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악의적 공격이 아닌 단순한 기술 오류 하나가 글로벌 경제에 연쇄 충격을 가할 수 있다.


보험 시장의 역설: 수요는 충분한데, 공급은 닿지 않는다

이 모든 우려와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보험 시장에는 여전히 거대한 공백이 존재한다. 2026년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응답자(52%)가 자사에 사이버 보험이 제안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보험사가 시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수요 신호는 강렬하다. C레벨 임원의 43%가 사이버 보험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수치는 2021년 35%에서 꾸준히 상승해 왔다. 기업들이 사이버 보험을 구매하는 주된 이유는 비즈니스 중단으로 인한 재정 손실 보전(48%), 배상책임 손실 보전(48%), 전문 대응 서비스 접근(43%) 순이다. AI 리스크를 커버하는 보험에 관심 있다는 응답도 63%에 달했다. 이는 단순한 리스크 전가 수단이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전문적인 위기 관리 역량을 확보하려는 수요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유통과 투명성이다. 많은 의사결정자들이 사이버 보험 상품의 보장 범위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이것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다. 15년 이상 사이버 보험 시장을 이끌어온 Munich Re가 이 보고서를 통해 강조하는 메시지도 바로 이 지점이다. 사이버 리질리언스는 단순한 기업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과제이며, 보호 격차(protection gap)를 좁히는 것이 보험 산업 전체의 임무라는 것이다.


결론: "If"가 아니라 "How"의 문제

Munich Re 보고서의 표제가 "Not If, But How"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이버 공격이 발생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 질문은 언제, 얼마나 자주, 그리고 그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로 넘어간 지 오래다.

디지털화의 가속, AI의 확산, 클라우드 의존도의 심화는 동시에 사이버 공격의 표면적을 넓히고 있다. 그리고 조직의 89%가 스스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현실에서, 사이버 보안과 사이버 보험은 더 이상 IT 부서의 전담 과제가 아니다. 이것은 경영진의 전략적 의제이자, 이사회가 정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리스크 관리의 핵심 항목이다.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위협도 함께 진화한다. 그 속도를 방어 태세가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간극을 메우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기업 리더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본 글은 Munich Re의 「Global Cyber Risk and Insurance Survey 2026」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조사는 Statista가 2025년 12월 20개국 9,500명 이상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Munich Re 내부 전문가들이 2026년 1~2월에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메타 2026 - 기술 혁신과 지정학적 위기가 공존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 기업이 직면한 위험의 성격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세계 최대 기업보험사 중 하나인 알리안츠(Allianz)가 발표한 '2026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메타(Allianz Risk Barometer)'를 통해 현시대 비즈니스 생태계를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와 대응 전략을 분석한다.


1. 알리안츠 및 글로벌 리스크 바로메타 소개

알리안츠 그룹(Allianz Group)은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보험 및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금융 리더다. 알리안츠 산하의 기업 보험 전문 부문인 Allianz Commercial은 매년 초 '글로벌 리스크 바로메타'를 발간하며 업계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험 요소를 식별하고 순위를 매긴 지표다. 전 세계 경영진, 리스크 관리자, 보험 전문가들이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신뢰하는 거시적 지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 글로벌 서베이 방법론

2026년 리스크 바로메타는 역대 최대 규모인 97개국, 3,338명의 리스크 관리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설문 대상은 CEO, 리스크 관리자, 보험 중개인 및 업계 전문가를 망라하며, 각 응답자가 향후 12~24개월 내 본인의 산업 또는 국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Top 3 리스크'를 선정하는 정성적 설문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SME)의 리스크 인식 차이를 함께 분석하여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리스크 지형도를 도출했다.


3. 2026 글로벌 리스크 Top 10 상세 분석

올해의 리스크 지형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인공지능(AI)의 급부상지정학적 리스크의 심화다.

  • 1위. 사이버 사고: 랜섬웨어, 데이터 유출, 대규모 IT 중단 사태가 포함된다. 5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현대 기업의 가장 치명적인 위협으로 군림하고 있다.

  • 2위. 인공지능 (AI): 작년 10위권 밖에서 2위로 수직 상승했다. 도입 과정의 신뢰성 부족, 법적 책임 소재, 생성형 AI를 이용한 가짜 뉴스 확산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 3위. 기업 휴지 (BI): 공급망 마비를 포함한 조업 중단 리스크다. 사이버 공격이나 기상 이변 등 타 리스크와 결합하여 발생하는 연쇄적 타격이 핵심이다.

  • 4위. 법규 및 규제 변화: 무역 관세 인상, 보호무역주의 강화, ESG 공시 의무화 등 국가별 규제 환경의 파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 5위. 자연재해: 2025년 허리케인 시즌의 상대적 안정으로 순위는 소폭 하락했으나, 이상 기후로 인한 물리적 손실액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6위. 기후 변화: 직접적인 피해를 넘어 저탄소 경제 전환 과정에서의 자산 가치 하락 및 운영 리스크 증가가 주요 쟁점이다.

  • 7위. 정치적 리스크 및 폭력: 전쟁, 테러, 사회적 소요를 포함한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전 세계적으로 증대됨에 따라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 8위. 거시경제적 전개: 인플레이션 지속, 금리 변동성, 재정 긴축 정책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회복세의 불확실성이 기업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

  • 9위. 화재 및 폭발: 산업 현장의 고질적인 리스크다. 설비 노후화 및 복합 제조 공정에서의 대형 사고 우려는 여전히 상존하는 위협이다.

  • 10위. 시장 상황 변화: AI 거품에 대한 우려와 M&A 시장의 위축, 신규 파괴적 경쟁자 진입으로 인한 시장 변동성 확대가 순위권에 진입했다.


4. 인사이트: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 및 보험 전략

가. 기술 거버넌스의 확립 (AI & Cyber)

AI가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닌 '현존하는 리스크'로 편입됨에 따라, 기업은 AI 거버넌스 체계를 즉시 구축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편향성, 데이터 프라이버시, 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정기적 감사를 시행하고, 사이버 보안 투자를 단순 방어에서 복구 탄력성(Cyber Resilience)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나. 공급망 탄력성 및 BCP 재설계

지정학적 충격에 대비하여 공급처 다변화(Multi-sourcing)와 실시간 공급망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이 필수적이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블랙 스완' 시나리오를 가정한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BCP)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실제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다. 보험 프로그램의 전략적 리플랜

기업의 고유 리스크 프로파일에 맞춘 맞춤형(Bespoke) 보험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상 이변 시 즉시 보상하는 파라메틱 보험(Parametric Insurance)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캡티브(Captive) 활용을 통해 리스크 전가 비용을 최적화해야 한다. 또한 보험사의 리스크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활용하여 사고 발생 확률 자체를 낮추는 선제적 관리 전략이 요구된다.


결론

2026년의 기업 환경은 AI라는 거대한 파도와 지정학적 긴장이라는 암초가 공존하는 형국이다.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메타가 시사하는 핵심은 개별 리스크가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연결성'에 있다. 하나가 무너질 때 전체 시스템이 마비되는 도미노 효과를 방지하는 것이 현대 리스크 관리의 본질이다.


2026년 1월 3일 토요일

정치적 위험(Political Risk): 조용히 기업을 잠식하는 손실

정치적 위험을 인식하고, 측정하고, 이전(보험)하고, 모니터링하는 일련의 체계


1. 정치적 위험이란 무엇인가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거나 다국적 사업을 전개할 때, 대부분의 리스크 관리자는 환율, 금리, 경쟁 구도를 먼저 살핀다. 그런데 실제로 기업의 자산을 증발시키는 요인 중 상당수는 시장이 아닌 정치에서 온다.

정치적 위험(Political Risk)이란, 외국 정부나 정치 환경의 변화가 기업의 자산, 현금흐름, 운영 가능성에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는 위험을 통칭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 수용·국유화(Expropriation): 정부가 외국 기업의 자산을 보상 없이 또는 불충분한 보상으로 몰수하거나 국유화
  • 환전 및 송금 제한(Currency Inconvertibility & Transfer Restriction): 현지 통화를 외화로 전환하거나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정부가 봉쇄
  • 정치적 폭력(Political Violence): 내전, 테러, 폭동, 혁명 등으로 인해 물리적 자산이 파괴되거나 운영이 불가능해지는 상황
  • 계약 불이행(Breach of Contract): 국영 기업 또는 정부가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거나 이행을 거부

이는 단순한 이론적 분류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국유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자산 동결, 미얀마 쿠데타 이후 외국 기업들의 강제 철수—이 모든 것이 정치적 위험의 실제 발현이다.


2. 데이터가 말하는 현실: 손실은 얼마나, 어디서 발생하는가

51%의 다국적 기업이 손실을 입었다

2026년 1월 보험 브로커 하우든(Howden)이 발표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2020년부터 2025년 사이, 다국적 기업의 51%가 국제 투자에서 정치적 위험 관련 손실을 실제로 경험했다. 이것은 잠재 위험이 아니라 이미 현실화된 손실이다.

가장 빈번한 손실 원인 3가지

손실 유형 발생 비율 평균 손실 규모
환전·송금 불능 40% 1,640만 달러
외국 정부의 소유권 간섭 40% 1,980만 달러
정치적 폭력으로 인한 자산 포기 33% 1,430만 달러

가장 큰 단일 손실을 유발하는 원인은 외국 정부의 소유권 간섭이다. 평균 약 2,000만 달러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하는 이 사건은, 대개 장기간의 협상 실패와 법적 분쟁이 전제되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자산을 잃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의 투자 기회비용까지 함께 증발한다.

환전 불능 문제는 빈도와 규모 모두에서 두드러진다. 외환 통제가 강화된 국가에 자금을 묶어둔 기업은 현지에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본국으로 가져오지 못한다. 이는 회계상의 이익이 실제 현금흐름 위기로 전환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지정학적 맥락: 왜 지금인가

2020년 이후의 시기는 유난히 정치적 위험이 집중된 시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각국 정부의 비상 경제 통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내 외국 자산 동결,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공급망 규제, 그리고 아프리카·중남미 일부 국가의 정치 불안정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기업들이 손실을 입은 것은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규모와 속도가 선례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3. 보험 프로그램의 경제성: 보험료가 아니라 투자 수익률의 문제

보험 가입 기업은 평균 140만 달러 적게 잃었다

이 데이터가 핵심이다. 정치적 위험 보험에 가입한 기업은 미가입 기업 대비 평균 140만 달러 낮은 손실을 기록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보험료가 수십만 달러 수준이라면 ROI는 명백하다.

그러나 보험의 가치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에 그치지 않는다.

1) 이사회·CFO에게 전략적 명분을 제공한다 고위험 신흥국 투자 결정 시, 보험 가입은 "우리는 이 리스크를 인지하고, 정량화했으며, 이전(transfer)했다"는 신호다. 이는 투자 결정의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하고, 거버넌스 관점에서도 방어 논리가 된다.

2) 금융 조달 비용을 낮춘다 일부 프로젝트 파이낸싱 구조에서 정치적 위험 보험은 대출 조건 개선의 담보로 활용된다. 세계은행 산하 MIGA(다자간투자보증기구)나 민간 보험사의 커버리지가 있으면 금리 스프레드가 낮아지거나 대출 가능 규모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3) 보상만큼 중요한 것은 '분쟁 해결 지원'이다 정치적 위험 보험사들은 단순히 손실 발생 후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용·국유화 사태가 발생하면 해당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 보험사가 직접 개입하여 자산 회수나 보상을 위한 외교적 채널을 활용한다.

미가입의 진짜 비용

많은 기업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리 국가엔 그런 일이 없다"는 과신, 그리고 "보험료가 아깝다"는 단기 손익 논리. 그러나 1,980만 달러짜리 손실 한 번이, 수년치 보험료를 압도한다. 리스크가 현실화되기 전까지 보험은 비용처럼 보인다. 현실화된 이후에는, 그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경영진의 판단 실패로 기록된다.


4. 보험만으로는 부족하다: 통합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

하우든 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수치가 있다. 80%의 기업이 보험 외에도 추가적인 정치적 위험 완화 도구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채택하려는 방법론은 크게 세 가지다.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 단일 예측이 아니라 복수의 가능한 미래를 구조화하는 방법론. "이 국가에서 환율 통제가 강화된다면?", "선거 결과에 따라 외국 자본 규제가 도입된다면?"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각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을 수립한다.

지정학 인텔리전스 추적 일회성 국가 리스크 평가가 아닌 상시 모니터링 체계. 정치적 리스크는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수개월의 신호가 선행된다. 정치 뉴스, 의회 동향, 외환보유고 변화, 사회적 불안 지표 등을 통합 추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 기반 노출도 평가 기업이 특정 국가에 얼마나, 어떤 형태로 노출되어 있는지를 정량화하는 작업. 이를 통해 보험 구조를 최적화하거나 사전 헤징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보험과 결합될 때 비로소 정치적 위험 관리가 완성된다. 보험은 최후의 안전망이지, 유일한 안전망이 아니다.


결론: 불확실성은 관리할 수 있다

지정학적 위험은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외생 변수다. 그러나 그 위험에 어떻게 대비하느냐는 철저히 내생적 결정이다. 다국적 기업의 절반 이상이 이미 손실을 경험한 세계에서, "아직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논리는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요행의 기대다.

정치적 위험을 인식하고, 측정하고, 이전(보험)하고, 모니터링하는 일련의 체계—이것이 2026년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다국적 기업이 갖춰야 할 기본 인프라다.


참고: 본 글은 Howden Group의 2025년 정치적 위험 조사 및 Risk Management 매거진(2026년 1월, Morgan O'Rourke 기고)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5년 12월 17일 수요일

2025년, RIMS가 선정한 ‘올해의 리스크’: 우리가 마주한 세계의 민낯

2025년은 전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에 흔들린 해였다.  

RIMS(Risk and Insurance Management Society) 산하 Risk Management Magazine은 매년 가장 중요한 리스크 사건들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2025년 12월 17일 공개된 올해의 리뷰는 그야말로 “위험의 백과사전”이라 부를 만했다.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 기술 인프라 붕괴, 기업 평판 위기, 규제 강화까지—2025년은 리스크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증폭되는 ‘복합 리스크의 시대’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기후 변화가 만든 재난의 연쇄

2025년의 시작은 LA 대형 산불이었다. 1월 7일, 남부 캘리포니아는 57,000에이커가 불타고 30명 이상이 사망하는 초대형 산불을 겪었다. 보험 손실만 400억 달러, 경제적 피해는 최대 2,500억 달러로 추정되며 미국 역사상 가장 비용이 큰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어진 사건들도 기후 변화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 미얀마 규모 7.9 지진, 사망자 5,300명 이상
  • 캐나다 ‘좀비 화재’, 6,000건 이상 산불 발생
  • 허리케인 멜리사, 자메이카 상륙 후 100억 달러 피해
  • 텍사스 홍수, 단 45분 만에 강 수위 26피트 상승, 135명 사망

이 모든 사건은 기후 변화가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시스템 리스크임을 보여준다.

기술 인프라의 취약성: AWS 장애가 드러낸 현실

2025년 10월, 전 세계 7만 개 조직이 동시에 멈춰 섰다. 바로 AWS의 대규모 장애 때문이다. 자동화 소프트웨어 버그 하나가 글로벌 플랫폼을 연쇄적으로 마비시켰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 클라우드 집중화가 가져온 위험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CyberCube는 이를 “체계적 클라우드 집중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리스크: 정책 하나가 세계 시장을 흔들다

2025년은 정치적 결정이 경제와 기업 운영에 얼마나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해이기도 했다.

  • 미국의 대규모 관세 정책: 트럼프 행정부는 거의 모든 교역국에 기준 10%,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세계 시장은 즉각적으로 요동쳤고, 소비자들은 관세 비용의 55%를 부담하게 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 사상 최초의 연방정부 셧다운: 10월 1일 시작된 셧다운은 무려 43일간 지속되며 미국 경제에 최대 1.5%의 GDP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기업 평판 리스크: 한 번의 결정이 수십억 달러를 흔들다

  • 타겟(Target)의 DEI 철회: DEI 프로그램을 철회한 타겟은 소비자 반발로 시가총액 124억 달러 감소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 M&S 랜섬웨어 공격: 영국의 마크스 앤 스펜서는 랜섬웨어 공격으로 온라인 거래가 중단되며 10억 파운드의 시장 가치 손실을 입었다.
  • 스타벅스 노동법 위반: 뉴욕시 역사상 최대 규모인 3,890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며 평판 리스크의 무게를 실감했다.

규제와 법적 리스크의 확산

2025년은 규제 강화의 흐름이 글로벌하게 확산된 해였다.

  • AI 저작권 소송 판결, 일부 기업 승소하지만 판사는 “많은 경우 불법이 될 것”이라 언급 
  • EU의 빅테크 제재, 구글에 35억 달러 벌금 부과
  • PFAS 오염 사건, 이탈리아 전 임원 11명에게 총 141년형 선고

규제 환경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기업들은 단순한 준법을 넘어 지속 가능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

2025년이 남긴 메시지: 복합 리스크의 시대

RIMS의 ‘Year in Risk 2025’는 올해의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RIMS의 보고서는 우리가 지금 서로 연결된 리스크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강조한다.

  • - 기후 변화는 자연재해를 넘어 경제·정치 시스템까지 흔들고  
  • - 기술 인프라 장애는 글로벌 운영을 멈추게 하며  
  • - 정치적 결정은 공급망과 시장을 뒤흔들고  
  • - 기업의 평판 리스크는 즉각적인 재무적 충격으로 이어진다  

2025년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리스크는 더 이상 개별 사건이 아니다. 서로 연결되고, 증폭되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나타난다.”

2026년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단순한 대응을 넘어 선제적이고 통합적인 리스크 관리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