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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셸(Shell)은 왜 전 세계 법정에서 동시에 싸우고 있는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셸(Shell, LSE: SHEL)이 요즘 법정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나이지리아 — 대륙을 가리지 않고 7건 이상의 기후·환경 소송이 동시다발로 진행 중이다. 이 소송들은 단순히 한 기업을 겨냥한 법적 공방이 아니다. 화석연료 산업 전체의 미래, 그리고 우리가 기업의 책임을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시대적 질문이다.


1. 가장 중요한 소송 — 법정에서 기후 과학을 이긴 날

2021년 5월 26일,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은 역사에 남을 판결을 내렸다. 환경단체 밀리우데펜시(Milieudefensie, Friends of the Earth 네덜란드)와 17,000명 이상의 시민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셸에게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하라고 명령했다.

민간 기업에게 구체적인 탄소 감축 수치를 강제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법원은 이렇게 밝혔다. "셸은 혼자서 이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셸이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개별적 부분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셸은 즉각 항소했고, 2024년 11월 헤이그 항소법원은 구체적인 45% 수치는 부과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언론은 셸의 승리라 보도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항소법원은 중요한 단서를 달았다. "셸과 같은 대형 에너지 기업도 기후 보호 의무를 진다"는 원칙 자체는 인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유전에 대한 투자가 셸의 주의 의무와 충돌할 수 있다고 암시하기도 했다.

밀리우데펜시는 2025년 2월 네덜란드 대법원에 재상고했고, 5월에는 셸의 신규 유전 700개 개발 계획을 근거로 새 소송까지 준비 중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2. 이사진을 직접 법정에 세우려 했던 시도

2023년, 환경법 전문 NGO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는 전례 없는 도전을 했다. 셸의 주주 자격으로 셸 이사회 전원을 피고로 하는 파생소송을 영국 고등법원에 제기한 것이다.

핵심 주장은 이랬다. 셸의 기후 전략이 워낙 허술해서, 이사들이 영국 회사법상 자신들에게 주어진 리스크 관리 의무(fiduciary duty)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셸의 당시 계획대로라면 2030년까지 순배출량이 고작 5%밖에 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NEST, 스웨덴 연금 AP3 등 기관투자자 1,200만 주 보유자들이 소송을 지지했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남긴 메시지는 강렬하다. 기업 이사진이 기후 리스크를 소홀히 관리했다는 이유로 직접 법정에 서야 할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더 많이 제기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 30년 묵은 상처 — 나이지리아 오염의 진실

시간을 1995년으로 돌려보자. 나이지리아 군사정권이 환경운동가 켄 사로-와이와(Ken Saro-Wiwa)를 포함한 '오고니 9인(Ogoni Nine)'을 교수형에 처했다. 이들의 죄목은 셸의 니제르 삼각주 석유 개발에 반대한 것이었다.

사로-와이와 가족은 셸이 군에 물자와 정보를 지원하고 증인을 매수했다는 혐의로 1996년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12년 뒤인 2009년, 셸은 1,550만 달러(약 200억 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숫자가 말해주었다.

오늘날 니제르 삼각주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오갈레와 빌레 공동체 주민 약 5만 명이 현재 런던 고등법원에서 셸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2011년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가 밝힌 오갈레 지역의 지하수 벤젠 농도는 WHO 기준의 900배였다. 2025년 6월, 영국 법원은 셸의 절차적 항변을 기각하고 본안 심리로 나아갔다. 이 소송은 이제 본격적인 막이 오른 셈이다.


4. 광고 한 편이 불러온 나비효과

2022년, 셸은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는 TV·유튜브 광고를 방영했다. 풍력발전, 전기차 충전소, 미래 에너지 — 화면은 온통 녹색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셸 전체 투자의 약 68~70%는 여전히 석유·가스에 쏠려 있었다.

시민단체 '광고금지도시(Adfree Cities)'의 신고로 영국 광고표준청(ASA)은 조사에 나섰고, 2023년 6월 광고 방영 금지를 명령했다. 소비자들이 셸의 저탄소 활동 비중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셸은 2024년 광고에서는 투자 비중을 자막으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바꿨고, ASA는 이번엔 문제없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다. 셸의 실제 재생에너지 투자 비율은 13.3%인데, 광고에서는 23%라고 표기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린워싱은 이제 광고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리스크가 됐다. EU의 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이 본격 시행되면, 이 전선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5. 모든 소송이 던지는 하나의 질문

이 7개의 소송을 관통하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기업은 자신이 만들어낸 기후 위기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가?

10년 전이라면 황당한 소리로 들렸을 이 질문이,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법학자들이 진지하게 다투는 법정의 쟁점이 됐다. 그리고 법원들은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그렇다"는 방향으로 답을 내놓고 있다.

2021년 네덜란드 판결은 파기됐지만, 항소법원조차 "셸은 기후 보호 의무를 진다"는 원칙은 인정했다. 나이지리아 오염 소송은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본국에서 책임질 수 있다는 판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사회 소송은 기각됐지만,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기후 리스크를 주주가치와 직접 연결해서 보기 시작했다.


6.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소송 비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직접적인 벌금이나 합의금보다, 불확실성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할인 효과가 더 크다. 소송이 장기화될수록 셸의 신규 사업 투자 결정이 불확실해지고, 이는 중장기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둘째, 규제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EU CSRD, 영국 회사법 해석 변화, 각국 기후 소송 판결 축적 — 이 모든 것이 에너지 기업의 영업 환경을 재편하고 있다. 셸이 오늘 짜는 사업 계획이 5년 후에도 유효하다는 보장이 없다.

셋째,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관건이다. 셸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얼마나 진지하게, 얼마나 빠르게 늘리느냐가 향후 소송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광고로 이미지를 관리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마치며

셸의 기후 소송 사례들은 ESG가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님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기업은 어느 날 갑자기 법정에 서게 될 수 있다. 그것도 한 나라가 아니라, 지구 반 바퀴를 돌아다니며 동시에.

셸이 지금 법정에서 어떤 답을 내놓느냐는, 앞으로 수십 개의 에너지 기업들이 따라가야 할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본 포스트는 공개된 법원 자료, 환경 단체 보고서,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투자 조언이 아니며, 구체적인 투자 판단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Milieudefensie, ClientEarth, Corporate Accountability Lab, Amnesty International, ASA, Climate Case Chart (Columbia Law School)


2026년 4월 3일 금요일

글로벌 분유 리콜 사태 분석: 공급망이 곧 안전

사태의 시작 — 독소 하나가 글로벌 시장을 흔들다

2026년 초, 영유아 분유 시장에 대규모 충격파가 덮쳤다. 네슬레, 다논, 락탈리스 같은 세계 최대 식품 기업들이 줄줄이 분유를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콜의 직접 원인은 '세레울리드(Cereulide)'라는 독소. 바실러스 세레우스(Bacillus cereus) 박테리아에서 유래된 이 독소는 구토와 메스꺼움뿐 아니라 패혈증, 심각한 간 손상, 뇌농양 등 중증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프랑스 공중보건청은 세레울라이드가 프랑스 집단 식중독 원인의 약 2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독소 그 자체가 아니라 독소의 경로였다. 분유에는 모유와 비슷한 영양 성분을 구현하기 위해 오메가-6 계열 불포화지방산인 아라키돈산(ARA)이 사용된다. 문제가 된 분유 속 아라키돈산은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하나의 중국산 원료 공급업체에서 시작된 오염이 여러 국가, 여러 브랜드, 수십 개 제품으로 동시에 번져나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레울리드가 열에 강해 제조·가공 과정에서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분유 제조사들은 가루 상태의 분유를 기준으로 안전 검사를 시행해 왔는데, 추가 검사를 통해 물과 섞었을 때 독성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발견됐다. 수십 년간 업계 전체가 잘못된 검사 기준 위에서 제품을 출하해 온 셈이다.


리콜의 핵심 원인 — 효율을 추구한 글로벌 공급망의 역습

이번 사태는 단순한 품질 불량 사고가 아니다. 구조적 문제의 폭발이다.

글로벌 식품 기업들은 수십 년간 비용 효율을 최우선으로 공급망을 설계해 왔다. 특정 원료를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는 곳에서 대량 조달하는 방식. 아라키돈산의 경우, 중국의 특정 공급업체 카비오 바이오텍(Cabio Biotech)이 다수 글로벌 기업에 원료를 납품하는 구조였다. 프랑스 아동건강단체인 칠드런스헬스는 카비오 바이오텍을 지목하며, 정부에 이 회사가 생산한 아라키돈산이 함유된 모든 분유를 회수하도록 명령할 것을 요청했다. 카비오 바이오텍은 아라키돈산 오염 의혹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나의 공급처가 오염되자, 그 원료를 사용한 모든 브랜드가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공급망 집중화가 리스크 집중화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다.

대책 측면에서는 세 가지 방향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첫째, 세레울리드에 대한 국제 통일 허용 기준 수립이다. 현재 글로벌 기준에서 세레울리드에 대해 합의된 안전 허용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거나 아예 없는 상태다. 둘째, 완제품 상태뿐 아니라 물에 혼합한 상태에서의 독소 농도를 측정하는 검사 방식 전환이다. 셋째, 핵심 원료의 공급업체 다변화와 리스크 분산으로, 단일 공급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근본적 해법으로 지목된다.


리콜한 기업들 — 같은 원인, 다른 대응

네슬레는 이번 사태의 트리거 역할을 한 기업이자, 가장 빠르게 움직인 기업이기도 하다. 고도화된 자체 검사 프로토콜을 통해 유럽의 한 생산 시설에서 제조된 일부 배치에서 극미량의 세레울리드 존재 가능성을 업계 최초로 감지했고, 심층 조사 결과 글로벌 업계 공급업체로부터 공급된 특정 아라키돈산 오일의 오염이 원인임을 확인했다. 네슬레가 제공한 정보는 타 제조사들이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문제를 발견하고 리콜을 발표하는 데 11일이 걸렸다는 점에서 늦장 대응 논란도 피하지 못했지만, 업계 최초 발견자로서 정보 공개를 주도한 점은 달리 평가할 부분이다. ARA 오일 공급망은 글로벌 공급업체(중국산 포함)에 의존했고, 리콜은 60개국 이상으로 확대됐다. 자체 내부 품질 기준은 EFSA 가이드라인 기반의 '검출 불가' 수준으로 규제 기준보다 엄격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락탈리스는 피코(Picot) 브랜드 분유를 리콜했다. 락탈리스는 피코 분유 일부 제품을 프랑스뿐 아니라 중국, 호주, 멕시코 등에서 리콜한다고 발표했으며, 리콜은 판매된 18개국에서 모두 진행됐다. 프랑스 농림부 산하 식품총국은 16일에 락탈리스 분유에서 독소가 발견됐다고 인지했고, 리콜 조치 발표까지 5일이 걸렸다. 네슬레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중국산 ARA 오일을 조달했으며, 당국의 통보 이후에야 수동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리스크 거버넌스 측면에서 규제 기준 추종형에 가까웠다. 2017년 살모넬라균 분유 사태 당시에도 늑장 대응 논란이 있었던 만큼 소비자 신뢰 회복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논은 압타밀(Aptamil) 등 자사 분유 브랜드를 통해 피해가 확산됐다. 싱가포르 식품청이 다논의 태국산 듀맥스 둘락 1의 예방적 리콜을 명령한 데 이어, 아일랜드 식품안전청도 다논이 아일랜드에서 제조된 특정 배치의 영아용 분유 및 성장기용 분유를 대상으로 리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리콜의 원인 역시 중국에서 제조된 ARA 오일 원료가 세레울라이드에 오염됐을 가능성이었다. 다논 역시 당국 명령 이후 이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으며, 리스크 거버넌스 구조는 락탈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기업 모두 글로벌 중국산 ARA 오일 공급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취약성을 안고 있었다. 차이는 문제 인지 후 공개까지의 속도, 정보 투명성,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갈렸다. 네슬레가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리콜을 주도했다면, 락탈리스와 다논은 당국의 발표가 나온 뒤에야 리콜에 나서는 수동적 태도를 보였다.


리콜하지 않은 기업 — 힙(HiPP)의 공급망 철학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받은 브랜드 중 하나가 독일의 유기농 영유아식 기업 힙(HiPP)이다.

힙은 리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이다. 힙분유는 유럽 내 6,000개 이상의 유기농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원료를 공급받는 생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원료 시장에 의존하기보다 유럽 농가 중심의 생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급망을 설계한 구조다. 중국산 ARA 오일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오염 경로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인 효율성만 놓고 보면 가장 경제적인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료 조달 비용이 더 높고, 공급 규모 확장도 제한된다. 그러나 위기 국면에서 이 '비효율'이 최강의 방어막이 됐다. 힙의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공급망 설계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 철학의 문제다. 영유아 식품처럼 한 번의 사고가 브랜드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는 산업에서, 공급망 단순화와 독립성 확보는 보험이자 경쟁력이다.


인사이트 — 이 사태가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첫째, 효율성과 안전성은 공존 가능한가. 글로벌 식품 산업은 수십 년간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왔다. 원료를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는 곳에서 대량 구매하고, 생산을 집중화하며 비용을 낮췄다. 이번 사태는 그 방정식의 이면을 보여줬다. 공급망이 복잡해질수록 특정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체 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진다. 영유아 분유처럼 신뢰가 핵심인 산업에서는 효율 추구가 곧 잠재 리스크의 누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검사 기준은 충분한가. 분유 완제품(분말) 상태에서는 위험한 수준의 세레울리드가 발견되지 않지만, 추가 검사를 통해 물과 섞었을 때 독성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발견됐다. 기존의 모든 안전 기준이 '가루 상태'를 전제로 설계된 것이었다는 의미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어온 기준 자체가 불완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사태는 정면으로 보여줬다.

셋째, 리콜 자체가 신뢰 자산이 될 수 있는가. 네슬레는 실제 피해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상태에서 먼저 문제를 발견하고, 먼저 정보를 공개하고, 먼저 리콜을 단행했다. 이번 해외 리콜은 실제 위해 사례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에 대비한 예방적 조치였다. 단기적으로는 막대한 비용과 브랜드 타격을 감수해야 했지만, 장기적으로 '문제를 먼저 찾아낸 기업'이라는 서사는 신뢰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반대로, 당국의 통보를 기다렸다가 리콜에 나선 기업들은 '숨기려 했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 교훈은 하나로 수렴된다. 식품 안전은 제품의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원료를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는지, 즉 공급망 설계의 철학이 안전의 출발점이다.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미테니(Miteni) PFAS 판결의 모든 것 - 141년의 형량과 막대한 손해배상 피소

반세기 동안 북이탈리아 35만 명의 식수를 오염시킨 화학기업 미테니. 2025년 6월, 역사상 처음으로 기업 경영진이 PFAS 오염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 판결 한눈에 보기

- 총 징역형 합계: 141년
- 유죄 판결 경영진: 11명
- 민사 손해배상금: €7,500만 이상
- 피해 주민 추정치: 약 35만 명

사건의 배경: '영원한 화학물질'이 흘러든 땅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 트리시노(Trissino). 아름다운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로 둘러싸인 이 작은 마을에 1965년부터 화학공장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RiMar(리마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공장은 이후 여러 번의 소유주 교체를 거쳐 미테니(Miteni S.p.A.)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주요 사업은 불소화 화학 중간체, 즉 PFAS(과불화화합물)의 생산이었다.

PFAS란 탄소와 불소의 강력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합성 화학물질군으로, 열·기름·물에 강한 저항성을 지닌다. 프라이팬 코팅, 방수 의류, 식품 포장재, 소방 폼에 이르기까지 산업 곳곳에 쓰였다. 문제는 이 물질이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인체에 축적되면 암(특히 신장암·고환암), 간 손상, 면역계 억제, 생식 장애 등과 연관된다는 연구결과가 쌓여왔다.

어떻게 오염이 시작됐나

미테니 공장은 수십 년간 PFAS가 포함된 폐수를 적절한 처리 없이 주변 토양과 수계로 방류했다. 오염된 지하수는 비첸차·파도바·베로나 세 개 주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검사단에 따르면 경영진은 오염 위험성과 PFAS의 유해성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환경 보호 조치 없이 가동을 계속했다.

[ 주요 사건 연표 ]

  • 1965년 - RiMar 공장 설립. 이후 여러 소유주를 거쳐 미테니로 운영됨. 미쓰비시가 1998~2009년 지배.
  • 2013년 - 베네토 지역 환경청(ARPAV)이 공장 인근 수계에서 고농도 PFAS를 처음 공식 검출. 사법당국에 통보. 이후 주민 혈액 검사 시작.
  • 2018년 - 규제 압박과 형사수사 속에 미테니 파산 선언 후 공장 폐쇄. 환경 정화 책임은 공공기관으로 이전.
  • 2020년 - 30개 지자체·14만 명이 포함된 '레드존(Red Area)' 선포. 주민 연구에서 당뇨·뇌혈관 질환·일부 암 위험 증가 확인.
  • 2021년 - 형사 재판 시작. 미테니·미쓰비시·ICIG 전직 경영진 15명 기소. 4년간 140회 이상 심리 진행.
  • 2025년 5월 - 비첸차 노동법원, 2014년 미테니 직원 사망과 PFAS 노출의 인과관계를 이탈리아 최초로 법적 인정.
  • 2025년 6월 26일 - 비첸차 중죄법원, 전직 경영진 11명 유죄 선고. 총 징역 141년 + 민사 배상 €7,500만 이상.
판결의 내용: 검사 구형보다 무거운 선고

2025년 6월 26일, 비첸차 중죄법원은 6시간의 평의 끝에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15명 중 11명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4명은 무죄 방면됐다. 유죄 판결을 받은 11명의 징역형 합계는 141년으로, 검사가 요청한 121년 6개월을 훌쩍 넘겼다. 최고형은 17년 6개월, 최하형은 2년 8개월이었다.

피고인에는 미테니뿐 아니라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코퍼레이션과 룩셈부르크 투자펀드 ICIG(International Chemical Investors Group)의 전직 경영진이 포함됐다. 법원은 기업 소유주가 여러 차례 바뀌었더라도 개인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미쓰비시 일본인 임원 2명은 각각 16년, 1명은 11년을 선고받았다.

유죄 혐의는 의도적 수질 오염, 의도적 환경 재해, 불법 폐기물 관리 등이었다. 다만 부적절한 폐기물 처리 관련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로 기각됐다.

민사 배상액은 총 €7,500만 이상으로, 이 중 환경부가 €5,600만, 베네토 주정부가 €650만을 수령한다. 민사 원고로 참여한 약 300명의 개인과 단체에도 보상이 이루어졌으며, 시민 각자에게는 €5만씩 지급이 결정됐다. 법원은 유죄 선고를 받은 경영진이 향후 정화 및 환경 복구 비용도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것은 역사적 판결입니다. 모범적입니다. 대기업, 특히 다국적 기업도 범죄 행위의 책임을 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반(反)PFAS 활동가 알베르토 페루포, 판결 직후 성명

피고 측은 PFAS를 규제하는 이탈리아 법률이 당시 존재하지 않았고, 문제 행위 당시에는 PFAS를 탐지할 기술도 부족했다고 항변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의 규모: 4,000명의 초과 사망

2024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오염 지역에서 악성 종양(신장암·고환암 포함), 심혈관 질환 등으로 인한 초과 사망이 4,000건에 달한다. '레드 에어리어' 주민 연구에서는 전반적 사망률, 당뇨, 뇌혈관 질환, 일부 암의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탈리아 국립보건원이 설정한 임계값을 크게 초과하는 수준의 PFOA가 주민 혈액에서 검출됐다. ARPAV는 2013년 이후 5만 건 이상의 환경 샘플을 수집·분석했다.

이 싸움을 이끈 것은 시민들이었다. 'Mamme no PFAS(PFAS 반대 엄마들)'라는 풀뿌리 단체를 비롯해 그린피스, 민주의학(Medicina Democratica), 의사환경연대(ISDE)가 민사소송과 사회운동을 병행했다. 200명 이상의 시민이 소송에 직접 참여했다.

이 사건이 남긴 인사이트
  1. 세계 최초의 PFAS 형사 책임 판결 : 이번 판결은 역사상 처음으로 법원이 PFAS 오염에 대해 기업 경영진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은 사례다. 기업의 '법인 책임'에 숨어 있던 개인 경영진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냈다.
  2. 규제 공백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피고 측은 당시 PFAS 규제법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거부했다. '법이 없었으니 책임도 없다'는 논리가 환경 범죄에선 통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소유주가 바뀌어도 책임은 이어진다: 미쓰비시·ICIG 등 전 소유주 임원들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업 매각·합병이 환경 피해에 대한 개인 책임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4. 오염 설비의 '탈출'이라는 새로운 문제: 미테니 공장 폐쇄 후 특허와 산업 장비 일부가 인도로 반출됐다는 조사 보도가 나왔다.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오염 산업 기반이 이전되는 '환경 도주' 문제를 국제 사회가 공동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5. 스웨덴·이탈리아에서 확산되는 PFAS 법적 인식: 2023년 스웨덴 대법원은 주민 혈중 PFAS가 신체 손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탈리아 판결과 맞물려 PFAS 피해의 법적 지위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격상되고 있다.
남겨진 질문들

이 판결은 1심에 불과하다. 항소심에서 형량이 유지될지, 더 나아가 피해 규모에 걸맞은 완전한 정화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또한 미테니의 설비가 인도에서 재가동될 가능성, 그리고 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같은 역사가 반복될지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토양·지하수 내 PFAS에 대한 규제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이탈리아의 반세기짜리 교훈이 다른 나라에서는 예방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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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ntro di Ateneo per i Diritti Umani, Università di Padova (2025.06.27)
- Taft Law PFAS Insights (2025.07.03)
- Renewable Matter — Miteni PFAS Trial (2025.07.04)
- Chemistry World (2025.06)
- Environmental Health News (2025.07.02)
- The Japan Times (2025.06.27)
- Global Agriculture / Miteni PFAS Scandal Explained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