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고려아연, 쿠팡, 하이브 사태가 던지는 질문
다른 점 같은 점
2026년 초, 유독 비슷한 패턴의 기사들이 연달아 터졌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투자 배임'을 두고 주주대표소송 전쟁을 예고했고, 쿠팡은 3,370만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미국 현지 로펌들의 집단소송 표적이 됐다. 하이브는 민희진 전 대표를 상대로 주주 간 계약 위반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세 사건의 무대와 당사자는 달라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표이사 혹은 경영진이 법정 피고석에 앉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긴다. 상장회사의 대표이사는 이제 로펌의 먹잇감이 된 건 아닐까?
무엇 때문에 제소하는가
주주대표소송 — 회사를 대신한 복수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스스로 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때 주주가 나서서 회사를 대신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이 소송에서 배상금이 인정되면 돈은 이사 개인이 아닌 회사로 귀속된다. 즉 이론적으로는 '회사와 전체 주주를 위한' 제도다.
영풍-고려아연 사건에서 영풍 측 주주들이 고려아연 이사진을 상대로 이 카드를 꺼내든 이유도 여기 있다. 이그니오 투자가 배임에 해당한다면, 그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해를 이사들이 직접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표면상으로는 회사 이익을 위한 소송이지만, 현실에서는 경영권 분쟁의 연장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법정이 지분 싸움의 또 다른 전장이 되는 것이다.
증권 집단소송 — 투자자 손실의 법제화
쿠팡 사건은 결이 다르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문제가 된 건, 쿠팡이 이를 SEC에 정정 공시한 이후에도 주가가 하락했다는 점이다. 미국 현지 로펌들이 즉각 소송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증권 집단소송 시스템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집단을 이뤄 기업과 경영진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로펌은 성공보수 구조로 수임하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하는 비용을 투자자가 선지급할 필요가 없으니, 로펌 입장에서는 '소송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라면 먼저 달려가는 게 합리적이다.
주주 간 계약 위반 — 신뢰의 사법화
하이브가 민희진 전 대표를 상대로 낸 소송은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핵심 쟁점은 '뉴진스 빼가기' 계획이 주주 간 계약을 위반했느냐였다. 법원은 중대한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민희진 측이 승소했지만, 이 소송이 우리에게 보여준 건 따로 있다. 경영진과 대주주 사이의 내밀한 신뢰 관계, 또는 그 균열이 이제 계약서와 법정을 통해 정산된다는 사실이다. 구두 합의와 암묵적 신뢰의 시대는 끝났다.
대리인 문제의 법정 이전
경영학에서 오래된 개념이 있다.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다. 주주(주인)와 경영진(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 대리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할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스톡옵션, 성과보수, 이사회 감시 같은 내부 거버넌스 장치였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다르다. 내부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않거나 지배주주 자신이 갈등의 당사자가 됐을 때, 주주들이 외부 수단, 즉 법원으로 직접 달려가고 있다. 주주대표소송과 집단소송은 사실상 외부화된 대리인 통제 메커니즘이다.
이것이 효율적인가? 단기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 소송 비용, 경영 불확실성, 핵심 인재의 이탈,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부수적 피해가 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법적 책임의 위협이 경영진에게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억제하는 일종의 사전 억지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소송이 잦아질수록 경영진은 더 신중하게 움직인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왜곡도 존재한다. 소송 리스크가 커질수록 경영진은 과감한 투자보다 무사안일한 의사결정을 선호하게 된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어적 경영이다. 고려아연 이그니오 투자가 배임인지 아닌지를 법원이 판단하게 됐을 때, 앞으로 다른 기업의 이사들이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투자를 얼마나 선뜻 결재하려 할까?
책임이란 무엇인가
이 소송들이 제기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경영의 실패는 도덕적 잘못인가, 아니면 불운인가?
배임죄의 핵심은 고의성이다.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모두 배임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주주들은 손실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경영 판단의 실패로 귀결시키고, 법적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손실에는 반드시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이지만, 항상 공정한 귀인(attribution)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책임을 개인의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적 연결에서 찾았다. 그런데 대기업의 의사결정은 수백, 수천 명의 논의와 승인을 거친다. 대표이사 한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 자'인가? 이 질문에 법원은 대부분 단순화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법은 복잡한 조직 현실을 개인의 책임으로 압축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로펌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분화된다. 로펌은 법의 집행자인가, 아니면 소송의 기획자인가? 미국에서 쿠팡을 향해 달려든 로펌들은 투자자 피해를 구제하는 정의의 수호자일 수도 있고, 집단소송 성공보수를 노린 수익 추구자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동시에 옳다. 그리고 그 모호함 위에 현대 주주 소송의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법정 밖의 해답은 없을까
상장회사 대표이사가 로펌의 밥이 됐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는 틀리지 않다. 지배구조 갈등, 투자 실패, 계약 위반이 모두 법정으로 직행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전적으로 나쁜 현상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책임 없는 경영이 방치됐던 시대보다는, 과도한 소송이 경영을 위축시키는 시대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소송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소송이 거버넌스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고 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신뢰와 소통이 살아있다면, 법정까지 가는 분쟁은 훨씬 줄어든다. 영풍과 고려아연이 법원 밖에서 합의 테이블에 앉을 수 없었던 이유, 하이브와 민희진이 계약서 한 줄로 갈라선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이 소송들은 내부 거버넌스의 실패를 외부 사법 체계가 수습하고 있는 광경이다.
대표이사가 로펌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더 좋은 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더 좋은 이사회와 더 솔직한 주주 관계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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