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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8일 화요일

2026년 1분기 북미 화물 절도 동향: 사칭 기반 조직범죄의 고도화

Insurance Journal의 2026년 4월 28일 자 보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과 캐나다 내 공급망 범죄 양상이 질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발생한 화물 절도 사건은 총 76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소폭 감소했으나, 추정 손실액은 약 1억 3,160만 달러 규모를 유지하며 건당 피해액은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지역별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범죄 다발 구역이었던 텍사스 및 남동부 지역의 활동은 위축된 반면, 주요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한 조직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255건→277건)와 뉴저지(27건→59건)의 사례에서 보듯, 물류 허브가 집중된 연안 지역의 치안 부담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품목별로는 개인 위생 및 뷰티 제품의 절도 사례가 18건에서 50건으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이는 북동부 지역 내 화장품과 향수의 높은 암시장 수요를 반영한다. 식음료 분야에서는 전반적인 음료 절도는 감소했으나, 해산물 등 고단가 식자재를 노린 표적 범죄는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범죄 수법의 지능화다. 단순 탈취를 넘어 피싱, 원격 트로이 목마, 합법 운송업체 사칭 등 ‘신원 도용’ 기반의 범죄가 핵심 유형으로 부상했다. 범죄 조직은 운송업체나 중개업체의 계정, 전화 시스템, 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해킹해 합법적인 물류 프로세스에 침투하고 있다.

심지어 규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합법적인 운송업체를 직접 인수하여 범죄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칭 및 신원 악용 기반의 범죄가 향후 화물 절도 시장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전망하며, 물류 업계의 강력한 보안 인증 체계와 데이터 보호 전략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www.insurancejournal.com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미국 제조물책임 소송: 숫자로 보는 제품결함 리스크

미국의 제조물책임 소송 시장 규모는 연간 수백억 달러다. RAND Corporation 추산 기준, 미국 전체 불법행위 소송 비용 중 제조물책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GDP의 약 2%에 육박한다. 그리고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부담한다. 2026년 3월 현재 ClassAction.org에 등재된 제품결함 집단소송 7건은 그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 유아용품: 리콜 발표 = 결함 인지 증거

2025년 11월, ByHeart는 Whole Nutrition 유아용 조제분유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발표했다. 선제적 조치로 보였지만, 미국 법체계 안에서 이 발표는 곧바로 소송의 탄약이 됐다.

미국 제조물책임 소송에서 자발적 리콜은 역설적으로 제조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리콜은 제조사 스스로 결함 존재를 인정한 행위로 해석된다. CPSC(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리콜 데이터에 따르면, 리콜 발표 후 관련 집단소송이 제기되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30일 이내다.

유아용 식품 소송에서 배상 청구액이 다른 제품군보다 높은 이유는 피해자가 영유아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법원은 자기 보호 능력이 없는 피해자에 대해 제조사의 주의 의무 수준을 최고로 설정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경우 실제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이 가능하다.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미국향 유아·아동용 제품 제조사는 리콜 결정 시점에 소송 대응 프로토콜을 동시 가동해야 한다. ② 리콜은 소비자 안전 절차, 소송 대응은 별개의 법적 프로세스다. 같은 팀이 처리하면 실패한다.


2. 레저·운송 장비: 안전 경고가 면책이 되지 않는다

Malibu Boats는 특정 모델에서 선수 침수로 인해 최소 탑승 인원을 태울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안전 경고를 자사 채널을 통해 공지했다. 이후 제기된 소송에서 이 경고문은 오히려 피고에게 불리한 증거로 활용됐다.

미국 법원은 '경고 결함(Warning Defect)' 이론과 '설계 결함(Design Defect)' 이론을 별도로 판단한다. 경고를 붙였다고 해서 설계 결함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결함을 인지한 상태에서 판매를 계속했다는 사실은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인 '고의적 무시(Conscious Disregard)'에 해당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BMW of North America v. Gore, 1996)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실제 손해의 단일 자릿수 배율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실제 하급심에서는 여전히 수배의 배상이 인정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레저 장비, 선박, 이동수단 수출 기업은 내부 품질 보고서와 소비자 불만 접수 기록을 소송 증거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 ② 결함 인지 후 내부 이메일, 회의록에 남긴 표현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 근거가 된다.


3. 건자재·설비: 소멸시효가 판매 종료 후에도 흐른다

Mueller 미니 스플릿 라인 세트와 Uponor PEX 배관 소송은 건축 설비 자재의 잠복형 결함(Latent Defect)이 어떤 법적 리스크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구리 튜브 미세 균열, PEX 배관 누수 모두 설치 후 수년이 지나 발현된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제조물책임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피해 발생 시점' 또는 '피해 발견 시점(Discovery Rule)' 중 늦은 날짜를 기준으로 한다. 즉 제조사가 해당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10년이 지났더라도, 소비자가 그 시점에 결함을 발견했다면 소송이 가능하다.

미국 내 설치된 PEX 배관 물량은 수천만 미터 단위다. 집단소송으로 묶일 경우 원고단 규모와 배상 총액은 단일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다.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건자재·배관·전기 부품·냉난방 설비 수출 기업은 판매 종료 이후에도 소송 리스크를 최소 10~15년 단위로 관리해야 한다. ② 미국향 건설 자재 수출 시 장기 제조물책임보험(Occurrence-based Policy) 설계가 필수다.


4.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 설계가 '제품 결함'으로 간주된다

로블록스 소송은 디지털 서비스에 제조물책임 이론이 적용되는 최전선 사례다. 원고들의 주장은 플랫폼의 연령 인증 부재, 성인-아동 접촉 차단 실패, 허술한 신고 시스템이 '설계 결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을 제한해온 통신품위법 제230조(Section 230)는 최근 아동 보호 영역에서 적용 예외 논의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2024년 이후 복수의 주에서 아동 온라인 보호법이 시행됐고, 연방 차원의 입법 논의도 가속화됐다. 로블록스 소송은 이 법적 환경 변화와 맞물려 진행 중이다.

소셜미디어 중독 소송은 현재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제품책임 집단소송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스냅챗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 건수는 수천 건에 달하며, 주장의 핵심은 무한 스크롤, 변동 보상 알고리즘(Variable Reward Schedule), 수면 시간대 푸시 알림이 의도적으로 설계된 중독 유발 기제라는 것이다. 비디오게임 중독 소송도 동일한 이론적 틀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미국에 앱·게임·소셜 플랫폼을 출시하는 기업은 참여 유도 기능 설계 단계에서 법적 검토를 병행해야 한다. ② 아동·청소년 이용자가 포함된 서비스라면 Section 230 의존 전략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③ 내부 사용자 행동 데이터, A/B 테스트 결과, 중독성 관련 내부 연구가 소송에서 핵심 증거로 제출된다.


미국 제조물책임 소송의 구조적 특성 5가지

미국 제조물책임 소송은 한국 기업들이 경험한 어떤 법적 환경과도 다르다. 다음 다섯 가지는 반드시 전제로 깔고 있어야 한다.

① 3가지 결함 이론이 동시에 적용된다 설계 결함(Design Defect), 제조 결함(Manufacturing Defect), 경고 결함(Warning Defect)은 각각 독립적인 소송 근거다. 하나를 방어해도 나머지 두 개가 남는다.

② 집단소송(Class Action)은 배상액을 수직으로 올린다 1인 피해액이 $500이어도, 원고단이 10만 명이면 청구액은 5,000만 달러가 된다. 여기에 변호사 비용, 징벌적 손해배상이 더해진다.

③ 내부 문서는 적이 된다 미국 소송의 증거개시(Discovery) 절차에서 이메일, 품질 보고서, 설계 회의록 전부가 상대방에게 제출된다. 결함을 알면서 출시했다는 흔적이 하나라도 나오면 사건의 성격이 바뀐다.

④ 아동 피해는 배상 수준이 다른 카테고리다 유아용품, 아동 플랫폼, 청소년 대상 서비스에서의 피해는 법원이 최고 수준의 주의 의무를 부과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인정 가능성도 가장 높다.

⑤ 잠복형 결함은 소송 시효가 늦게 시작된다 건자재·설비처럼 결함이 수년 후 드러나는 제품은 판매 종료 후에도 오랫동안 소송 위험 아래 놓인다. 단기 보험과 단기 품질 보증으로 커버되지 않는다.


미국 시장에서 제품을 파는 것은 그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법적 책임을 지는 계약에 서명하는 것과 같다. 이 계약의 조건을 사전에 읽지 않은 기업만이 소송을 갑작스럽게 맞는다.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보어스 헤드 리스테리아 사태: 120년 브랜드가 무너진 방식

보어스 헤드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집단소송 최종 승인 심리는 2025년 8월로 예정돼 있고, 추가 소송이 계속 진행 중이다. 120년 브랜드가 한 공장의 만성적 위생 실패로 뒤집어진 이 사례는, 식품 안전이 얼마나 무겁고 회복하기 어려운 가치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사건의 발단과 경위

2024년 5월 29일, 미국 여러 주에서 리스테리아증(Listeriosis) 환자가 산발적으로 신고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식중독으로 보였지만, 역학조사를 거듭할수록 하나의 식품 브랜드로 화살표가 향했다. 미국 델리 미트(가공육) 시장의 프리미엄 브랜드, 보어스 헤드(Boar's Head)였다.

조사의 단초를 제공한 건 메릴랜드주 보건부였다. 연구진이 볼티모어 한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보어스 헤드의 리버부어스트(간 소시지)를 검사한 결과, 리스테리아 모노사이토게네스(Listeria monocytogenes) 오염이 확인됐다. 이 균주는 당시 유행 중이던 리스테리아 집단감염의 원인균과 일치했다.

미 농무부(USDA) 식품안전검사청(FSIS)은 2024년 7월 12일 공식 조사에 착수했고, 역학·실험실·추적 조사 모두 버지니아주 자렛(Jarratt)에 위치한 보어스 헤드 공장을 오염원으로 지목했다.


리콜 규모와 피해 현황

2024년 7월 30일, 보어스 헤드는 자렛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 700만 파운드(약 3,175톤) 이상을 전량 리콜했다. 최초에는 리버부어스트 약 20만 파운드로 시작했으나, 나흘 만에 71개 제품군으로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최종 집계 기준으로 미국 19개 주에서 총 61명이 감염됐고, 그 중 60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다. 사망자는 일리노이, 뉴저지, 뉴욕(2명), 버지니아, 플로리다, 테네시, 뉴멕시코, 사우스캐롤라이나(2명) 등 10명에 달했다.

이 사태는 2011년 캔탈루프 리스테리아 사건 이후 13년 만에 미국 최대 규모의 리스테리아 집단감염으로 기록됐다. 발병이 공식 종료된 것은 2024년 11월이었다.

리콜 대상 제품의 일부는 해외에도 유통됐다. 수출 대상국은 케이맨 제도,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파나마였다. 미국 외 국가에서의 대규모 추가 리콜은 보고되지 않았으나, 해당 국가들은 즉각 해당 제품의 유통을 중단시켰다.


보어스 헤드는 어떤 회사인가

보어스 헤드는 1905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설립된 가공육 전문 기업으로, 현재 본사는 플로리다주 새러소타에 있다. 주식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며, 창업자 후손들이 지분을 폐쇄적으로 보유하는 비상장 가족 기업이다.

창업 이후 120년간 "최고의 품질"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왔으며, 500여 종에 달하는 제품군을 보유한 미국 최대 프리미엄 델리 미트·치즈 기업으로 성장했다. 슬로건은 "Compromise elsewhere(타협은 다른 곳에서)"였다. 매출 추정액은 연간 30억 달러(약 4조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화려한 외형과 달리, 내부는 극히 폐쇄적이었다. 2022년 법원 진술에서 20년 경력의 CFO 스티브 쿠렐라코스(Steve Kourelakos)는 자사 CEO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결정은 사실상 프랭크 브런크호스트(Frank Brunckhorst)와 소수 경영진에게 집중돼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구조적 위생 실패

이번 사태는 우연한 오염이 아니었다. 수년에 걸친 만성적인 내부 부패의 결과였다.

USDA 조사관들은 2023년 8월부터 2024년 8월 사이 자렛 공장에서 무려 69건의 위반 사항을 기록했다. 조사관들이 목격한 내용은 검은 곰팡이, 밀듀, 바닥에 고인 혈액, 기계 위의 육류 잔재물, 악취 등이었다.

오염 징후는 더 일찍 감지됐다. 사태 발생 2년 전에 이미 조사관들은 자렛 공장이 "중대한 결함"을 보이며 식품 안전에 "임박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었다. 당시 지적된 문제는 녹슨 장비, 바닥에 응결되는 습기, 벽면에 자라는 녹색 곰팡이 등이었다.

USDA 보고서는 공장 내 "전날 생산 잔재물이 포장 장비를 포함한 곳곳에 남아 있었다"고 기록했으며, 노출된 식품 위에 응결수가 떨어지는 상황과 수분이 고일 수 있는 균열·구멍·파손된 바닥재도 발견됐다.

이 공장은 연방 검사관이 아닌 버지니아주 공중보건 담당관의 관할 하에 놓여 있었는데, 이 역시 문제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전문가들은 규제 당국이 이 수준의 위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공장 가동을 허용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영진의 책임과 제재

2024년 7월 31일, FSIS는 자렛 공장의 모든 생산 활동을 즉시 중단시켰다. 보어스 헤드는 같은 해 9월, 자렛 공장의 영구 폐쇄와 리버부어스트 제품 생산의 전면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법적 대응도 뒤따랐다. 2024년 9월 3일, 사망한 88세 남성의 유족이 보어스 헤드를 상대로 불법 사망(wrongful death)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후 적어도 7건 이상의 소송이 추가로 제기됐다.

집단소송(class action)과 관련해서는, 보어스 헤드가 리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310만 달러(약 42억 원) 규모의 집단소송 합의에 응했다.

그러나 경영진 개인에 대한 형사 책임 추궁이나 고위 임원의 공개적인 사임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가 오랜 기간 유지해 온 폐쇄적 지배구조가 책임의 투명한 귀속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태 수습 과정에서 보어스 헤드는 2025년 5월 식품 안전 최고책임자(Chief Food Safety Officer)인 나탈리 다이엔슨(Natalie Dyenson)을 처음으로 임명하고, 프랭크 야니스(Frank Yiannas)가 이끄는 식품 안전 자문위원회를 신설했다. 또한 기존의 가장 약한 수준의 리스테리아 규칙 통제 방식에서 더 엄격한 기준으로 상향 전환했다.

자렛 공장은 1년여의 폐쇄 끝에 2026년 초 재가동에 들어갔다.


한국 식품업계에 주는 메시지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외 식품 사고로 읽고 넘길 일이 아니다.

첫째, 브랜드 명성은 위생 앞에서 무력하다. 보어스 헤드는 120년 업력을 자랑하는 프리미엄 브랜드였다. "타협은 다른 곳에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정작 자신들이 가장 먼저 타협한 곳은 공장 위생이었다. 한국의 식품 기업들도 브랜드 투자 못지않게 현장 위생 관리에 동등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위반 사항의 누적을 방치하면 반드시 터진다. 자렛 공장은 2년 전부터 경고를 받았다. 69건의 위반 기록이 쌓이는 동안 아무도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 식품 공장에서도 HACCP 점검이나 내부 감사에서 반복 지적되는 항목들이 '관행'으로 묵인되는 사례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셋째, 폐쇄적 지배구조는 식품 안전 거버넌스의 적이다. 보어스 헤드의 CFO가 자사 CEO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사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할수록 위기 대응도 느리고, 책임의 귀속도 흐릿해진다. 오너 중심의 폐쇄적 경영 구조가 흔한 한국 중소 식품기업들에게도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경고다.

넷째, 최고식품안전책임자(CFSO)의 독립적 권한이 필요하다. 보어스 헤드는 이번 사태 이후에야 처음으로 CFSO를 임명했다. 식품 안전 담당자가 사고 발생 전부터 이사회 수준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 현장 경고 신호는 번번이 묻힌다.

다섯째, 리콜 대응은 속도와 범위가 전부다. 보어스 헤드는 최초 리콜 규모를 과소 책정했다가 나흘 만에 35배 이상 확대했다. 이 지연이 추가 피해를 낳았다. 리콜은 '충분히'보다는 '빠르게, 넓게'가 원칙이다.


2026년 3월 7일 토요일

스타벅스, 뉴욕시 역대 최대 노동법 합의금 3,890만 달러

직원 1만 5,000명 이상의 근무 스케줄을 임의로 삭감하고 추가 근무 기회를 박탈한 사실이 적발되며, 뉴욕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보호 합의금 지급이 확정되었다. 단순한 법규 위반을 넘어, 이 사건은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이 수익 압박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발표일: 2025년 12월 1일 발표 기관: 뉴욕시 소비자·노동자보호부(DCWP)


위반 법률: 공정근무주간법

스타벅스가 위반한 것은 뉴욕시의 공정근무주간법(Fair Workweek Law)이다. 2017년 시행된 이 법은 패스트푸드 업종의 구조적 약자인 시간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고용주에게는 근무 14일 전 정기 스케줄 사전 고지, 스케줄 변경 시 프리미엄 수당 지급, 신규 채용 전 기존 직원에게 추가 근무 기회 우선 부여 등의 의무가 부과된다.

이 법의 핵심은 단순한 임금 보호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스케줄이 초래하는 삶의 불안정성, 즉 육아 공백, 학업 중단, 부업 계획의 붕괴를 방지하는 데 있다. 뉴욕시가 이 법을 도입한 배경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노동 유연성을 명분으로 사실상 직원의 생활 전반을 통제해왔다는 오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위반의 실체: 구조적이고 광범위한 착취

조사 결과 드러난 위반은 일부 매장의 일탈이 아니라, 뉴욕시 전역 300개 이상 매장에 걸친 조직적 관행이었다. 2021년부터 2024년 사이에만 50만 건 이상의 위반이 확인되었다.

구체적 위반 양상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정기 스케줄 없이 운영되었으며, 회사는 직원 동의 없이 근무시간을 15% 이상 삭감하였다. 이로 인해 직원들은 주간 소득을 예측할 수 없었고, 일상적 계획조차 세우기 어려운 상태에 지속적으로 놓였다. 또한 회사는 기존 직원에게 추가 근무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신규 직원을 채용함으로써, 다수를 비자발적 파트타임 상태에 묶어두었다. 이는 인건비를 최소화하면서도 필요 인력을 확보하는 전형적인 비용 절감 기제였다.


사건 경위

2022년, 수십 건의 노동자 민원이 접수되며 DCWP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일부 매장에 국한되었던 조사는 이후 뉴욕시 내 전 매장으로 확대되었다. 단일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전반의 운영 방식 자체가 문제임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5년 12월 1일, 뉴욕시장 에릭 애덤스와 DCWP는 총 3,890만 달러 규모의 합의를 공식 발표하였다. 피해 직원 보상금 3,550만 달러와 민사 과태료 340만 달러로 구성된 이 합의는, 뉴욕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보호 합의로 기록되었다. 보상은 해당 기간 근무한 직원에게 주당 50달러씩 지급되며, 약 1년 반을 근무한 직원은 3,900달러가량을 수령하게 된다. 금전 보상과 함께, 최근 매장 폐점으로 해고된 직원들에게는 타 지점 재취업 기회가 보장되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 경영 환경과 구조적 배경

이 사건을 단순히 법 위반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읽는 것은 표면적 해석에 머무는 것이다. 위반이 이토록 광범위하고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데는, 스타벅스가 처한 경영 환경과 그 안에서 작동한 구조적 유인이 있었다.

스타벅스는 팬데믹 이후 급격한 비용 증가와 수익성 압박에 직면하였다. 원자재 가격 상승, 임금 인플레이션, 글로벌 소비 침체가 겹치며 영업이익률을 지키기 위한 내부 압력이 강해졌다. 이 압력이 가장 먼저, 가장 손쉽게 작용하는 곳은 현장 인력의 스케줄 관리였다. 정규 근무시간을 보장하는 것보다 필요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단기 비용 절감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벅스의 분권화된 매장 운영 구조도 위반을 용이하게 한 요인이었다. 수백 개의 뉴욕시 매장은 각 지역 관리자의 재량 아래 스케줄이 운영되었고, 본사 차원의 법적 컴플라이언스 감시 체계가 이를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하였다. 법을 준수하는 비용보다 위반이 적발될 가능성과 그에 따른 제재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되는 구조에서, 현장의 관행은 자연스럽게 법의 경계를 넘어섰다.

여기에 더해, 공정근무주간법 자체의 집행력 문제도 있었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로도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위반 사례는 지속적으로 보고되었으나, 3,890만 달러라는 전례 없는 규모의 합의가 나오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기업 입장에서는 적발 이전까지 수백만 달러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었던 셈이다.


평판 리스크와 브랜드의 역설

이번 합의는 금전적 손실을 넘어 브랜드 신뢰도에 근본적인 균열을 초래하였다. 스타벅스는 오랫동안 직원을 '파트너(Partner)'로 호칭하며 인간 중심의 기업 문화를 표방해왔다. 직원 복지와 공정한 처우를 마케팅의 핵심 서사로 삼아온 기업이, 정작 수만 명의 직원 스케줄을 수년간 불법으로 조작해왔다는 사실은 그 서사 전체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소비자 신뢰는 제품이나 서비스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특히 스타벅스처럼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고객층을 주요 기반으로 삼는 브랜드에게, 노동 착취 이미지는 장기적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남긴다. 이미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과 잇따른 매장 폐점으로 내부 갈등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조직 내 신뢰 회복의 과제를 한층 무겁게 만들었다.


시사점: 법적 환경의 변화와 기업의 선택

이 사건은 미국 전역 고용주들에게 예측적 스케줄링 법률 준수의 중요성을 경고하는 강력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유사 법률을 운용하는 도시들의 집행 강화가 예상되며, 노동자 권리 보호를 둘러싼 법적 환경은 한층 엄격해질 전망이다.

단기적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법의 경계를 묵인하는 관행이 결국 훨씬 큰 재정적·평판적 대가로 돌아온다는 것, 이번 스타벅스 사건이 남기는 가장 분명한 교훈이다. 컴플라이언스는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라는 인식 전환이,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출처: 뉴욕시 DCWP 공식 발표 (2025.12.01) · OPB · Restaurant Dive · Akerman LLP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미국 고용법의 지뢰밭: 반드시 알아야 할 인사노무 리스크

2026년 2월, 미국 최대 집단소송 정보 사이트인 ClassAction.org에 올라온 고용 관련 집단소송 목록을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신호가 읽힌다. 미국에서 사람을 쓰는 일은 그 자체가 법적 리스크다.


1. 가장 빈번한 소송: 임금 및 초과근무 (Wage & Hour)

미국 고용 소송의 절반 이상은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직원, 초과근무 수당 제대로 줬나?"

연방법(FLSA, Fair Labor Standards Act)에 따르면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는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세 가지 구멍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① 초과근무 계산 오류 보너스, 커미션, 각종 수당을 '정규 임금 산정 기준(regular rate of pay)'에서 빼놓고 계산하는 경우다. 예컨대 월 $500의 생산성 보너스를 지급하면서 초과근무 계산 시 이를 포함하지 않으면 매주 미지급 임금이 쌓인다. 이것이 집단소송으로 묶이면 수백만 달러 규모의 배상이 된다.

② 근무 외 시간 무급 처리 창고 노동자의 보안 검색 대기 시간, 교대 전 준비 시간, 퇴근 후 업무 이메일 처리 시간 등 '업무와 연관된 모든 시간'은 원칙적으로 임금 지급 대상이다. 이 시간을 무급으로 처리하는 관행이 창고·물류·호텔 업종에서 집중적으로 소송 대상이 되고 있다.

③ 면제 직원(Exempt Employee) 오분류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해당한다며 초과근무 의무를 면제 처리했지만, 실제 업무 내용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다. 직함이 "Manager"라는 이유만으로 면제 처리하면 이는 소송 사유가 된다.


2. 의료·요양 업종의 특수 함정: CNA 근무 차등 초과근무

간호조무사(CNA)를 포함한 의료·요양 종사자 소송은 일반 초과근무 소송보다 한 층 더 복잡한 구조를 갖는다.

많은 의료기관에서 야간 근무, 주말 근무, 교대 근무에 '근무 차등 수당(shift differential)'을 추가로 지급한다. 문제는 초과근무 계산 시 이 차등 수당을 기준 임금에서 빼버리는 관행이다.

예를 들어 기본 시급이 $20이고 야간 차등 수당이 $3이면, 실제 시급은 $23이다. 초과근무 수당은 $34.50(=$23×1.5)이 되어야 하는데, 기본 시급 $20만 기준으로 계산해 $30을 지급하면 매 시간 $4.50씩 미지급이 발생한다.

이 계산 오류는 작아 보이지만, 수십 명의 교대 근무자가 수년간 쌓이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집단소송으로 발전한다. 미국에서 요양원, 홈케어, 의료 서비스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급여 시스템의 차등 수당 처리 방식을 즉시 점검해야 한다.


3. 서비스업의 지뢰: 호텔 근로자 소송

호텔 업종은 미국 고용 소송의 단골 피고 업종이다. 프런트 데스크, 하우스키핑, 식음료 서비스 등 다양한 직군이 동시에 얽히기 때문이다.

소송의 주요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교대 전후 준비 및 정리 시간 무급 처리다. 유니폼 착용, 청소 장비 점검, 객실 배정 확인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근무 전 활동'으로 분류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문제가 된다.

둘째, 휴식 및 식사 시간 미보장이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특정 시간마다 유급 휴식과 무급 식사 시간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보장하지 않으면 건당 페널티가 부과된다.

셋째, 팁 풀링(tip pooling) 규정 위반이다. 팁을 받는 직원들 사이에서 팁을 배분하는 방식에도 엄격한 연방·주 규정이 있다. 관리자나 감독자가 팁 풀에 포함되면 즉각 위반이다.

한국 호텔·외식·서비스 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리스크가 바로 이 업종별 특수 규정들이다.


4. 독립 계약자 오분류: 플랫폼 비즈니스의 구조적 함정

아마존 플렉스, 리프트, 쉽트, 월마트 스파크까지. 현재 진행 중인 집단소송 목록에는 플랫폼 기반 배송·운송 서비스가 줄줄이 올라와 있다.

이 소송들의 핵심 논점은 하나다.

"이 사람이 정말 독립 계약자인가, 아니면 사실상 직원인가?"

미국에서는 연방법과 주법이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캘리포니아주는 'ABC 테스트'라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계약자 지위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매사추세츠, 뉴저지 등 노동 친화적 주에서도 유사한 기준이 존재한다.

독립 계약자로 분류할 경우 기업은 최저임금, 초과근무, 산재보험, 비용 환급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오분류 소송의 배상액은 막대하다. 미지급 임금에 더해 세금 미납분, 징벌적 손해배상, 변호사 비용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긱 이코노미 모델이나 프리랜서 계약 방식을 활용하려 할 때, 이 함정은 특히 위험하다. 계약서에 '독립 계약자'라고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5. HR 아웃소싱의 맹점: 채용 담당자 초과근무 소송

인력파견사, 헤드헌팅 회사, HR 아웃소싱 업체에서 일하는 채용 담당자(Recruiter)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소송의 구조는 단순하다. 채용 담당자를 '전문직 면제(Professional Exemption)' 또는 '행정직 면제(Administrative Exemption)' 범주로 분류해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법원이 이 분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FLSA상 전문직 면제가 되려면 고급 지식을 요하는 전문 분야에서 주로 지적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단순 채용 공고 관리, 이력서 스크리닝, 면접 일정 조율 등의 업무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

미국에 HR 팀을 두거나 채용 대행사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채용 담당자의 직무 분류와 초과근무 수당 지급 여부를 반드시 재점검해야 한다.


6. 교육기관·기숙시설의 맹점: 뉴저지 RA 최저임금 소송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생들을 관리하는 Resident Advisor(RA)의 임금 문제가 뉴저지에서 소송으로 번지고 있다.

RA는 통상 기숙사 방과 식사를 제공받는 대신 임금을 받지 않거나 최저임금 이하의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원은 숙식 제공을 '현물 임금(in-kind compensation)'으로 볼 때 그 가치가 실질적 근로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낮으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 판례는 대학 기숙사뿐 아니라 기업 연수원, 사원 기숙사, 합숙 형태의 근무 환경을 운영하는 모든 조직에 적용될 수 있다. 미국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로 직원을 고용할 경우, 현물 보상의 법적 처리 방식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7. AI 채용 도구의 새로운 리스크

목록에서 가장 주목할 항목은 "AI 채용 심사 소송"이다.

AI 기반 이력서 스크리닝, 챗봇 면접, 알고리즘 심사 도구를 사용하는 기업들이 공정신용보고법(FCRA) 위반으로 소송 대상이 되고 있다. FCRA는 채용 과정에서 소비자 보고서를 활용할 경우 구직자에게 사전 고지, 동의 획득, 결과 공유 등 엄격한 절차를 요구한다.

AI 도구가 이 범주에 포함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일부 주(일리노이, 뉴욕 등)에서는 AI 채용 도구의 편향성 감사를 의무화하는 별도 법률까지 도입했다.

한국 본사에서 글로벌 HR 솔루션을 도입할 때 미국 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소송 리스크가 된다.


8. 배경조사의 절차적 함정

채용 과정에서 배경조사를 실시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지만, 절차를 어기면 소송 대상이 된다.

FCRA는 다음을 요구한다. 배경조사 실시 전 별도 서면 고지 및 동의 획득, 부정적 결과로 채용 거부 시 사전 통보 및 이의 제기 기회 부여, 최종 거부 결정 후 공식 통지가 그것이다.

이 절차를 생략하거나 형식적으로 처리하면, 채용 탈락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것이 집단소송으로 발전하면 절차 위반 건수만큼 1,000달러씩의 법정 손해배상이 쌓인다.


9. 지역별로 다른 법률 지형: 뉴저지·매사추세츠

집단소송 목록에는 뉴저지와 매사추세츠가 별도 항목으로 등장한다. 이 두 주는 연방법보다 훨씬 강력한 노동 보호 규정을 가지고 있다.

뉴저지는 급여 지급 빈도, 임금 명세서 형식, 독립 계약자 판단 기준에서 연방보다 엄격하다. 매사추세츠는 퇴직 시 마지막 급여를 즉시 지급하지 않으면 소송 대상이 된다.

미국에 진출하는 기업이 단일한 HR 정책을 전국에 적용하려 하면 반드시 충돌이 생긴다. 주별 법률 지형을 파악하지 않은 글로벌 표준 정책은 미국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 진출 기업을 위한 핵심 인사이트

① 계약서보다 실질이 중요하다 미국 법원은 계약서 문구보다 실제 근무 형태를 본다. 계약자라고 써도 지시·통제·배타적 의존 관계가 있으면 직원으로 판단한다.

② HR 정책의 주(State)별 맞춤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50개 주가 각자 다른 노동법을 운영한다. 연방법만 따르는 것은 반쪽짜리 컴플라이언스다.

③ 업종별 특수 규정을 반드시 확인할 것 의료·요양·호텔·서비스업은 일반 사무직과 전혀 다른 임금 계산 규칙이 적용된다. 업종에 맞는 별도 점검이 필요하다.

④ AI HR 도구 도입 전 법률 검토를 먼저 채용·평가·모니터링에 AI를 도입할 때, 미국 적용 가능성과 각 주의 규제 현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⑤ 현물 보상 방식도 임금법의 적용을 받는다 숙식 제공, 현물 지급 등 비현금 보상도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될 수 있으며, 그 가치 산정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⑥ 집단소송의 규모를 과소평가하지 말 것 미국의 집단소송은 한 명의 피해자가 수천 명을 대표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구조다. 1인당 소액의 임금 미지급이 기업 전체로는 수천만 달러 배상으로 귀결된다.

⑦ 컴플라이언스 비용은 소송 비용보다 항상 싸다 HR 컨설턴트, 노동법 전문 변호사, 급여 시스템 정비에 드는 비용은 집단소송 한 건의 합의금에 비하면 미미하다. 진출 초기부터 구조를 올바르게 잡는 것이 가장 저렴한 리스크 관리다.


미국 시장은 기회만큼 규제의 밀도도 높다. 사람을 고용하는 순간부터 법적 의무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의무는 업종마다, 주마다, 고용 형태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이 복잡성을 직시하는 것이 미국 사업의 첫 번째 조건이다.


2026년 2월 14일 토요일

DEI를 버린 대가 — 타겟(Target)이 증명한 것

수십 년간 다양성을 외쳤던 기업이 취임 5일 만에 모든 것을 뒤집었다. 그 결과는 '조용한 철수'가 아닌, 전방위적 붕괴였다.


DEI, 먼저 개념부터 짚고 가자

요즘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DEI'라는 단어. 정확히 무슨 뜻일까?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 세 단어의 앞글자를 딴 개념이다.

  • 다양성(Diversity): 인종, 성별, 나이, 국적, 종교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 내에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
  • 형평성(Equity): 단순한 '평등(equality)'과 다르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것
  • 포용성(Inclusion): 다양한 구성원 모두가 환영받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

기업 차원에서 DEI 정책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채용 다양성 목표 설정, 소수 집단 소유 공급업체 우대, 직원 교육 프로그램 운영, 외부 다양성 지수 보고 등 구체적인 제도와 예산이 동반된다.

타겟(Target)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소유 브랜드와 커뮤니티 지원에 20억 달러(약 2조 7천억 원)를 약속하며 DEI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혔던 회사다.


왜 DEI를 버렸나

조용하지 않았던 '전략적 재조정'

2025년 1월 25일, 타겟은 짤막한 발표를 내놓았다. 3년간 추진해 온 DEI 목표를 종료하고, 흑인 소유 브랜드 지원 이니셔티브(REACH)를 폐기하며, 외부 다양성 지수 보고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식 설명은 단 한 문장이었다.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사업 전략 재조정."

그런데 이 발표가 나온 날이 언제였는지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5일째 되던 날이었다. 취임식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던 바로 그 회사가, 취임 5일 만에 수십 년간 쌓아온 DEI 정책 전체를 접었다.

이유 1. 트럼프 행정부의 직접적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3일째 되는 날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행정부는 연방 정부와 민간 기업 전반에서 차별적인 DEI 정책을 철폐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서명된 행정명령은 연방 계약 기업들을 직접 겨냥했고, 보수 성향의 주주 그룹들은 DEI가 기업 가치를 훼손한다며 소송을 예고했다.

이유 2. 법적 리스크의 급격한 증가

2023년 미국 대법원은 대학 입시에서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이후 기업의 DEI 기반 채용 관행과 공급업체 우대 정책도 법적 도전에 취약해졌다. 기업 법무팀들이 일제히 리스크 재검토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유 3. 이미 경험했던 불매운동의 학습 효과

타겟은 2023년에도 프라이드(Pride) 관련 상품 진열로 보수층의 대규모 불매운동을 경험했다. 당시 CEO 브라이언 코넬은 직접 "부진한 실적의 원인 중 하나"로 이를 언급했다. 이 경험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유 4. 경쟁사들의 선례

타겟이 DEI 폐기를 선언하기 전후로, 미국 주요 기업들이 이미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월마트(Walmart)는 DEI 공약을 조용히 수정했고, 메타(Meta)는 다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폐지했으며, 아마존은 내부 메모를 통해 관련 관행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JPMorgan 등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5년 S&P 500 기업들의 공시 문서에서 DEI 관련 언급이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그래서, 결과는?

타겟의 계산은 이랬을 것이다. 정치적 압박을 피하고, 법적 리스크를 줄이고, 보수층 소비자를 잃지 않겠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전국 단위 불매운동

2025년 2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에 맞춰 시민권 단체와 흑인 성직자들이 주도한 전국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특히 타겟에 입점해 있던 흑인 소유 브랜드 판매자들도 피해를 입자, 활동가들은 방향을 틀어 "해당 브랜드를 타겟이 아닌 온라인 직구로 구매하자"는 운동으로 전환했다. 이 불매운동은 2025년 내내 지속됐다.

숫자로 드러난 손실

  • 2021년 고점 대비 주가 61% 하락
  • 시가총액 약 124억 달러(약 17조 원) 증발
  • 불매운동 선언 이후 매장 방문객 연속 8주 감소, 최대 주간 5.7% 하락
  • 4분기 매출 3.1% 감소
  • 브랜드 호감도 9% 하락

주주 집단소송

주주들은 "타겟이 DEI 정책 변경이 주가와 브랜드 가치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투명하게 공시하지 않았다"며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합의 비용이 수백만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CEO 사임과 대규모 구조조정

장기 재임 CEO 브라이언 코넬이 논란 속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어 타겟은 10년 만의 최대 구조조정을 발표하며 약 1,800명의 임직원을 감원했다. 물론 아마존·월마트와의 경쟁 심화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불매운동이 만들어낸 매출 감소가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분석가들은 일제히 지목했다.

내부 붕괴

재무 손실만이 아니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직원들의 심리적 안전감과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다. 직원 네트워크(ERG) 등 포용 프로그램이 약화됐고, 소수집단 출신 고성과자들의 이직률이 높아졌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심지어 타겟 공동 창업자의 딸들인 앤과 루시 데이턴(Anne & Lucy Dayton)이 공개적으로 "창립 가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짜 문제

버지니아 공대의 마케팅 교수 슈레얀스 고엔카(Shreyans Goenka)는 CN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DEI를 지지했다가 철회하는 브랜드는 임의적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DEI를 지지하고, 내일은 철회하면 브랜드 포지셔닝이 일관성을 잃고 비진정성 있게 느껴집니다."

기업 컨설턴트 폰세 드 레온(Ponce de Leon)의 말도 곱씹을 만하다.

"사회의 정치가 바뀌어도, 당신의 가치관은 바뀌어선 안 됩니다."

타겟의 문제는 단순히 DEI 정책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진보적 가치를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던 기업이, 정치적 바람이 바뀌자 5일 만에 그 정체성을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소비자들이 분노한 것은 정책 변경 자체가 아니라, 그 돌변의 속도와 무게였다.


그래서 DEI는 끝난 건가?

타겟을 비롯한 기업들의 후퇴가 DEI의 종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영국의 자산운용사 슈로더스(Schroders)와 로열 런던(Royal London)은 타겟의 DEI 후퇴를 "장기적 재무 리스크"로 공식 규정하고, 이사회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DEI는 윤리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포트폴리오 리스크 관리의 문제다.

2025년 하반기, 타겟은 뒤늦게 흑인 창업자 지원 단체 RICE와의 파트너십을 공개하며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떠난 신뢰를 되찾기에 충분한 제스처인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타겟이 증명한 것

타겟의 사례가 남기는 교훈은 역설적으로 단순하다.

정치적 압박을 피하기 위해 DEI를 버렸더니, 더 큰 정치적·경제적·브랜드 위기가 찾아왔다. 불매운동을 두려워해 한쪽의 눈치를 봤더니, 더 강력한 불매운동이 반대편에서 터졌다. 소송을 피하려 했더니, 주주 집단소송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타겟의 실적 부진에는 아마존·월마트와의 경쟁 심화, 소비 침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DEI 후퇴가 만들어낸 '신뢰의 공백'이 모든 부정적 요소를 증폭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브랜드는 단기적 수익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브랜드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일관성과 진정성이다.

타겟은 그것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참고: Fortune, CNN Business, Reuters, Bloomberg, Diversity.com, Retail Brew (2025)


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DEI 프로그램을 없애면 생기는 일 — 간과하는 세 가지 위험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DEI(Diversity, Equity & Inclusion)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치적 압력에 반응하는 것이든, 비용 절감을 위한 결정이든 간에 — 많은 경영진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DEI를 없애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리스크 관리 전문 매체 *Risk Management Magazine(RIMS)*에 실린 제니퍼 포스트(Jennifer Post)의 분석을 토대로, DEI 축소가 기업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정리한다.


1. 법적 리스크 — 소송의 문이 열린다

DEI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차별을 예방하는 구조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이 장치를 없애면 여성, 유색인종, LGBTQIA+ 직원 등 소수자 집단이 차별적 처우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곧 소송 리스크로 이어진다.

"DEI를 없앴으니 역차별 걱정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경영진도 있지만, 현실은 반대 방향의 소송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 금지 교육이 사라지고, 공정한 채용·승진 프로세스가 느슨해지면 — 법적 분쟁의 빌미가 더 많아진다.


2. 인재 리스크 — Z세대는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DEI에 냉소적인 경영진이라도 이 수치는 무시하기 어렵다. Z세대의 61%는 DEI를 지지하지 않는 기업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 역시 포용적인 조직 문화를 직장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꼽는다.

채용 시장이 치열한 지금,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데 DEI는 단순한 '사회적 책임' 그 이상이다. DEI를 없앤 기업은 조용히 인재 풀이 좁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아 있는 직원들의 이탈도 뒤따를 수 있다 — 특히 다양성을 중시하는 핵심 인재일수록.


3. 재무·평판 리스크 — 고객도 보고 있다

경영진의 77%가 DEI는 재무성과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81%는 고객 충성도와 연관된다고 답했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69%는 DEI를 적극 지지하는 기업에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DEI를 철회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순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바뀔 수 있다. 특히 MZ세대 소비자층이 주요 타깃인 기업이라면 이 리스크는 더욱 크다.

평판 리스크를 피하려는 시도로 많은 기업이 DEI라는 단어 대신 '직원 참여', '직장 문화', '소속감' 같은 표현으로 재브랜딩하고 있다. 이 전략이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 없이 용어만 바꾼다면 — 오히려 위선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포스트의 분석이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폐지보다 조정이다.

  • DEI 프로그램을 축소하기 전, 전면적인 위험 평가를 먼저 실시할 것
  • 조직의 가치와 목표에 맞게 프로그램을 재설계하고 필요하다면 재브랜딩할 것
  • 차별 금지 교육은 유지하고, DEI의 핵심 원칙을 일상적인 업무 프로세스에 내재화할 것
  • DEI는 한 번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

마치며

정치적 흐름에 따라 DEI를 없애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몰고 오는 법적 분쟁 비용, 인재 손실, 고객 이탈은 결코 작지 않다.

DEI는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리스크 관리의 문제다.


참고: Jennifer Post, "The Risks of Rolling Back DEI", Risk Management Magazine (RIMS), 2025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