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4일 월요일

AI가 사람을 해고할 수 있는가 — 중국 법원이 던진 질문

중국에서의 사건 요약

2025년, 중국 항저우의 한 IT 기업이 AI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품질관리 담당 직원 저우(Zhou) 씨에게 급여 40% 삭감을 통보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당신의 업무를 AI가 대신한다." 저우 씨가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해고를 단행했다.

항저우 중급인민법원은 이 해고를 위법으로 판결했다. 법원의 논리는 명쾌했다. 기술의 발전이 기업에게 일방적 해고나 임금 삭감의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단순한 노동 분쟁의 결론이 아니다. AI 시대의 고용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법정 위에 올려놓은 사건이다.


기술은 중립적인가

흔히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리면 식사를 만들고, 범죄자의 손에 들리면 흉기가 된다는 식의 논리다. 그러나 이 비유는 기술이 사회 구조 안에 이미 특정 권력 관계를 내포한 채로 도입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AI 자동화는 단순히 "더 빠른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협상력의 지형을 바꾸며, 누가 경제적 이익을 가져가는지를 결정하는 구조적 힘이다. AI가 저우 씨의 업무를 대체했을 때, 생산성 향상으로 발생한 이익은 기업으로 귀속되었다. 그 이익을 만들어온 사람에게는 해고 통보가 돌아왔다. 이것이 중립인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기계제 대공업을 분석하며 지적했던 구조가 AI 시대에 재현되고 있다. 기계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자에 대항해 사용하는 수단이 된다는 통찰이다.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배치되는 방식과 그 이익이 분배되는 구조의 문제다.


효율성의 이데올로기

현대 경영학은 효율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AI 도입은 비용 절감, 오류 감소, 속도 향상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들고 온다. 이 앞에서 인간 노동자는 "비효율의 잔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효율성은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효율성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무엇을 위해 효율적이어야 하는지, 그 목적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효율성의 극대화는 결국 인간을 비용 항목으로 환원시키는 논리로 귀결된다.

항저우 법원의 판결은 이 효율성의 이데올로기에 제동을 건 것으로 읽힌다. "효율적이기 때문에 해고할 수 있다"는 논리를 법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효율성의 계산식에 포함되지 않는 무언가 — 고용 관계의 신뢰, 사회적 안정, 개인의 존엄 — 가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했다.


중국의 딜레마, 그러나 보편적인 긴장

중국은 지금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다. 국가 차원에서 AI 기술 패권을 추구하면서도, 청년 실업률 상승과 경기 둔화라는 현실적 압박 앞에 놓여 있다. 정책 자문기구에서조차 "AI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소멸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하는 상황이다.

이 딜레마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2026년 이후 테크 업계에서만 약 8만 명이 AI를 이유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보도가 있다. 기술 혁신의 선두에 선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모순이다. 더 강력한 AI를 개발할수록, 그 AI가 자국민의 고용을 위협하는 역설.

이 긴장은 단순히 "AI를 늦춰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와 사회 적응의 속도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법원의 판결은 그 간극을 메우는 하나의 방식이다 — 사후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사회적 신호로서의 의미는 크다.


고용 관계란 무엇인가

철학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사건은 고용 관계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고용 계약은 단순한 서비스 교환인가. 노동자는 시간과 역량을 팔고,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 이 틀 안에서 AI가 노동자보다 "더 나은 거래 조건"을 제시한다면, 인간을 교체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용 관계를 이렇게만 이해하면, 우리는 근대 노동법이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논리를 버리게 된다. 노동자는 단순한 생산 요소가 아니라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논리. 고용 관계에는 계약 이상의 사회적 의무가 포함된다는 논리. 이것이 해고 보호, 최저임금, 단체교섭권 같은 제도들의 철학적 기반이다.

AI는 이 기반을 흔든다. AI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임금 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기업이 AI를 순수한 도구로, 그리고 인간 노동자를 비용 최적화의 변수로만 본다면 — 그 결말은 저우 씨의 사례처럼 40% 삭감 통보가 된다.

항저우 법원은 그 결말을 거부했다. 이는 AI를 도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AI 도입의 이익을 기업이 독점하면서, 그 비용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앞으로의 물음

이 판결 이후에도 물음은 남는다. 법원이 AI를 이유로 한 해고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AI가 서서히, 조용히, 새로운 채용을 대체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해고되지 않아도, 처음부터 고용되지 않는 세계는 또 다른 문제다.

기술은 계속 진보할 것이다. 그것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진보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리고 진보의 충격을 누가 감당하는가 — 이 배분의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중국 법원의 판결은 그 배분에 대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하나의 답이다. 불완전하고, 사후적이며, 모든 경우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AI가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법이 거부한 순간, 우리는 적어도 이것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는 AI로 무엇을 할 것인가" —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에게 있다.


2026년 5월 3일 일요일

상장회사의 대표이사들은 로펌의 밥인가

영풍-고려아연, 쿠팡, 하이브 사태가 던지는 질문


다른 점 같은 점

2026년 초, 유독 비슷한 패턴의 기사들이 연달아 터졌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이그니오 투자 배임'을 두고 주주대표소송 전쟁을 예고했고, 쿠팡은 3,370만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미국 현지 로펌들의 집단소송 표적이 됐다. 하이브는 민희진 전 대표를 상대로 주주 간 계약 위반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세 사건의 무대와 당사자는 달라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표이사 혹은 경영진이 법정 피고석에 앉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긴다. 상장회사의 대표이사는 이제 로펌의 먹잇감이 된 건 아닐까?


무엇 때문에 제소하는가

주주대표소송 — 회사를 대신한 복수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스스로 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때 주주가 나서서 회사를 대신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이 소송에서 배상금이 인정되면 돈은 이사 개인이 아닌 회사로 귀속된다. 즉 이론적으로는 '회사와 전체 주주를 위한' 제도다.

영풍-고려아연 사건에서 영풍 측 주주들이 고려아연 이사진을 상대로 이 카드를 꺼내든 이유도 여기 있다. 이그니오 투자가 배임에 해당한다면, 그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해를 이사들이 직접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표면상으로는 회사 이익을 위한 소송이지만, 현실에서는 경영권 분쟁의 연장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법정이 지분 싸움의 또 다른 전장이 되는 것이다.

증권 집단소송 — 투자자 손실의 법제화

쿠팡 사건은 결이 다르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문제가 된 건, 쿠팡이 이를 SEC에 정정 공시한 이후에도 주가가 하락했다는 점이다. 미국 현지 로펌들이 즉각 소송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증권 집단소송 시스템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집단을 이뤄 기업과 경영진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로펌은 성공보수 구조로 수임하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하는 비용을 투자자가 선지급할 필요가 없으니, 로펌 입장에서는 '소송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라면 먼저 달려가는 게 합리적이다.

주주 간 계약 위반 — 신뢰의 사법화

하이브가 민희진 전 대표를 상대로 낸 소송은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핵심 쟁점은 '뉴진스 빼가기' 계획이 주주 간 계약을 위반했느냐였다. 법원은 중대한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민희진 측이 승소했지만, 이 소송이 우리에게 보여준 건 따로 있다. 경영진과 대주주 사이의 내밀한 신뢰 관계, 또는 그 균열이 이제 계약서와 법정을 통해 정산된다는 사실이다. 구두 합의와 암묵적 신뢰의 시대는 끝났다.


대리인 문제의 법정 이전

경영학에서 오래된 개념이 있다.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다. 주주(주인)와 경영진(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 대리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할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스톡옵션, 성과보수, 이사회 감시 같은 내부 거버넌스 장치였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다르다. 내부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않거나 지배주주 자신이 갈등의 당사자가 됐을 때, 주주들이 외부 수단, 즉 법원으로 직접 달려가고 있다. 주주대표소송과 집단소송은 사실상 외부화된 대리인 통제 메커니즘이다.

이것이 효율적인가? 단기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 소송 비용, 경영 불확실성, 핵심 인재의 이탈,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부수적 피해가 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법적 책임의 위협이 경영진에게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억제하는 일종의 사전 억지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소송이 잦아질수록 경영진은 더 신중하게 움직인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왜곡도 존재한다. 소송 리스크가 커질수록 경영진은 과감한 투자보다 무사안일한 의사결정을 선호하게 된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어적 경영이다. 고려아연 이그니오 투자가 배임인지 아닌지를 법원이 판단하게 됐을 때, 앞으로 다른 기업의 이사들이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투자를 얼마나 선뜻 결재하려 할까?


책임이란 무엇인가

이 소송들이 제기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경영의 실패는 도덕적 잘못인가, 아니면 불운인가?

배임죄의 핵심은 고의성이다.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모두 배임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주주들은 손실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경영 판단의 실패로 귀결시키고, 법적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손실에는 반드시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이지만, 항상 공정한 귀인(attribution)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책임을 개인의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적 연결에서 찾았다. 그런데 대기업의 의사결정은 수백, 수천 명의 논의와 승인을 거친다. 대표이사 한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 자'인가? 이 질문에 법원은 대부분 단순화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법은 복잡한 조직 현실을 개인의 책임으로 압축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로펌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분화된다. 로펌은 법의 집행자인가, 아니면 소송의 기획자인가? 미국에서 쿠팡을 향해 달려든 로펌들은 투자자 피해를 구제하는 정의의 수호자일 수도 있고, 집단소송 성공보수를 노린 수익 추구자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동시에 옳다. 그리고 그 모호함 위에 현대 주주 소송의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법정 밖의 해답은 없을까

상장회사 대표이사가 로펌의 밥이 됐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는 틀리지 않다. 지배구조 갈등, 투자 실패, 계약 위반이 모두 법정으로 직행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전적으로 나쁜 현상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책임 없는 경영이 방치됐던 시대보다는, 과도한 소송이 경영을 위축시키는 시대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소송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소송이 거버넌스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고 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신뢰와 소통이 살아있다면, 법정까지 가는 분쟁은 훨씬 줄어든다. 영풍과 고려아연이 법원 밖에서 합의 테이블에 앉을 수 없었던 이유, 하이브와 민희진이 계약서 한 줄로 갈라선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이 소송들은 내부 거버넌스의 실패를 외부 사법 체계가 수습하고 있는 광경이다.

대표이사가 로펌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더 좋은 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더 좋은 이사회와 더 솔직한 주주 관계가 먼저다.


CATL의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열어가는 새로운 가능성

이젠 평화를 얻고 싶다

인류는 오랫동안 에너지를 둘러싼 전쟁을 치러왔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중동에서 피가 흘렀고,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남미의 소금사막이 파헤쳐졌으며, 코발트를 캐내기 위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광산으로 내몰렸다. 전기차가 미래라고 외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배터리를 만드는 원료를 놓고 세계 강대국들은 치열한 공급망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배터리가 지구를 구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 배터리 때문에 또 다른 지구가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2026년 4월 말에 전해진 한 소식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중국의 배터리 기업 CATL이 에너지저장 기업 하이퍼스트롱과 3년간 총 60GWh 규모의 나트륨이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나트륨이온 배터리 협력 중 최대 규모다. 숫자만 보면 그저 또 하나의 대형 계약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 소식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읽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자원을 둘러싼 오랜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작은 첫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하다. 나트륨은 지구 어디에나 있다. 리튬처럼 특정 국가의 특정 광산에서만 캐낼 수 있는 희귀 자원이 아니다. 소금에도 있고, 바닷물에도 있고,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속에도 있다. 이 배터리가 진정으로 상용화된다면, 에너지 저장의 원료를 두고 국가가 군사력을 앞세워 협박하거나, 거대 자본이 광산을 통째로 사들여 가격을 흔드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기술이 단순한 배터리 이상의 무언가라고 느낀다.

물론 현실은 아직 이상과 거리가 있다.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낮기 때문에, 같은 크기와 무게로 더 많은 전기를 담을 수 있는 전기차 분야에서는 당장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생산 비용도 현재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완벽하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CATL은 이번 계약을 발표하면서 주요 공정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포 문제, 수분에 취약한 특성, 에너지 밀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제품 사양을 보면, 300Ah 이상의 용량에 약 160Wh/kg의 에너지 밀도, 그리고 1만 5천 회 이상의 충·방전 사이클 수명을 확보했다.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영상 70도의 폭염까지 작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금 이 기술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는 에너지저장장치, 즉 ESS 시장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낮에 저장해 두었다가 밤에 공급하고, 전력이 넘치는 계절에 모아두었다가 부족한 계절에 내보내는 그 장치 말이다.

이 시장에서는 에너지 밀도보다 안정성과 가격이 훨씬 중요하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발열이 적고, 넓은 온도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시스템 구조를 단순하게 설계할 수 있어 보조 전력 소비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기존 리튬이온 저장 시스템과 동일한 크기로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깔려 있는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새로 지을 필요 없이, 있는 것을 바꿔 끼우면 된다는 뜻이다. 설치 비용과 구축 기간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기후 기술 전문 매체 클린테크니카는 이번 계약이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실제 시장 투입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실험실을 넘어, 현실 세계로 나왔다는 선언인 셈이다.


CATL이라는 기업을 나는 복잡한 눈으로 바라본다. 거대 중국 자본이 뒤에 있고, 지정학적 셈법도 분명히 있을 것이며, 이 기업의 성장이 곧 기술 패권 경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창업자 쩡위친이 "테슬라도, 포드도, GM도 모두 우리에게 손을 벌렸다"고 말했을 때, 그 말 속에는 자부심만큼이나 날카로운 경쟁심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기업이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통해 만들어가려는 세계를 응원하고 싶다. 기업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리튬 공급망을 쥔 나라가 세계를 움켜쥐는 구조, 광물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 기지가 세워지고 협정이 깨지는 구조, 그 구조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자원 전쟁의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지쳐간다. 석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리튬 때문에 얼마나 많은 땅이 파괴됐는지. 이제는 조금 다른 세상을 꿈꿔도 될 것 같다. 소금처럼 흔하고, 바닷물처럼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전기를 저장하고, 그 전기로 불을 켜고 차를 달리는 세상. 특정 누군가가 독점하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의 세상.

CATL의 60GWh 계약 하나가 그 세상을 바로 열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길 위에 하나의 이정표가 놓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정표가 옳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원 전쟁이 끝나는 날,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 소식을 기록해 둔다.


2026년 4월 29일 수요일

기후 인플레이션: 지구가 보내는 가격표

기후 변화를 환경 문제로만 바라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기후는 장바구니 물가를 직접 건드리는 경제 변수다. 학자들은 이를 '기후 인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중앙은행들은 이를 거시경제 리스크 분석 대상에 공식 편입했다. 조용히, 그러나 구조적으로, 지구는 우리에게 가격표를 내밀고 있다.


숫자가 먼저 말했다

2022년 유럽의 여름은 기록적이었다. 스페인은 46도의 폭염에 신음했고, 올리브 농장은 타들어 갔다. 영국에서는 폭염으로 닭 도축량이 9% 감소했다. 북이탈리아는 7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쌀 수확이 급감했다. 이것은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었다. 그해 여름의 기온 상승은 식품 물가를 연 0.7%포인트, 전체 소비자물가지수(CPI)를 0.3%포인트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숫자는 냉정하다. 기후가 물가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데이터가 이미 증명했다.


25도라는 임계선

밀, 옥수수, 콩. 인류의 식탁을 지탱하는 주요 작물들은 평균 기온이 약 25도를 넘는 순간부터 생산성이 급격히 무너진다. 이 임계선은 단순한 농업 통계가 아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조금씩 오를 때마다, 수확량 곡선은 반대 방향으로 꺾인다.

가뭄은 밭을 말리고, 해양 고온은 어장을 무너뜨리고, 폭풍은 수확 직전의 작물을 쓸어간다.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른다. 경제학의 가장 오래된 법칙이, 기후라는 새로운 변수 앞에서 매년 반복되고 있다.


식품을 넘어, 전방위로 번지는 충격

기후 인플레이션의 파급은 식품에서 멈추지 않는다.

폭염이 오면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전기요금이 뛴다. 극단적 고온은 도로와 철로를 뒤틀어 물류 비용을 끌어올린다. 기후 재해가 반복될수록 보험사는 손실을 계산하고, 그 계산서는 보험료 인상이라는 형태로 기업과 가계에 전가된다.

이렇게 에너지, 물류, 보험이 동시에 오르면, 물가 압력은 특정 품목의 문제가 아닌 경제 전체의 구조적 비용 상승으로 전환된다. 기업의 원가 구조가 바뀌고, 그 변화는 결국 소비자 가격표에 새겨진다.


신흥국이 먼저 무너진다

기후 인플레이션의 충격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선진국 가계에서 식품이 차지하는 지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신흥국과 저소득 국가에서는 식품이 소비 지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식품 가격이 오르면, 그 충격은 더 빠르고, 더 깊게 전달된다.

기후 변화는 지구적 현상이지만, 그 비용은 가장 취약한 곳에 가장 먼저, 가장 무겁게 내려앉는다. 이것이 기후 인플레이션이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한 이유다.


기대가 굳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중앙은행이 기후 인플레이션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기후 충격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물가는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노동자는 임금 협상에서 더 높은 인상률을 요구하고, 기업은 미리 가격을 올린다. 이렇게 기대 인플레이션이 자리를 잡으면, 물가 상승은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자기 실현적 구조로 굳어진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기온 상승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공식 평가했다. 2035년까지 기후 요인만으로 CPI가 연 1.2%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통화정책의 전통적 도구로는 기후발 공급 충격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기업에게 기후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다. 물류 우회 비용, 보험료 급등, 기후 노출 자산의 장기 손실 리스크가 원가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기후 리스크를 재무 모델에 반영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기후 인플레이션은 저축의 실질 가치를 갉아먹고, 생활비 부담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린다. 단기적 재정 계획을 넘어, 기후 변수를 삶의 경제적 설계 안에 포함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기후 변화는 먼 미래의 환경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마트에서 집어 든 올리브유 가격에, 이번 달 전기요금 고지서에, 갱신된 보험 계약서에 이미 새겨져 있다. 지구는 오래전부터 가격표를 보내왔다. 우리가 이제야 그것을 읽기 시작했을 뿐이다.


2026년 4월 28일 화요일

2026년 1분기 북미 화물 절도 동향: 사칭 기반 조직범죄의 고도화

Insurance Journal의 2026년 4월 28일 자 보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과 캐나다 내 공급망 범죄 양상이 질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발생한 화물 절도 사건은 총 76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소폭 감소했으나, 추정 손실액은 약 1억 3,160만 달러 규모를 유지하며 건당 피해액은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지역별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범죄 다발 구역이었던 텍사스 및 남동부 지역의 활동은 위축된 반면, 주요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한 조직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255건→277건)와 뉴저지(27건→59건)의 사례에서 보듯, 물류 허브가 집중된 연안 지역의 치안 부담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품목별로는 개인 위생 및 뷰티 제품의 절도 사례가 18건에서 50건으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이는 북동부 지역 내 화장품과 향수의 높은 암시장 수요를 반영한다. 식음료 분야에서는 전반적인 음료 절도는 감소했으나, 해산물 등 고단가 식자재를 노린 표적 범죄는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범죄 수법의 지능화다. 단순 탈취를 넘어 피싱, 원격 트로이 목마, 합법 운송업체 사칭 등 ‘신원 도용’ 기반의 범죄가 핵심 유형으로 부상했다. 범죄 조직은 운송업체나 중개업체의 계정, 전화 시스템, 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해킹해 합법적인 물류 프로세스에 침투하고 있다.

심지어 규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합법적인 운송업체를 직접 인수하여 범죄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칭 및 신원 악용 기반의 범죄가 향후 화물 절도 시장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전망하며, 물류 업계의 강력한 보안 인증 체계와 데이터 보호 전략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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