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시작 — 독소 하나가 글로벌 시장을 흔들다
2026년 초, 영유아 분유 시장에 대규모 충격파가 덮쳤다. 네슬레, 다논, 락탈리스 같은 세계 최대 식품 기업들이 줄줄이 분유를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콜의 직접 원인은 '세레울리드(Cereulide)'라는 독소. 바실러스 세레우스(Bacillus cereus) 박테리아에서 유래된 이 독소는 구토와 메스꺼움뿐 아니라 패혈증, 심각한 간 손상, 뇌농양 등 중증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프랑스 공중보건청은 세레울라이드가 프랑스 집단 식중독 원인의 약 2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독소 그 자체가 아니라 독소의 경로였다. 분유에는 모유와 비슷한 영양 성분을 구현하기 위해 오메가-6 계열 불포화지방산인 아라키돈산(ARA)이 사용된다. 문제가 된 분유 속 아라키돈산은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하나의 중국산 원료 공급업체에서 시작된 오염이 여러 국가, 여러 브랜드, 수십 개 제품으로 동시에 번져나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레울리드가 열에 강해 제조·가공 과정에서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분유 제조사들은 가루 상태의 분유를 기준으로 안전 검사를 시행해 왔는데, 추가 검사를 통해 물과 섞었을 때 독성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발견됐다. 수십 년간 업계 전체가 잘못된 검사 기준 위에서 제품을 출하해 온 셈이다.
리콜의 핵심 원인 — 효율을 추구한 글로벌 공급망의 역습
이번 사태는 단순한 품질 불량 사고가 아니다. 구조적 문제의 폭발이다.
글로벌 식품 기업들은 수십 년간 비용 효율을 최우선으로 공급망을 설계해 왔다. 특정 원료를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는 곳에서 대량 조달하는 방식. 아라키돈산의 경우, 중국의 특정 공급업체 카비오 바이오텍(Cabio Biotech)이 다수 글로벌 기업에 원료를 납품하는 구조였다. 프랑스 아동건강단체인 칠드런스헬스는 카비오 바이오텍을 지목하며, 정부에 이 회사가 생산한 아라키돈산이 함유된 모든 분유를 회수하도록 명령할 것을 요청했다. 카비오 바이오텍은 아라키돈산 오염 의혹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나의 공급처가 오염되자, 그 원료를 사용한 모든 브랜드가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공급망 집중화가 리스크 집중화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다.
대책 측면에서는 세 가지 방향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첫째, 세레울리드에 대한 국제 통일 허용 기준 수립이다. 현재 글로벌 기준에서 세레울리드에 대해 합의된 안전 허용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거나 아예 없는 상태다. 둘째, 완제품 상태뿐 아니라 물에 혼합한 상태에서의 독소 농도를 측정하는 검사 방식 전환이다. 셋째, 핵심 원료의 공급업체 다변화와 리스크 분산으로, 단일 공급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근본적 해법으로 지목된다.
리콜한 기업들 — 같은 원인, 다른 대응
네슬레는 이번 사태의 트리거 역할을 한 기업이자, 가장 빠르게 움직인 기업이기도 하다. 고도화된 자체 검사 프로토콜을 통해 유럽의 한 생산 시설에서 제조된 일부 배치에서 극미량의 세레울리드 존재 가능성을 업계 최초로 감지했고, 심층 조사 결과 글로벌 업계 공급업체로부터 공급된 특정 아라키돈산 오일의 오염이 원인임을 확인했다. 네슬레가 제공한 정보는 타 제조사들이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문제를 발견하고 리콜을 발표하는 데 11일이 걸렸다는 점에서 늦장 대응 논란도 피하지 못했지만, 업계 최초 발견자로서 정보 공개를 주도한 점은 달리 평가할 부분이다. ARA 오일 공급망은 글로벌 공급업체(중국산 포함)에 의존했고, 리콜은 60개국 이상으로 확대됐다. 자체 내부 품질 기준은 EFSA 가이드라인 기반의 '검출 불가' 수준으로 규제 기준보다 엄격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락탈리스는 피코(Picot) 브랜드 분유를 리콜했다. 락탈리스는 피코 분유 일부 제품을 프랑스뿐 아니라 중국, 호주, 멕시코 등에서 리콜한다고 발표했으며, 리콜은 판매된 18개국에서 모두 진행됐다. 프랑스 농림부 산하 식품총국은 16일에 락탈리스 분유에서 독소가 발견됐다고 인지했고, 리콜 조치 발표까지 5일이 걸렸다. 네슬레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중국산 ARA 오일을 조달했으며, 당국의 통보 이후에야 수동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리스크 거버넌스 측면에서 규제 기준 추종형에 가까웠다. 2017년 살모넬라균 분유 사태 당시에도 늑장 대응 논란이 있었던 만큼 소비자 신뢰 회복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논은 압타밀(Aptamil) 등 자사 분유 브랜드를 통해 피해가 확산됐다. 싱가포르 식품청이 다논의 태국산 듀맥스 둘락 1의 예방적 리콜을 명령한 데 이어, 아일랜드 식품안전청도 다논이 아일랜드에서 제조된 특정 배치의 영아용 분유 및 성장기용 분유를 대상으로 리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리콜의 원인 역시 중국에서 제조된 ARA 오일 원료가 세레울라이드에 오염됐을 가능성이었다. 다논 역시 당국 명령 이후 이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으며, 리스크 거버넌스 구조는 락탈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기업 모두 글로벌 중국산 ARA 오일 공급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취약성을 안고 있었다. 차이는 문제 인지 후 공개까지의 속도, 정보 투명성,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갈렸다. 네슬레가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리콜을 주도했다면, 락탈리스와 다논은 당국의 발표가 나온 뒤에야 리콜에 나서는 수동적 태도를 보였다.
리콜하지 않은 기업 — 힙(HiPP)의 공급망 철학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받은 브랜드 중 하나가 독일의 유기농 영유아식 기업 힙(HiPP)이다.
힙은 리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이다. 힙분유는 유럽 내 6,000개 이상의 유기농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원료를 공급받는 생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원료 시장에 의존하기보다 유럽 농가 중심의 생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급망을 설계한 구조다. 중국산 ARA 오일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오염 경로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인 효율성만 놓고 보면 가장 경제적인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료 조달 비용이 더 높고, 공급 규모 확장도 제한된다. 그러나 위기 국면에서 이 '비효율'이 최강의 방어막이 됐다. 힙의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공급망 설계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 철학의 문제다. 영유아 식품처럼 한 번의 사고가 브랜드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는 산업에서, 공급망 단순화와 독립성 확보는 보험이자 경쟁력이다.
인사이트 — 이 사태가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첫째, 효율성과 안전성은 공존 가능한가. 글로벌 식품 산업은 수십 년간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왔다. 원료를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는 곳에서 대량 구매하고, 생산을 집중화하며 비용을 낮췄다. 이번 사태는 그 방정식의 이면을 보여줬다. 공급망이 복잡해질수록 특정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체 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진다. 영유아 분유처럼 신뢰가 핵심인 산업에서는 효율 추구가 곧 잠재 리스크의 누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검사 기준은 충분한가. 분유 완제품(분말) 상태에서는 위험한 수준의 세레울리드가 발견되지 않지만, 추가 검사를 통해 물과 섞었을 때 독성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발견됐다. 기존의 모든 안전 기준이 '가루 상태'를 전제로 설계된 것이었다는 의미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어온 기준 자체가 불완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사태는 정면으로 보여줬다.
셋째, 리콜 자체가 신뢰 자산이 될 수 있는가. 네슬레는 실제 피해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상태에서 먼저 문제를 발견하고, 먼저 정보를 공개하고, 먼저 리콜을 단행했다. 이번 해외 리콜은 실제 위해 사례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에 대비한 예방적 조치였다. 단기적으로는 막대한 비용과 브랜드 타격을 감수해야 했지만, 장기적으로 '문제를 먼저 찾아낸 기업'이라는 서사는 신뢰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반대로, 당국의 통보를 기다렸다가 리콜에 나선 기업들은 '숨기려 했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 교훈은 하나로 수렴된다. 식품 안전은 제품의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원료를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는지, 즉 공급망 설계의 철학이 안전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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