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조물책임 소송 시장 규모는 연간 수백억 달러다. RAND Corporation 추산 기준, 미국 전체 불법행위 소송 비용 중 제조물책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GDP의 약 2%에 육박한다. 그리고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부담한다. 2026년 3월 현재 ClassAction.org에 등재된 제품결함 집단소송 7건은 그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 유아용품: 리콜 발표 = 결함 인지 증거
2025년 11월, ByHeart는 Whole Nutrition 유아용 조제분유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발표했다. 선제적 조치로 보였지만, 미국 법체계 안에서 이 발표는 곧바로 소송의 탄약이 됐다.
미국 제조물책임 소송에서 자발적 리콜은 역설적으로 제조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리콜은 제조사 스스로 결함 존재를 인정한 행위로 해석된다. CPSC(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리콜 데이터에 따르면, 리콜 발표 후 관련 집단소송이 제기되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30일 이내다.
유아용 식품 소송에서 배상 청구액이 다른 제품군보다 높은 이유는 피해자가 영유아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법원은 자기 보호 능력이 없는 피해자에 대해 제조사의 주의 의무 수준을 최고로 설정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경우 실제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이 가능하다.
→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미국향 유아·아동용 제품 제조사는 리콜 결정 시점에 소송 대응 프로토콜을 동시 가동해야 한다. ② 리콜은 소비자 안전 절차, 소송 대응은 별개의 법적 프로세스다. 같은 팀이 처리하면 실패한다.
2. 레저·운송 장비: 안전 경고가 면책이 되지 않는다
Malibu Boats는 특정 모델에서 선수 침수로 인해 최소 탑승 인원을 태울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안전 경고를 자사 채널을 통해 공지했다. 이후 제기된 소송에서 이 경고문은 오히려 피고에게 불리한 증거로 활용됐다.
미국 법원은 '경고 결함(Warning Defect)' 이론과 '설계 결함(Design Defect)' 이론을 별도로 판단한다. 경고를 붙였다고 해서 설계 결함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결함을 인지한 상태에서 판매를 계속했다는 사실은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인 '고의적 무시(Conscious Disregard)'에 해당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BMW of North America v. Gore, 1996)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실제 손해의 단일 자릿수 배율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실제 하급심에서는 여전히 수배의 배상이 인정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레저 장비, 선박, 이동수단 수출 기업은 내부 품질 보고서와 소비자 불만 접수 기록을 소송 증거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 ② 결함 인지 후 내부 이메일, 회의록에 남긴 표현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 근거가 된다.
3. 건자재·설비: 소멸시효가 판매 종료 후에도 흐른다
Mueller 미니 스플릿 라인 세트와 Uponor PEX 배관 소송은 건축 설비 자재의 잠복형 결함(Latent Defect)이 어떤 법적 리스크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구리 튜브 미세 균열, PEX 배관 누수 모두 설치 후 수년이 지나 발현된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제조물책임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피해 발생 시점' 또는 '피해 발견 시점(Discovery Rule)' 중 늦은 날짜를 기준으로 한다. 즉 제조사가 해당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10년이 지났더라도, 소비자가 그 시점에 결함을 발견했다면 소송이 가능하다.
미국 내 설치된 PEX 배관 물량은 수천만 미터 단위다. 집단소송으로 묶일 경우 원고단 규모와 배상 총액은 단일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다.
→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건자재·배관·전기 부품·냉난방 설비 수출 기업은 판매 종료 이후에도 소송 리스크를 최소 10~15년 단위로 관리해야 한다. ② 미국향 건설 자재 수출 시 장기 제조물책임보험(Occurrence-based Policy) 설계가 필수다.
4.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 설계가 '제품 결함'으로 간주된다
로블록스 소송은 디지털 서비스에 제조물책임 이론이 적용되는 최전선 사례다. 원고들의 주장은 플랫폼의 연령 인증 부재, 성인-아동 접촉 차단 실패, 허술한 신고 시스템이 '설계 결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을 제한해온 통신품위법 제230조(Section 230)는 최근 아동 보호 영역에서 적용 예외 논의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2024년 이후 복수의 주에서 아동 온라인 보호법이 시행됐고, 연방 차원의 입법 논의도 가속화됐다. 로블록스 소송은 이 법적 환경 변화와 맞물려 진행 중이다.
소셜미디어 중독 소송은 현재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제품책임 집단소송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스냅챗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 건수는 수천 건에 달하며, 주장의 핵심은 무한 스크롤, 변동 보상 알고리즘(Variable Reward Schedule), 수면 시간대 푸시 알림이 의도적으로 설계된 중독 유발 기제라는 것이다. 비디오게임 중독 소송도 동일한 이론적 틀로 전개되고 있다.
→ 한국 기업 리스크 포인트 ① 미국에 앱·게임·소셜 플랫폼을 출시하는 기업은 참여 유도 기능 설계 단계에서 법적 검토를 병행해야 한다. ② 아동·청소년 이용자가 포함된 서비스라면 Section 230 의존 전략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③ 내부 사용자 행동 데이터, A/B 테스트 결과, 중독성 관련 내부 연구가 소송에서 핵심 증거로 제출된다.
미국 제조물책임 소송의 구조적 특성 5가지
미국 제조물책임 소송은 한국 기업들이 경험한 어떤 법적 환경과도 다르다. 다음 다섯 가지는 반드시 전제로 깔고 있어야 한다.
① 3가지 결함 이론이 동시에 적용된다 설계 결함(Design Defect), 제조 결함(Manufacturing Defect), 경고 결함(Warning Defect)은 각각 독립적인 소송 근거다. 하나를 방어해도 나머지 두 개가 남는다.
② 집단소송(Class Action)은 배상액을 수직으로 올린다 1인 피해액이 $500이어도, 원고단이 10만 명이면 청구액은 5,000만 달러가 된다. 여기에 변호사 비용, 징벌적 손해배상이 더해진다.
③ 내부 문서는 적이 된다 미국 소송의 증거개시(Discovery) 절차에서 이메일, 품질 보고서, 설계 회의록 전부가 상대방에게 제출된다. 결함을 알면서 출시했다는 흔적이 하나라도 나오면 사건의 성격이 바뀐다.
④ 아동 피해는 배상 수준이 다른 카테고리다 유아용품, 아동 플랫폼, 청소년 대상 서비스에서의 피해는 법원이 최고 수준의 주의 의무를 부과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인정 가능성도 가장 높다.
⑤ 잠복형 결함은 소송 시효가 늦게 시작된다 건자재·설비처럼 결함이 수년 후 드러나는 제품은 판매 종료 후에도 오랫동안 소송 위험 아래 놓인다. 단기 보험과 단기 품질 보증으로 커버되지 않는다.
미국 시장에서 제품을 파는 것은 그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법적 책임을 지는 계약에 서명하는 것과 같다. 이 계약의 조건을 사전에 읽지 않은 기업만이 소송을 갑작스럽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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