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토요일

DEI를 버린 대가 — 타겟(Target)이 증명한 것

수십 년간 다양성을 외쳤던 기업이 취임 5일 만에 모든 것을 뒤집었다. 그 결과는 '조용한 철수'가 아닌, 전방위적 붕괴였다.


DEI, 먼저 개념부터 짚고 가자

요즘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DEI'라는 단어. 정확히 무슨 뜻일까?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 세 단어의 앞글자를 딴 개념이다.

  • 다양성(Diversity): 인종, 성별, 나이, 국적, 종교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 내에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것
  • 형평성(Equity): 단순한 '평등(equality)'과 다르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것
  • 포용성(Inclusion): 다양한 구성원 모두가 환영받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

기업 차원에서 DEI 정책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채용 다양성 목표 설정, 소수 집단 소유 공급업체 우대, 직원 교육 프로그램 운영, 외부 다양성 지수 보고 등 구체적인 제도와 예산이 동반된다.

타겟(Target)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소유 브랜드와 커뮤니티 지원에 20억 달러(약 2조 7천억 원)를 약속하며 DEI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혔던 회사다.


왜 DEI를 버렸나

조용하지 않았던 '전략적 재조정'

2025년 1월 25일, 타겟은 짤막한 발표를 내놓았다. 3년간 추진해 온 DEI 목표를 종료하고, 흑인 소유 브랜드 지원 이니셔티브(REACH)를 폐기하며, 외부 다양성 지수 보고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식 설명은 단 한 문장이었다.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사업 전략 재조정."

그런데 이 발표가 나온 날이 언제였는지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5일째 되던 날이었다. 취임식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던 바로 그 회사가, 취임 5일 만에 수십 년간 쌓아온 DEI 정책 전체를 접었다.

이유 1. 트럼프 행정부의 직접적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3일째 되는 날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행정부는 연방 정부와 민간 기업 전반에서 차별적인 DEI 정책을 철폐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서명된 행정명령은 연방 계약 기업들을 직접 겨냥했고, 보수 성향의 주주 그룹들은 DEI가 기업 가치를 훼손한다며 소송을 예고했다.

이유 2. 법적 리스크의 급격한 증가

2023년 미국 대법원은 대학 입시에서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이후 기업의 DEI 기반 채용 관행과 공급업체 우대 정책도 법적 도전에 취약해졌다. 기업 법무팀들이 일제히 리스크 재검토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유 3. 이미 경험했던 불매운동의 학습 효과

타겟은 2023년에도 프라이드(Pride) 관련 상품 진열로 보수층의 대규모 불매운동을 경험했다. 당시 CEO 브라이언 코넬은 직접 "부진한 실적의 원인 중 하나"로 이를 언급했다. 이 경험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유 4. 경쟁사들의 선례

타겟이 DEI 폐기를 선언하기 전후로, 미국 주요 기업들이 이미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월마트(Walmart)는 DEI 공약을 조용히 수정했고, 메타(Meta)는 다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폐지했으며, 아마존은 내부 메모를 통해 관련 관행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JPMorgan 등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5년 S&P 500 기업들의 공시 문서에서 DEI 관련 언급이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그래서, 결과는?

타겟의 계산은 이랬을 것이다. 정치적 압박을 피하고, 법적 리스크를 줄이고, 보수층 소비자를 잃지 않겠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전국 단위 불매운동

2025년 2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에 맞춰 시민권 단체와 흑인 성직자들이 주도한 전국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특히 타겟에 입점해 있던 흑인 소유 브랜드 판매자들도 피해를 입자, 활동가들은 방향을 틀어 "해당 브랜드를 타겟이 아닌 온라인 직구로 구매하자"는 운동으로 전환했다. 이 불매운동은 2025년 내내 지속됐다.

숫자로 드러난 손실

  • 2021년 고점 대비 주가 61% 하락
  • 시가총액 약 124억 달러(약 17조 원) 증발
  • 불매운동 선언 이후 매장 방문객 연속 8주 감소, 최대 주간 5.7% 하락
  • 4분기 매출 3.1% 감소
  • 브랜드 호감도 9% 하락

주주 집단소송

주주들은 "타겟이 DEI 정책 변경이 주가와 브랜드 가치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투명하게 공시하지 않았다"며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합의 비용이 수백만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CEO 사임과 대규모 구조조정

장기 재임 CEO 브라이언 코넬이 논란 속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어 타겟은 10년 만의 최대 구조조정을 발표하며 약 1,800명의 임직원을 감원했다. 물론 아마존·월마트와의 경쟁 심화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불매운동이 만들어낸 매출 감소가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분석가들은 일제히 지목했다.

내부 붕괴

재무 손실만이 아니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직원들의 심리적 안전감과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다. 직원 네트워크(ERG) 등 포용 프로그램이 약화됐고, 소수집단 출신 고성과자들의 이직률이 높아졌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심지어 타겟 공동 창업자의 딸들인 앤과 루시 데이턴(Anne & Lucy Dayton)이 공개적으로 "창립 가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짜 문제

버지니아 공대의 마케팅 교수 슈레얀스 고엔카(Shreyans Goenka)는 CN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DEI를 지지했다가 철회하는 브랜드는 임의적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DEI를 지지하고, 내일은 철회하면 브랜드 포지셔닝이 일관성을 잃고 비진정성 있게 느껴집니다."

기업 컨설턴트 폰세 드 레온(Ponce de Leon)의 말도 곱씹을 만하다.

"사회의 정치가 바뀌어도, 당신의 가치관은 바뀌어선 안 됩니다."

타겟의 문제는 단순히 DEI 정책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진보적 가치를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던 기업이, 정치적 바람이 바뀌자 5일 만에 그 정체성을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소비자들이 분노한 것은 정책 변경 자체가 아니라, 그 돌변의 속도와 무게였다.


그래서 DEI는 끝난 건가?

타겟을 비롯한 기업들의 후퇴가 DEI의 종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영국의 자산운용사 슈로더스(Schroders)와 로열 런던(Royal London)은 타겟의 DEI 후퇴를 "장기적 재무 리스크"로 공식 규정하고, 이사회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DEI는 윤리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포트폴리오 리스크 관리의 문제다.

2025년 하반기, 타겟은 뒤늦게 흑인 창업자 지원 단체 RICE와의 파트너십을 공개하며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떠난 신뢰를 되찾기에 충분한 제스처인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타겟이 증명한 것

타겟의 사례가 남기는 교훈은 역설적으로 단순하다.

정치적 압박을 피하기 위해 DEI를 버렸더니, 더 큰 정치적·경제적·브랜드 위기가 찾아왔다. 불매운동을 두려워해 한쪽의 눈치를 봤더니, 더 강력한 불매운동이 반대편에서 터졌다. 소송을 피하려 했더니, 주주 집단소송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타겟의 실적 부진에는 아마존·월마트와의 경쟁 심화, 소비 침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DEI 후퇴가 만들어낸 '신뢰의 공백'이 모든 부정적 요소를 증폭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브랜드는 단기적 수익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브랜드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일관성과 진정성이다.

타겟은 그것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참고: Fortune, CNN Business, Reuters, Bloomberg, Diversity.com, Retail Brew (2025)


2026년 2월 10일 화요일

비즈니스 회복력, 더 가치 있는 모의 훈련을 위한 4단계 전략

원문 기고자: Gavin Watt (Databarracks 비즈니스 회복력 컨설턴트)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BCP)의 실효성은 서류상의 완결성이 아닌, 실제 위기 상황에서의 작동 여부에 달려 있다. 영국의 선도적인 IT 회복력 및 매니지드 서비스 전문 기업인 Databarracks에서 비즈니스 회복력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개빈 와트(Gavin Watt)는 RIMS 매거진 기고를 통해 형식적인 훈련의 매너리즘을 탈피하고 실질적인 조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4단계 방법론을 제시한다.

와트는 우선 명확한 목표 설정이 모든 훈련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단순히 '연습을 했다'는 사실보다 '무엇을 검증할 것인가'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이어지는 단계로 시나리오의 현실성 확보를 제안하는데, 이는 조직의 실제 취약점을 정밀하게 파고드는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는 위협 모델링을 의미한다. 셋째로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몰입 유도를 위해 실제와 유사한 스트레스 환경을 조성하고 의사결정의 무게를 체감하게 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며, 마지막으로 사후 검토와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도출된 보완점을 실제 프로세스에 즉각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결국 가치 있는 모의 훈련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조직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 간극을 메워가는 고도의 전략적 프로세스인 것이다.

https://www.rmmagazine.com/articles/article/2026/02/10/4-steps-to-conduct-more-valuable-simulated-exercises?utm_campaign=shareaholic&utm_medium=copy_link&utm_source=bookmark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메타 2026 - 기술 혁신과 지정학적 위기가 공존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 기업이 직면한 위험의 성격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세계 최대 기업보험사 중 하나인 알리안츠(Allianz)가 발표한 '2026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메타(Allianz Risk Barometer)'를 통해 현시대 비즈니스 생태계를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와 대응 전략을 분석한다.


1. 알리안츠 및 글로벌 리스크 바로메타 소개

알리안츠 그룹(Allianz Group)은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보험 및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금융 리더다. 알리안츠 산하의 기업 보험 전문 부문인 Allianz Commercial은 매년 초 '글로벌 리스크 바로메타'를 발간하며 업계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험 요소를 식별하고 순위를 매긴 지표다. 전 세계 경영진, 리스크 관리자, 보험 전문가들이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신뢰하는 거시적 지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 글로벌 서베이 방법론

2026년 리스크 바로메타는 역대 최대 규모인 97개국, 3,338명의 리스크 관리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설문 대상은 CEO, 리스크 관리자, 보험 중개인 및 업계 전문가를 망라하며, 각 응답자가 향후 12~24개월 내 본인의 산업 또는 국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Top 3 리스크'를 선정하는 정성적 설문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SME)의 리스크 인식 차이를 함께 분석하여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리스크 지형도를 도출했다.


3. 2026 글로벌 리스크 Top 10 상세 분석

올해의 리스크 지형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인공지능(AI)의 급부상지정학적 리스크의 심화다.

  • 1위. 사이버 사고: 랜섬웨어, 데이터 유출, 대규모 IT 중단 사태가 포함된다. 5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현대 기업의 가장 치명적인 위협으로 군림하고 있다.

  • 2위. 인공지능 (AI): 작년 10위권 밖에서 2위로 수직 상승했다. 도입 과정의 신뢰성 부족, 법적 책임 소재, 생성형 AI를 이용한 가짜 뉴스 확산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 3위. 기업 휴지 (BI): 공급망 마비를 포함한 조업 중단 리스크다. 사이버 공격이나 기상 이변 등 타 리스크와 결합하여 발생하는 연쇄적 타격이 핵심이다.

  • 4위. 법규 및 규제 변화: 무역 관세 인상, 보호무역주의 강화, ESG 공시 의무화 등 국가별 규제 환경의 파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 5위. 자연재해: 2025년 허리케인 시즌의 상대적 안정으로 순위는 소폭 하락했으나, 이상 기후로 인한 물리적 손실액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6위. 기후 변화: 직접적인 피해를 넘어 저탄소 경제 전환 과정에서의 자산 가치 하락 및 운영 리스크 증가가 주요 쟁점이다.

  • 7위. 정치적 리스크 및 폭력: 전쟁, 테러, 사회적 소요를 포함한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전 세계적으로 증대됨에 따라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 8위. 거시경제적 전개: 인플레이션 지속, 금리 변동성, 재정 긴축 정책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회복세의 불확실성이 기업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

  • 9위. 화재 및 폭발: 산업 현장의 고질적인 리스크다. 설비 노후화 및 복합 제조 공정에서의 대형 사고 우려는 여전히 상존하는 위협이다.

  • 10위. 시장 상황 변화: AI 거품에 대한 우려와 M&A 시장의 위축, 신규 파괴적 경쟁자 진입으로 인한 시장 변동성 확대가 순위권에 진입했다.


4. 인사이트: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 및 보험 전략

가. 기술 거버넌스의 확립 (AI & Cyber)

AI가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닌 '현존하는 리스크'로 편입됨에 따라, 기업은 AI 거버넌스 체계를 즉시 구축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편향성, 데이터 프라이버시, 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정기적 감사를 시행하고, 사이버 보안 투자를 단순 방어에서 복구 탄력성(Cyber Resilience)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나. 공급망 탄력성 및 BCP 재설계

지정학적 충격에 대비하여 공급처 다변화(Multi-sourcing)와 실시간 공급망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이 필수적이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블랙 스완' 시나리오를 가정한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BCP)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실제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다. 보험 프로그램의 전략적 리플랜

기업의 고유 리스크 프로파일에 맞춘 맞춤형(Bespoke) 보험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상 이변 시 즉시 보상하는 파라메틱 보험(Parametric Insurance)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캡티브(Captive) 활용을 통해 리스크 전가 비용을 최적화해야 한다. 또한 보험사의 리스크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활용하여 사고 발생 확률 자체를 낮추는 선제적 관리 전략이 요구된다.


결론

2026년의 기업 환경은 AI라는 거대한 파도와 지정학적 긴장이라는 암초가 공존하는 형국이다. 알리안츠 리스크 바로메타가 시사하는 핵심은 개별 리스크가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연결성'에 있다. 하나가 무너질 때 전체 시스템이 마비되는 도미노 효과를 방지하는 것이 현대 리스크 관리의 본질이다.


2026년 2월 6일 금요일

2025년 가격담합 대형사건 10선 — 제재 규모와 리스크의 실제

2025년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담합 제재 역사에서 분기점이 된 해다. 2026년 1분기까지 이어진 담합 과징금만 6,891억 원을 돌파했고, 이는 2025년 한 해 전체 담합 과징금(2,189억 원)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업종과 규모를 막론하고 식품, 금융, 통신, 제지, 건설 전 산업에서 담합이 적발됐다. 아래 10개 사건은 2025년에 담합이 진행됐거나 조사·제재가 이뤄진 주요 사건으로, 경영자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실제 사례다.


사건 1. 이동통신 3사 번호이동 판매장려금 담합 — 과징금 963억 원 확정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운영한 이른바 '서초동 시장상황반'을 거점으로 삼아 번호이동 가입자 유치 경쟁을 회피했다. 3사 실무 담당자들이 매일 모여 판매장려금 수준을 공유하고 특정 사업자의 가입자 순증이 쏠리면 다른 회사가 장려금을 낮춰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담합을 지속했다. 공정위는 2025년 3월 1,140억 원의 잠정 과징금을 발표했고, 같은 해 7월 963억 원으로 최종 확정했다. 3사는 모두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통신업계 기준 2013년 방통위 제재(1,064억 원) 이후 최대 규모 담합 과징금이다. 경영자 개인에 대한 형사 고발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실무 담당자들의 조직적 공모 정황이 의결서에 명시됐다.

핵심 교훈: '자율 규제 명목의 정례 모임'이 사실상의 담합 채널이 될 수 있다. 업계 협의체를 통한 경쟁 정보 공유는 그 형태를 불문하고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판단될 수 있다.


사건 2. 국고채 전문딜러(PD사) 입찰 담합 — 과징금 최대 수조 원 예상, 심의 진행 중

메리츠증권·키움증권·KB증권·삼성증권·NH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대신증권·교보증권·한국투자증권과 IBK기업은행·NH농협은행·하나은행 등 국고채 전문딜러 15개사가 제재 대상이다. 공정위는 이들이 한국은행 국고채 입찰 전 금리 정보를 사전 공유해 응찰 경쟁을 제한하고 국고채 금리를 인위적으로 높게 형성한 혐의를 포착, 2025년 3월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공정위가 파악한 관련 매출액은 76조 원이며 이론상 최대 과징금은 11조 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8월까지 15개 PD사가 의견서를 제출했고 연내 전원회의가 예고됐다. 한 PD사의 심사보고서상 과징금만 1조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부의 국채 조달 비용을 높인 행위라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 가능성도 크다. 임직원 고발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핵심 교훈: 금융 시장 내 '정보 공유' 관행은 담합 리스크의 온상이다. 입찰 전 금리·물량 정보를 타사와 교환하는 행위는 명백한 카르텔로 간주된다.


사건 3. 신문용지 제조 3사 가격 담합 — 과징금 305억 원, 1개사 법인 고발

전주페이퍼·대한제지·페이퍼코리아는 2021년 6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국내 33개 신문사에 공급하는 신문용지 가격을 1톤당 12만 원 인상하는 과정에서 사전 합의했다. 이들은 텔레그램, 공중전화 등을 이용해 최소 9차례 가격 조율 모임을 가졌고, 가격 인상 통보 시 단속 회피를 위해 인상 시기와 금액을 서로 다르게 기재하는 등 조직적 은폐를 시도했다. 반발한 신문사에는 공급량을 50% 삭감하겠다고 압박까지 가했다. 공정위는 2024년 11월 제재를 확정해 총 30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가담 정도가 가장 심한 업계 1위 전주페이퍼를 검찰에 고발했다.

핵심 교훈: 담합 흔적을 지우기 위한 은폐 시도는 오히려 공정위가 '조직적 담합'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은폐 행위 자체가 가중 처벌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건 4. 인쇄용지 제조 6사 가격 담합 — 과징금 3,383억 원, 2개사 법인 고발, 가격재결정 명령

무림SP·무림페이퍼·무림P&P·한국제지·한솔제지·홍원제지 등 인쇄용지 제조·판매 6개사는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약 3년 10개월 동안 60차례 이상 모임을 갖고 총 7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사전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공중전화와 타 부서 직원 명의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연락처를 이니셜이나 가명으로 관리하는 등 조직적 은폐까지 동반됐다. 동전·주사위로 가격 인상 통보 순서를 정한 사례도 확인됐다. 담합 기간 중 평균 판매가격은 약 71% 상승했다. 공정위는 2026년 4월 과징금 3,383억 원을 확정하고, 담합에 가장 깊이 관여한 한국제지와 홍원제지를 검찰에 고발했다. 아울러 20년 만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내려 각 제지사는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핵심 교훈: 교과서·문제집 등 교육 분야 핵심 원재료의 담합은 소비자 전가 효과가 명백해 중대성 평가에서 최고 수준을 받고, 가격재결정 명령이라는 전례 없는 추가 제재까지 받을 수 있다.


사건 5. 4대 시중은행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 정보 교환 담합 — 과징금 2,720억 원, 전원 소송 예고

KB국민은행(697억 원)·신한은행(638억 원)·하나은행(869억 원)·우리은행(515억 원) 등 4대 시중은행이 2022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최소 736건에서 최대 7,500건에 이르는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를 수시로 교환한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2026년 1월 총 2,7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2021년 말 개정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정보 교환 담합 금지' 조항이 실제 제재로 이어진 첫 사례라는 점에서 선례적 의미가 크다. 내부 문건에는 "담합 이슈 때문에 파일로 주고받지 못하고 일일이 적었다", "뒤로 윈윈한다"는 표현이 담겨 있었다. 4개 은행은 모두 2026년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핵심 교훈: 가격·물량의 직접 합의 없이 '정보 교환'만으로도 담합이 성립한다. 이는 금융권을 넘어 모든 업종에 해당한다. 경쟁사와 교환하는 거래 조건 관련 정보의 법적 위험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사건 6. 설탕 제조 3사 가격 담합 — 과징금 4,083억 원, 식품업 역대 최대

CJ제일제당(1,507억 원)·삼양사(1,303억 원)·대한제당(1,274억 원) 등 설탕 제조 3사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4년여간 B2B 설탕 판매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시기를 총 8차례 사전 합의했다. 공정위가 2024년 3월 조사에 착수한 이후에도 1년 이상 담합을 지속한 것이 확인됐다. 2007년 동일 혐의로 51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다시 담합을 반복한 점, 진입장벽이 높은 과점 시장 구조를 적극 활용한 점이 중대성을 높였다. 공정위는 부과기준율 최고 수준인 15%를 적용해 2026년 2월 총 4,083억 원의 과징금을 확정했다. 식품업 담합 단일 사건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핵심 교훈: 과거 담합 제재 전력이 있는 상태에서 재범을 저지르면 과징금 부과기준율이 대폭 가중된다. '반복 담합' 기업이 받는 제재 수위는 급격히 올라간다.


사건 7. 밀가루 제분 7사 가격·물량 담합 — 심사보고서 발송, 최대 1조 원대 과징금 예고

CJ제일제당·대한제분·대선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삼화제분·한탑 등 제분 7개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B2B 판매가격 인상 폭·시기를 합의하고 수요처별 물량을 배분했다. 이들의 국내 B2B 밀가루 시장 점유율은 88%에 달한다. 공정위 산정 관련 매출액은 5조 8,000억 원이며 최대 과징금은 이론상 1조 2,000억 원에 이른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미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공정위는 2026년 2월 심사보고서를 발송하며 20년 만에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포함할 의사를 밝혔다. 최종 제재는 전원회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핵심 교훈: 검찰이 먼저 임직원을 기소한 뒤 공정위 제재가 뒤따르는 복합 제재 구도가 현실화됐다. 형사 처벌과 행정 제재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으며, 임원 개인의 형사 책임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사건 8. 전분당 제조 4사 가격 담합 — 심의 착수, 최대 1조 2,000억 원대 과징금 가능

대상·사조CPK·삼양사·CJ제일제당 등 전분당 제조·판매 4개사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7년 6개월 동안 물엿, 포도당, 액상과당 등 전분당 판매가격을 반복적으로 합의했다. 관련 매출액은 6조 2,000억 원으로 산정됐다. 공정위 심사관은 2026년 3월 심사보고서를 발송하면서 가격재결정 명령, 과징금 부과, 임직원 고발 의견을 모두 포함시켰다. 설탕 담합 조사 과정에서 전분당 담합 정황을 추가로 포착해 수사가 확장된 사례다. 식품 원재료 담합의 연쇄 적발이라는 점에서 업계 전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핵심 교훈: 한 사건 조사 중 연관 담합을 추가로 적발하는 '확장 조사'가 공정위의 표준 방식이 되고 있다. 한 품목의 담합이 발각되면 연관 시장 전체로 조사가 번질 수 있다.


사건 9. 신문용지 이어 인쇄용지 — 제지업 연쇄 담합 적발의 구조적 문제

신문용지 3사(2024년 11월 제재 확정)에 이어 인쇄용지 6사(2026년 4월 제재 확정)까지 제지업 전반에서 담합이 연속 적발됐다. 두 사건 모두 코로나19 이후 원가 상승을 가격 전가의 구실로 삼아 공급사 간 가격 인상을 사전 합의한 구조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인쇄용지 6사 사건에서는 교과서·학습지 등 교육 분야 원재료 가격이 평균 71% 상승하며 피해가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전가됐다는 점이 제재 수위를 끌어올렸다. 두 사건을 합산하면 제지 업계에서만 과징금 총 3,688억 원이 부과됐다.

핵심 교훈: 업계 전반의 관행처럼 굳어진 담합일수록 일단 한 곳이 적발되면 연쇄 제재가 뒤따른다.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는 논리는 공정거래법 앞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다.


사건 10. 식품 원재료 시장 전방위 조사 — 달걀·돼지고기·전분당 부산물로 확대

공정위는 설탕·밀가루·전분당 담합을 연속 적발하면서 달걀, 돼지고기, 전분당 부산물(사료용 글루텐피·배아 등) 시장에 대한 병행 조사도 진행 중임을 공식화했다. 공정위는 "민생물가와 직접 연결된 식료품 분야 담합을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방침 아래 식품 원재료 카르텔 근절을 2025~2026년 최우선 집행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별 사건이 아니라 식품 공급망 전체를 겨냥한 구조적 조사로, 관련 업계 경영자라면 자사 거래 관행 전반에 대한 즉각적인 내부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

핵심 교훈: 공정위가 특정 업종을 집중 조사하겠다고 선언한 순간, 그 업종 전체가 리스크 영역에 들어간다. 조사 대상이 되기 전에 내부 자진 시정으로 선제 대응하는 것이 과징금 감경의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다.


담합 제재의 흐름이 바뀌었다 — 경영자가 기억해야 할 3가지 변화

첫째, 과징금 부과기준율이 구조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설탕 담합에 적용된 기준율 15%는 과거 평균(3.5%)의 4배를 넘는다. 2026년 시행 예정인 개정 과징금 고시는 담합 기준율 하한을 0.5%에서 10%로 대폭 올리고 반복 위반 시 최대 100%를 가중한다. 같은 행위를 해도 앞으로 받는 과징금은 지금보다 몇 배 더 클 수 있다.

둘째, '정보 교환'만으로도 담합이 성립한다. 4대 은행 LTV 사건은 가격 직접 합의 없이 거래 조건 정보 교환만으로도 공정거래법 위반이 된다는 사실을 한국 최초로 확정한 사례다. 경쟁사와의 모든 정보 교환 채널을 점검해야 한다.

셋째, 임직원 개인 고발이 현실화됐다. 밀가루 담합 사건에서 임직원 14명이 기소됐고, 인쇄용지 사건에서도 법인 2개사가 고발됐다. 담합은 더 이상 회사의 법무팀이 사후에 수습하는 문제가 아니다. CEO를 포함한 경영자 개인의 형사 리스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