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7일 일요일

CEO라는 직업, 교도소 담장 위를 걷다

"모든 처벌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한, 폭력이다."

계몽주의 사상가 체사레 베카리아가 『범죄와 형벌』에서 남긴 말이다. 형벌은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이자,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영 현장에서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 아닌 '최초의 위협'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최근 발표한 「고용·노동 관련 법률상 기업 형벌규정 현황 및 개선방향」 보고서는 이 서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업주가 되는 순간, 당신은 233개의 지뢰밭 위에 서게 된다.


잠재적 범죄자가 된 기업가들

경총의 분석은 충격적이다. 고용·노동 관련 25개 법률을 뜯어보니, 형벌 조항만 총 357개에 달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타겟이다. 전체 조항의 약 65%인 233개 조항이 사업주를 직접적인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채용절차법, 남녀고용평등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일부 법안은 오로지 사업주만을 형벌의 수규자(법 적용 대상)로 삼는다. 이는 한국의 노동 관계법이 '사업주 편향적 형사책임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리스크를 감당하는 행위라지만, 그 리스크가 '경영상의 실패'가 아닌 '형사적 처벌'로 직결되는 구조는 분명 비정상적이다.

징역형의 과잉, 그리고 양벌규정의 모순

통계는 더욱 가혹하다. 전체 형벌 조항의 75%인 268개 조항이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다. 행정적 제재나 과태료로 충분히 계도할 수 있는 사안들조차 '감옥'을 담보로 기업인을 압박한다.

더욱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양벌규정(兩罰規定)'**에 있다. 전체 형벌 조항의 94%인 336개 조항이 행위자 외에 법인이나 사업주까지 함께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책임 없는 곳에 형벌 없다."

이는 근대 형법의 대원칙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법은 실제 위법 행위에 관여하지 않은 사업주까지 관리 책임이라는 명목하에 형사처벌의 그물망에 가둔다. 이는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사업주에게 무한 책임의 공포를 심어준다.

비례성을 상실한 법의 저울

법의 권위는 공정함과 비례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법체계는 균형을 잃었다.

예를 들어보자.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는 민사적 구제의 대상일 뿐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반면, 해고 과정에서 절차적 의무인 '해고 예고'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실체적 진실보다 절차적 위반을 더 무겁게 처벌하는 이 아이러니는, 법이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기계적인 처벌 만능주의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도한 규제는 결국 '경영의 위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기업들은 형사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직고용 대신 외주화를 선택하게 되고, 이는 양질의 일자리 감소와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 CEO가 혁신을 고민하는 시간보다 변호사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는 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처벌에서 교정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의 지적처럼, 무분별한 형사처벌은 전과자만 양산할 뿐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1. 비형사적 제재로의 전환: 경미한 위반이나 행정적 착오에 대해서는 과태료 등 행정 제재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규제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2. 형벌의 합리화: 징역형 위주의 처벌 수위를 낮추고, 위반 행위의 경중에 맞는 합리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3. 양벌규정의 축소: 책임주의 원칙에 입각해, 사업주의 직접적인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까지 처벌하는 과도한 연좌제를 끊어야 한다.

기업은 범죄 집단이 아니며, 경영자는 예비 범죄자가 아니다. 법이 '처벌'이 아닌 '가이드라인'으로서 기능할 때, 기업은 비로소 교도소 담장 위에서 내려와 혁신의 들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형벌 합리화'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노동 관련 법령의 낡은 뼈대를 바꾸는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두려움은 창의성의 가장 큰 적이다."

기업가들이 법전을 뒤적이며 두려움에 떨게 하는 대신, 세계 지도를 펼치고 미래를 꿈꾸게 하라. 그것이 국가 경쟁력의 시작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선의의 랠리, 승부보다 빛나는 나눔의 품격

삐약이에서 기부 천사로.. 세모를 따뜻하게 스포츠 스타의 기부는 종종 ‘액수’로만 소비된다. 하지만 신유빈의 나눔을 들여다보면, 숫자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다. 바로 태도 다. 21살, 한국 여자 탁구의 간판선수. 코트 위에서는 세계를 상대로 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