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총액은 4,227억 원이다. 불과 124건의 사건에서 나온 숫자다. 쿠팡은 PB상품 검색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단 한 건에 1,628억 원을 부과받았고, KH그룹은 입찰 담합으로 510억 원, CJ프레시웨이는 부당 내부거래로 245억 원을 물었다. 이제 공정거래법은 단순한 '준법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기업의 생존과 경영자 개인의 형사 책임까지 직결되는 최전선 리스크다. 공정위 소관 6개 주요 법령별로 경영자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리스크와 관리 인사이트를 정리한다.
1.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 담합·시장지배적 지위 남용·부당지원
공정거래법은 경쟁 질서를 지키는 헌법과 같은 법이다. 위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경영자가 각각 다른 맥락에서 노출된다.
첫째,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다. 경쟁사 직원과 가격이나 물량을 단 한 차례만 논의해도 담합이 성립할 수 있다. 골프장, 업계 협회 모임, 식사 자리가 수천억 과징금의 시작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24년에도 건설사 발주 가구 입찰, 반도체 제어감시시스템 입찰, 알펜시아 리조트 매각 입찰 등 다양한 산업에서 담합 적발이 잇따랐다.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부과되며, 법인 고발과 함께 담합을 주도한 임원 개인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다. 쿠팡 PB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색 알고리즘을 자사 상품에 유리하게 조작한 행위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판단되어 1,62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차단' 사건(151억 원)도 같은 맥락이다. 플랫폼 기업이라면 알고리즘, 수수료 정책, 데이터 활용 방식이 모두 잠재적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영진이 인식해야 한다.
셋째, 부당지원행위 및 사익편취다. 계열사 간 거래에서 시장 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몰아주거나,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자원을 집중하면 사익편취 혐의를 받는다. 2024년에는 총수 일가 보유 자회사에 대규모 공사 일감을 제공하거나 계열사에 인력을 파견해 인건비를 대신 부담한 행위가 제재를 받았다.
관리 인사이트: 경쟁사와의 접촉은 반드시 법무 또는 준법 부서의 사전 확인을 거쳐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 변경 시 경쟁 영향을 사전 검토하는 내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계열사 거래는 이사회 의결과 가격 적정성 검토를 문서로 남기는 것이 필수다.
2.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 원사업자가 가장 빈번하게 걸리는 법
하도급법은 위반 사건 건수 기준으로 공정위 제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갖기 때문에, 일상적인 구매·발주 행위가 곧바로 법 위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위반 유형은 부당한 하도급대금 감액, 기술자료 요구·유용, 부당 반품, 경제적 이익 제공 강요 등이다. 2024년부터는 하도급대금 연동제가 본격 시행되어,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폭 이상 변동하면 하도급 대금도 의무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면 즉시 위반이 된다. 또한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는 반드시 법정 서면을 교부해야 하며, 구두·이메일만으로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 이유만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2024년에 공개됐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무시할 수 없다. 기술 유용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가 2024년 법 개정으로 3배에서 5배까지 확대됐다. 기술 탈취 혐의가 인정되면 행정 과징금에 더해 민사 손해배상까지 이중으로 부담해야 한다.
관리 인사이트: 발주·구매 담당자가 하도급법의 금지 행위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 기술자료 요구는 반드시 법정 서면으로, 대금 감액 시에는 정당한 사유와 근거를 문서로 확보해야 한다. 연동제 대상 계약은 별도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 프랜차이즈 본부의 핵심 리스크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의 정보 비대칭과 지위 격차를 규율한다. 필수품목 강제 구매, 판촉비 전가, 영업 구역 침해, 계약 해지 남용 등이 주된 위반 유형이다.
공정위는 2024년 필수품목 관련 제도 개선과 불공정 행위 조사에 역량을 집중했다.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의 경영 활동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도 규제가 강화됐다. 경영자 입장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정보공개서 미등록·허위 작성, 광고비·판촉비를 가맹점주에게 부당하게 분담시키는 행위, 허가 없이 영업 구역 내에 직영점이나 타 가맹점을 개설하는 행위다.
관리 인사이트: 가맹본부는 정보공개서를 매년 갱신하고 공정위 등록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가맹점주와의 모든 계약 조건 변경은 충분한 사전 안내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광고·판촉 비용 분담 기준을 계약서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4.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 유통 플랫폼·대형마트의 뜨거운 이슈
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자 사이의 거래를 규율한다. 쿠팡이 2024년 이 법을 포함한 복수의 위반 혐의로 제재를 받은 것이 상징적이다.
주요 위반 유형은 상품대금 지연 지급, 판촉비·광고비 전가, 목표 이익률 강요, 경영 활동 간섭 등이다. 쿠팡 사례에서 드러났듯, 2만 5,000여 납품업체에 대금을 법정 기한을 넘겨 지급한 행위는 대규모 조직에서 현장 담당자 수준의 관행이 법 위반으로 이어진 경우다. 체험단 비용 미반환 등 소규모 갑질도 적발 대상이 됐다.
관리 인사이트: 납품 대금 지급 기한 관리 시스템을 자동화하고, 납품업자에게 비용을 요구하는 모든 경우에 대해 계약서 기재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판촉·체험단 행사 정산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5.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 마케팅 담당자뿐 아니라 CEO의 문제
표시광고법 위반은 건수가 많지만 건당 과징금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소비자 신뢰 훼손과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라는 무형의 비용은 훨씬 크다. 2024년에는 라돈 저감 허위 광고, 원목 소재 허위 표시, SNS 인플루언서 뒷광고 등 53건이 제재를 받았다.
뒷광고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모두에게 책임이 돌아온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하는 기업이라면 광고 표시 여부를 계약 조건으로 명문화하고 실제 게시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
관리 인사이트: 신제품 출시 전 제품 효능·원료 관련 표현을 법무 또는 외부 전문가가 검토하는 절차를 수립해야 한다. 마케팅 캠페인 기획 단계부터 광고임을 명시하는 기준을 정책화해야 한다.
6.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 — 디지털 서비스 기업의 숨겨진 리스크
이용약관이나 구매 조건서에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포함시키면 약관규제법 위반이 된다. B2C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앱 서비스 약관, 환불 정책, 개인정보 처리 동의서 등에 이 법이 적용된다. 불공정 약관은 사업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다가 소비자 불만이나 경쟁사 신고를 계기로 한꺼번에 터지는 패턴을 보인다.
관리 인사이트: 약관을 최소 연 1회 법무 검토를 통해 갱신해야 한다. 새로운 서비스나 요금제를 도입할 때마다 약관 적합성을 사전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를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경영자를 위한 공정거래 리스크 관리 5대 원칙
하나. 자율준수프로그램(CP)을 형식이 아닌 실질로 운영해야 한다. 2024년부터 CP 우수 운영 기업에게 과징금 감경 인센티브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공정위가 A등급 이상 기업에 직권조사를 면제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투자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리스크 관리 수단이다.
둘. CEO가 직접 준법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공정위는 CP 운영의 핵심 요건 중 하나로 최고경영자의 공개적 의지 표명을 명시하고 있다. 내부에서만 통하는 준법 문화는 외부 감시가 들어오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셋. 고발 리스크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공정위는 2024년 처리 사건 중 30건에 대해 형사 고발을 실시했다. 기업 법인뿐 아니라 담합을 주도하거나 위반 행위를 지시한 임원 개인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넷. 내부 신고 채널을 실질화해야 한다. 법 위반 행위가 자진 시정되거나 조사에 협조한 경우 과징금이 최대 20% 감경된다. 내부 고발자가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기업에게도 이익이다.
다섯. 업종별 맞춤 리스크 지도를 그려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과 수수료 구조, 제조업은 담합과 하도급, 유통업은 납품 관행, 프랜차이즈는 가맹 계약 조건이 각각 핵심 위험 지점이다. 모든 법령을 동일한 비중으로 관리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마치며
4건 중 1건꼴로 불복 소송이 제기될 만큼 기업들이 공정위 제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공정위의 소송 승소율은 2024년 역대 최고인 83.1%를 기록했다. 법정에 가서 이기는 전략보다 애초에 제재를 받지 않는 전략이 훨씬 현명하다. 공정거래법은 더 이상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 스타트업, 중견기업 어디서든 시장에서 일정한 지위를 갖는 순간 공정거래법은 경영자의 일상 리스크가 된다. 지금 당장 우리 회사의 공정거래 리스크 지도를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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