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익거래의 기회가 된 한국 시장,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최근 한국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생소했던 주주 행동주의가 이제는 시장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맞물려 정책적 지원까지 더해지며 행동주의는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단기적 투기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과연 한국형 행동주의는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이끌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행동주의의 부상: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상법 개정
한국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가 급부상한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이다. 한국 기업들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려는 움직임은 행동주의 펀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명시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기반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연기금, 자산운용사, 개인투자자, 심지어 ETF까지 행동주의에 동참하며 그 파급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제 행동주의는 특정 펀드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상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행동주의의 본질: '정의'가 아닌 '수익률 게임'
하지만 행동주의의 본질을 '정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행동주의는 도덕적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수익률 게임'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IRR(내부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공학적 전략을 구사한다.
펀드의 만기가 3~7년으로 정해져 있고,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 구조는 펀드가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통해 조기에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유인을 강하게 만든다. 이러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행동주의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요구의 진짜 이유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에 배당 확대를 요구하거나 자사주 소각을 촉구하는 것을 단순히 주주환원이라는 미명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레버리지 투자 구조에서 현금흐름을 확보해 IRR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배당은 레버리지 이자 상환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여 펀드의 수익률을 방어하는 핵심적인 수단이 된다. 마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펀드의 수익률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역설적 활용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시장의 구조적 약점들이 행동주의 펀드에게는 차익거래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높은 상속세, 지주회사 저평가,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이 대표적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이러한 대주주의 사익 편취 이슈를 공론화하여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실현한다.
이러한 방식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역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마치 "상처는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는 속담처럼,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행동주의에 양면의 칼날이 되고 있다.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의 동전 양면
행동주의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하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압박을 통해 대리인 비용을 감소시키고, 배당 성향 제고와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SM엔터테인먼트 사례처럼 소수 지분으로도 지배구조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단기 차익 중심의 '먹튀' 가능성, 사모펀드 구조로 인한 투명성 부족, '늑대 떼 전략'과 같은 법망 회피 전술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또한, R&D나 설비 투자 축소로 이어져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필요한 제도 개선 방향
한국형 행동주의가 자본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수적이다. 첫째, 상속세와 세제 개편을 통해 대주주의 편법 유인을 줄여야 한다. 둘째, 이사의 충실의무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여 주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셋째, 단기 행동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 예를 들어 지분 보유 기간 요건 등을 검토해야 한다. 넷째, 장기 관여형 행동주의를 유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개편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을 통해 한국형 행동주의가 기업 가치 향상과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시장의 변화는 마치 조각가가 돌을 깎는 과정과 같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필요한 부분을 다듬어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한다."
우리는 지금 한국 자본시장이라는 거대한 돌을 깎는 과정에 서 있다. 행동주의는 그 과정에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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