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2024년 주요 화재 사고 — 불길이 꺼진 자리에 남은 것들

2024년 특수건물 화재통계·안전점검 결과분석 보고서에는 올해 발생한 주요 화재 사고 4건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리튬전지 공장에서 호텔까지, 업종도 규모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각 사고를 하나씩 들여다본다.


사고사례 1. 경기도 화성 1차전지 제조 공장 화재

2024년 6월 24일 | 사망 23명, 부상 8명 | 재산피해 약 113억 4,000만 원

무슨 일이 있었나

오전 10시 30분, 3동 2층 포장 작업장에서 리튬 1차전지의 열폭주가 시작되었다. 불과 42초 만에 작업장 전체가 검은 연기에 뒤덮였다. 초진까지 약 4시간 반, 완전 진화까지는 22시간이 걸렸다. 이 자리에서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발화 원인은 리튬 1차전지 내부 단락에 의한 열폭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배경이 더 심각하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2024년 5월부터 배터리를 무리하게 생산했고, 발열 이상이 감지된 불량 배터리조차 납품 대상에 포함시켰다. 화재 발생 이틀 전에는 전해액 주입 과정에서 폭발한 배터리가 있었음에도, 동일 생산 라인의 배터리를 별도 조치 없이 화재 발생 장소로 이동시켰다.

구조적 문제도 겹쳤다. 2층 작업장은 간막이벽으로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고, 1층 피난 계단에 도달하려면 출입문 3개를 통과해야 했다. 피난 동선이 막혀 있는 구조였다. 설상가상으로 작업장 출입구 바로 근처에 리튬배터리가 다량 적재되어 있어, 최초 발화 지점이 탈출 경로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전해액으로 사용된 염화티오닐(SOCl₂)은 급성독성물질이며, 140℃ 이상으로 가열되면 분해되어 물과 접촉 시 염화수소와 황화수소를 발생시킨다. 화학무기금지협약에 등재된 물질이다. 작업자들은 이러한 위험성을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리튬전지 제조 공장은 일반 사업장과 다른 차원의 피난 대책과 안전관리체계가 필요하다. 불량 배터리에 대한 즉각 격리 조치, 열폭주 특성에 맞춘 작업자 교육, 피난 동선 확보와 실제 훈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화재 이후 이 회사는

23명 사망이라는 전례 없는 인명 피해로 인해 회사는 형사 수사 대상이 되었다. 납품 압박 속에 이상 배터리를 방치하고 무리한 생산을 강행한 경영 판단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재산피해 외에도 배상 책임, 수사, 사업 정지 가능성이 중첩되어 기업의 존속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사고사례 2. 경기도 화성 철선 제조 공장 화재

2024년 3월 3일 | 인명피해 없음 | 재산피해 약 39억 5,000만 원

무슨 일이 있었나

낮 12시 13분, 산세동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완진까지 약 6시간 30분이 걸렸고, 40억 원에 육박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산처리(산세) 설비 통로에 설치된 일반형 콘센트와 전선이 문제였다. 이 구역에는 부식성 가스가 상시 발생하는데, 6~8개월 전 외부 업체가 해당 통로에 타이머와 콘센트 등의 전기설비를 그대로 설치했다. 부식성 가스가 전선 절연체를 서서히 열화시켰고, 결국 절연이 파괴되면서 아크 열이 발생해 착화로 이어졌다.

전기설비기술기준 제62조는 부식성 가스가 발생하는 장소에는 절연 열화 방지를 위한 예방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방식도료를 칠한 밀폐 금속관이나 기밀형 합성수지관을 써야 하고, 콘센트 내부로 부식성 가스가 침입할 수 없는 구조의 설비를 사용해야 한다. 이 공장은 이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부식성 물질이 있는 환경에서는 일반 전기설비 사용이 금지된다. 전기 설비를 설치하거나 변경할 때 반드시 해당 작업 환경의 특성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규격의 기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외부 업체에 작업을 맡길 때도 이 기준 충족 여부를 발주처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

화재 이후 이 회사는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약 40억 원의 재산피해로 생산 시설 상당 부분이 손상되었다. 기준을 위반한 전기 설비 설치 경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설비 교체와 보수, 관련 기관의 사후 점검이 불가피했다. 생산 중단 기간 동안의 기회비용까지 합산하면 실질 피해 규모는 재산피해 추산액을 훨씬 웃돌았을 것이다.


사고사례 3. 충청북도 청주 플라스틱 제품 제조 공장 화재

2024년 7월 8일 | 인명피해 없음 | 재산피해 약 25억 9,000만 원

무슨 일이 있었나

오전 11시 55분, 1공장동(A동) 내 지게차 충전 구역에서 불이 붙었다. 소방서 신고는 4분 뒤인 11시 59분에 접수되었고, 완진까지 약 6시간 13분이 소요되었다. A동과 B동을 중심으로 연소가 확산되었으며, 지붕과 내외부 벽체가 붕괴될 정도로 화재 규모가 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전기 지게차 2대를 충전하던 중, 지게차의 충전 플러그와 충전 커넥터 간 접촉 불량으로 인한 단락이 발화 원인으로 추정된다. 충전 플러그와 커넥터의 접속 상태가 불량하면 접촉 저항이 높아지고, 이때 발생하는 열이 주변 가연물을 착화시킨다. 전기 지게차의 경우 충전 플러그와 커넥터의 정기 점검과 교체 주기 관리가 필수적이다.

건물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붕괴로 인해 화재 원인 조사를 위한 연소 확대 경로 분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전기 지게차의 충전 플러그와 커넥터는 반복 탈착 과정에서 접촉부가 마모되거나 이물질이 유입되어 접촉 불량이 발생하기 쉽다. 정기 점검과 이상 발열 여부 확인이 필수다. 충전 구역은 가연물과 충분한 거리를 두고 운영해야 하며, 충전 중 무인 방치를 최소화하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화재 이후 이 회사는

약 26억 원의 재산피해와 더불어 A동과 B동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작업장, 창고, 경비실 등 다수의 건물에 피해가 미쳤으며, 생산 라인 전체가 일시 중단되었다. 스프링클러가 작업장 일부에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화재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충전 구역의 안전관리 부재가 사업 지속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사고사례 4. 경기도 부천 호텔 화재

2024년 8월 22일 | 사망 7명, 부상 12명 | 재산피해 약 1억 4,800만 원

무슨 일이 있었나

저녁 7시 39분, 7층 객실에서 불이 났다. 소방대가 4~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18분 만에 대응 2단계를 발령했지만, 연기와 유독가스로 인해 사망 7명, 부상 12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완진은 신고 후 약 2시간 47분 만에 이루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원인은 객실 내 벽걸이 에어컨의 배선 불량이었다. 실내기와 실외기를 연결하는 전원선 두 가닥을 절연 테이프로만 접착해 연결한 상태였고, 이 연결부의 접촉이 불량하여 국소 발열이 발생하면서 착화되었다. 불은 전선 피복에서 시작해 소파로 번졌다.

여기서 피해를 키운 세 가지 요인이 겹쳤다.

첫째, 화재 수신기가 작동하자 호텔 매니저가 소방시설과의 연동을 임의로 차단했다. 현장 확인 후 다시 작동시켰으나 이미 화재 발생 2분 24초가 지난 시점이었고, 불은 발화 지점을 벗어나 확산 중이었다.

둘째, 피난 기구 관리가 엉망이었다. 기준에 따라 객실마다 간이완강기가 있어야 하지만, 전체 객실의 약 50%인 31개 객실에 완강기가 없었고, 9개 객실의 로프 길이는 각 층 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에어매트는 사용 가능 기간을 초과한 상태였고, 바닥에 고정되지 않은 채로 투숙객들이 연속으로 뛰어내리면서 사망자가 늘었다.

셋째, 2003년 건축허가 당시 기준에 따라 지상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건물은 설치된 건물에 비해 화재 1건당 평균 인명피해가 1.7배, 재산피해가 3.9배 높다는 통계가 이 사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전선 접속부는 반드시 전기저항이 증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공해야 한다. 절연 테이프 단독 처리는 기준 위반이다. 소방시설 연동 차단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피난 기구는 수량, 로프 길이, 유효 기간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며, 구형 건물의 스프링클러 소급 설치 필요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화재 이후 이 회사는

7명 사망이라는 중대 재해로 인해 호텔은 즉각 영업 중단 상태에 놓였다. 피난 기구 관리 부실, 소방시설 연동 차단, 전기 시설 불량 시공 등 복수의 법적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서 형사 처벌과 민사 배상 책임이 동시에 제기되었다. 재개업은 사실상 불투명한 상태이며, 매출 손실과 법적 비용이 누적되면서 사업 존속 가능성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함께 힘써야 하는 이유 — 불이 나면 직장도 없어진다

위 4건의 사고를 보면 원인은 제각각이다. 납품 압박으로 인한 불량 배터리 방치, 부식성 환경에서의 규격 외 전기 설비 설치, 지게차 충전 플러그 관리 소홀, 에어컨 전선 불량 시공과 소방시설 연동 차단. 그러나 결과는 하나로 수렴한다. 기업이 큰 타격을 입거나 존속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화재는 경영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업원도 마찬가지다. 화재가 발생하면 경영자는 형사 책임과 민사 배상을 떠안고, 종업원은 일터를 잃는다. 23명이 사망한 화성 리튬전지 공장은 회사 자체의 존속이 불투명해졌다. 7명이 사망한 부천 호텔은 재개업이 사실상 막혔다. 그 공장과 호텔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직장도 함께 사라졌다.

화재 예방은 경영자의 투자와 종업원의 실천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작동한다. 경영자가 아무리 소방 설비를 갖춰도 종업원이 소방시설 연동을 임의로 차단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종업원이 아무리 조심해도 경영자가 납품 압박을 이유로 불량 제품을 방치하면 재앙이 된다. 안전은 누군가 혼자 지키는 것이 아니다. 조직 전체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만 지켜진다.

불이 나면 건물만 타는 게 아니다. 일자리도, 사업도, 사람도 함께 사라진다.


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반드시 알아야 할 공정거래법 리스크 — 법령별 영향과 실전 관리 전략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총액은 4,227억 원이다. 불과 124건의 사건에서 나온 숫자다. 쿠팡은 PB상품 검색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단 한 건에 1,628억 원을 부과받았고, KH그룹은 입찰 담합으로 510억 원, CJ프레시웨이는 부당 내부거래로 245억 원을 물었다. 이제 공정거래법은 단순한 '준법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기업의 생존과 경영자 개인의 형사 책임까지 직결되는 최전선 리스크다. 공정위 소관 6개 주요 법령별로 경영자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리스크와 관리 인사이트를 정리한다.


1.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 담합·시장지배적 지위 남용·부당지원

공정거래법은 경쟁 질서를 지키는 헌법과 같은 법이다. 위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경영자가 각각 다른 맥락에서 노출된다.

첫째,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다. 경쟁사 직원과 가격이나 물량을 단 한 차례만 논의해도 담합이 성립할 수 있다. 골프장, 업계 협회 모임, 식사 자리가 수천억 과징금의 시작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24년에도 건설사 발주 가구 입찰, 반도체 제어감시시스템 입찰, 알펜시아 리조트 매각 입찰 등 다양한 산업에서 담합 적발이 잇따랐다.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부과되며, 법인 고발과 함께 담합을 주도한 임원 개인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다. 쿠팡 PB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색 알고리즘을 자사 상품에 유리하게 조작한 행위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판단되어 1,62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차단' 사건(151억 원)도 같은 맥락이다. 플랫폼 기업이라면 알고리즘, 수수료 정책, 데이터 활용 방식이 모두 잠재적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영진이 인식해야 한다.

셋째, 부당지원행위 및 사익편취다. 계열사 간 거래에서 시장 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몰아주거나,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자원을 집중하면 사익편취 혐의를 받는다. 2024년에는 총수 일가 보유 자회사에 대규모 공사 일감을 제공하거나 계열사에 인력을 파견해 인건비를 대신 부담한 행위가 제재를 받았다.

관리 인사이트: 경쟁사와의 접촉은 반드시 법무 또는 준법 부서의 사전 확인을 거쳐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 변경 시 경쟁 영향을 사전 검토하는 내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계열사 거래는 이사회 의결과 가격 적정성 검토를 문서로 남기는 것이 필수다.


2.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 원사업자가 가장 빈번하게 걸리는 법

하도급법은 위반 사건 건수 기준으로 공정위 제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갖기 때문에, 일상적인 구매·발주 행위가 곧바로 법 위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위반 유형은 부당한 하도급대금 감액, 기술자료 요구·유용, 부당 반품, 경제적 이익 제공 강요 등이다. 2024년부터는 하도급대금 연동제가 본격 시행되어,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폭 이상 변동하면 하도급 대금도 의무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면 즉시 위반이 된다. 또한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는 반드시 법정 서면을 교부해야 하며, 구두·이메일만으로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 이유만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2024년에 공개됐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무시할 수 없다. 기술 유용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가 2024년 법 개정으로 3배에서 5배까지 확대됐다. 기술 탈취 혐의가 인정되면 행정 과징금에 더해 민사 손해배상까지 이중으로 부담해야 한다.

관리 인사이트: 발주·구매 담당자가 하도급법의 금지 행위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 기술자료 요구는 반드시 법정 서면으로, 대금 감액 시에는 정당한 사유와 근거를 문서로 확보해야 한다. 연동제 대상 계약은 별도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 프랜차이즈 본부의 핵심 리스크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의 정보 비대칭과 지위 격차를 규율한다. 필수품목 강제 구매, 판촉비 전가, 영업 구역 침해, 계약 해지 남용 등이 주된 위반 유형이다.

공정위는 2024년 필수품목 관련 제도 개선과 불공정 행위 조사에 역량을 집중했다.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의 경영 활동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도 규제가 강화됐다. 경영자 입장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정보공개서 미등록·허위 작성, 광고비·판촉비를 가맹점주에게 부당하게 분담시키는 행위, 허가 없이 영업 구역 내에 직영점이나 타 가맹점을 개설하는 행위다.

관리 인사이트: 가맹본부는 정보공개서를 매년 갱신하고 공정위 등록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가맹점주와의 모든 계약 조건 변경은 충분한 사전 안내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광고·판촉 비용 분담 기준을 계약서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4.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 유통 플랫폼·대형마트의 뜨거운 이슈

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자 사이의 거래를 규율한다. 쿠팡이 2024년 이 법을 포함한 복수의 위반 혐의로 제재를 받은 것이 상징적이다.

주요 위반 유형은 상품대금 지연 지급, 판촉비·광고비 전가, 목표 이익률 강요, 경영 활동 간섭 등이다. 쿠팡 사례에서 드러났듯, 2만 5,000여 납품업체에 대금을 법정 기한을 넘겨 지급한 행위는 대규모 조직에서 현장 담당자 수준의 관행이 법 위반으로 이어진 경우다. 체험단 비용 미반환 등 소규모 갑질도 적발 대상이 됐다.

관리 인사이트: 납품 대금 지급 기한 관리 시스템을 자동화하고, 납품업자에게 비용을 요구하는 모든 경우에 대해 계약서 기재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판촉·체험단 행사 정산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5.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 마케팅 담당자뿐 아니라 CEO의 문제

표시광고법 위반은 건수가 많지만 건당 과징금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소비자 신뢰 훼손과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라는 무형의 비용은 훨씬 크다. 2024년에는 라돈 저감 허위 광고, 원목 소재 허위 표시, SNS 인플루언서 뒷광고 등 53건이 제재를 받았다.

뒷광고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모두에게 책임이 돌아온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하는 기업이라면 광고 표시 여부를 계약 조건으로 명문화하고 실제 게시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

관리 인사이트: 신제품 출시 전 제품 효능·원료 관련 표현을 법무 또는 외부 전문가가 검토하는 절차를 수립해야 한다. 마케팅 캠페인 기획 단계부터 광고임을 명시하는 기준을 정책화해야 한다.


6.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 — 디지털 서비스 기업의 숨겨진 리스크

이용약관이나 구매 조건서에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포함시키면 약관규제법 위반이 된다. B2C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앱 서비스 약관, 환불 정책, 개인정보 처리 동의서 등에 이 법이 적용된다. 불공정 약관은 사업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다가 소비자 불만이나 경쟁사 신고를 계기로 한꺼번에 터지는 패턴을 보인다.

관리 인사이트: 약관을 최소 연 1회 법무 검토를 통해 갱신해야 한다. 새로운 서비스나 요금제를 도입할 때마다 약관 적합성을 사전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를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경영자를 위한 공정거래 리스크 관리 5대 원칙

하나. 자율준수프로그램(CP)을 형식이 아닌 실질로 운영해야 한다. 2024년부터 CP 우수 운영 기업에게 과징금 감경 인센티브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공정위가 A등급 이상 기업에 직권조사를 면제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투자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리스크 관리 수단이다.

둘. CEO가 직접 준법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공정위는 CP 운영의 핵심 요건 중 하나로 최고경영자의 공개적 의지 표명을 명시하고 있다. 내부에서만 통하는 준법 문화는 외부 감시가 들어오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셋. 고발 리스크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공정위는 2024년 처리 사건 중 30건에 대해 형사 고발을 실시했다. 기업 법인뿐 아니라 담합을 주도하거나 위반 행위를 지시한 임원 개인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넷. 내부 신고 채널을 실질화해야 한다. 법 위반 행위가 자진 시정되거나 조사에 협조한 경우 과징금이 최대 20% 감경된다. 내부 고발자가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기업에게도 이익이다.

다섯. 업종별 맞춤 리스크 지도를 그려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과 수수료 구조, 제조업은 담합과 하도급, 유통업은 납품 관행, 프랜차이즈는 가맹 계약 조건이 각각 핵심 위험 지점이다. 모든 법령을 동일한 비중으로 관리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마치며

4건 중 1건꼴로 불복 소송이 제기될 만큼 기업들이 공정위 제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공정위의 소송 승소율은 2024년 역대 최고인 83.1%를 기록했다. 법정에 가서 이기는 전략보다 애초에 제재를 받지 않는 전략이 훨씬 현명하다. 공정거래법은 더 이상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 스타트업, 중견기업 어디서든 시장에서 일정한 지위를 갖는 순간 공정거래법은 경영자의 일상 리스크가 된다. 지금 당장 우리 회사의 공정거래 리스크 지도를 점검해야 한다.


2025년 12월 17일 수요일

2025년, RIMS가 선정한 ‘올해의 리스크’: 우리가 마주한 세계의 민낯

2025년은 전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에 흔들린 해였다.  

RIMS(Risk and Insurance Management Society) 산하 Risk Management Magazine은 매년 가장 중요한 리스크 사건들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2025년 12월 17일 공개된 올해의 리뷰는 그야말로 “위험의 백과사전”이라 부를 만했다.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 기술 인프라 붕괴, 기업 평판 위기, 규제 강화까지—2025년은 리스크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증폭되는 ‘복합 리스크의 시대’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기후 변화가 만든 재난의 연쇄

2025년의 시작은 LA 대형 산불이었다. 1월 7일, 남부 캘리포니아는 57,000에이커가 불타고 30명 이상이 사망하는 초대형 산불을 겪었다. 보험 손실만 400억 달러, 경제적 피해는 최대 2,500억 달러로 추정되며 미국 역사상 가장 비용이 큰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어진 사건들도 기후 변화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 미얀마 규모 7.9 지진, 사망자 5,300명 이상
  • 캐나다 ‘좀비 화재’, 6,000건 이상 산불 발생
  • 허리케인 멜리사, 자메이카 상륙 후 100억 달러 피해
  • 텍사스 홍수, 단 45분 만에 강 수위 26피트 상승, 135명 사망

이 모든 사건은 기후 변화가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시스템 리스크임을 보여준다.

기술 인프라의 취약성: AWS 장애가 드러낸 현실

2025년 10월, 전 세계 7만 개 조직이 동시에 멈춰 섰다. 바로 AWS의 대규모 장애 때문이다. 자동화 소프트웨어 버그 하나가 글로벌 플랫폼을 연쇄적으로 마비시켰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 클라우드 집중화가 가져온 위험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CyberCube는 이를 “체계적 클라우드 집중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리스크: 정책 하나가 세계 시장을 흔들다

2025년은 정치적 결정이 경제와 기업 운영에 얼마나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해이기도 했다.

  • 미국의 대규모 관세 정책: 트럼프 행정부는 거의 모든 교역국에 기준 10%,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세계 시장은 즉각적으로 요동쳤고, 소비자들은 관세 비용의 55%를 부담하게 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 사상 최초의 연방정부 셧다운: 10월 1일 시작된 셧다운은 무려 43일간 지속되며 미국 경제에 최대 1.5%의 GDP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기업 평판 리스크: 한 번의 결정이 수십억 달러를 흔들다

  • 타겟(Target)의 DEI 철회: DEI 프로그램을 철회한 타겟은 소비자 반발로 시가총액 124억 달러 감소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 M&S 랜섬웨어 공격: 영국의 마크스 앤 스펜서는 랜섬웨어 공격으로 온라인 거래가 중단되며 10억 파운드의 시장 가치 손실을 입었다.
  • 스타벅스 노동법 위반: 뉴욕시 역사상 최대 규모인 3,890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며 평판 리스크의 무게를 실감했다.

규제와 법적 리스크의 확산

2025년은 규제 강화의 흐름이 글로벌하게 확산된 해였다.

  • AI 저작권 소송 판결, 일부 기업 승소하지만 판사는 “많은 경우 불법이 될 것”이라 언급 
  • EU의 빅테크 제재, 구글에 35억 달러 벌금 부과
  • PFAS 오염 사건, 이탈리아 전 임원 11명에게 총 141년형 선고

규제 환경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기업들은 단순한 준법을 넘어 지속 가능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

2025년이 남긴 메시지: 복합 리스크의 시대

RIMS의 ‘Year in Risk 2025’는 올해의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RIMS의 보고서는 우리가 지금 서로 연결된 리스크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강조한다.

  • - 기후 변화는 자연재해를 넘어 경제·정치 시스템까지 흔들고  
  • - 기술 인프라 장애는 글로벌 운영을 멈추게 하며  
  • - 정치적 결정은 공급망과 시장을 뒤흔들고  
  • - 기업의 평판 리스크는 즉각적인 재무적 충격으로 이어진다  

2025년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리스크는 더 이상 개별 사건이 아니다. 서로 연결되고, 증폭되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나타난다.”

2026년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단순한 대응을 넘어 선제적이고 통합적인 리스크 관리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2025년 12월 6일 토요일

2025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 SK하이닉스·세아홀딩스

'2025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이란?

에티스피어(Ethisphere)는 미국에 본부를 둔 글로벌 기업 윤리 전문 연구기관이다. 매년 기업의 윤리 수준을 정량·정성적으로 평가해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World's Most Ethical Companies)'을 발표한다. 단순한 CSR 활동이나 홍보성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과 이행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특징이다.

2025년 선정 결과에는 19개국, 44개 산업 분야에서 총 136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평가 기준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윤리 및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실질적 운영 여부. 둘째, 기업 거버넌스 구조의 투명성. 셋째, 환경 및 사회적 영향. 넷째, 리더십과 평판이다. 이 기준들은 단발성 성과가 아닌 기업 문화 전반에 윤리가 얼마나 내재화되어 있는지를 본다.


한국 기업의 선정 의미와 가치

이번 선정에서 국내 기업으로는 SK하이닉스와 세아홀딩스, 두 곳이 포함됐다.

SK하이닉스는 국내 반도체 기업 최초이자 유일하게 2025년 명단에 진입했다. 반도체 산업은 공급망이 복잡하고 환경 부하가 크며,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얽혀 있는 분야다. 그 안에서 글로벌 윤리 기준을 충족했다는 것은 단순한 수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HBM을 중심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이 타이틀은 글로벌 파트너와의 신뢰 구축에 실질적인 레버리지로 작용할 수 있다.

세아홀딩스는 국내 기업 최초로 2년 연속 선정되는 기록을 세웠다. 철강·소재 기업이 이 명단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제조업 특성상 환경 영향과 공급망 윤리 이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2년 연속이라는 결과는 일시적 대응이 아닌 지속적인 시스템 운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 기업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이번 결과는 국내 기업의 ESG 경영이 '보여주기'에서 벗어나 국제 기준에서도 통용되는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의 윤리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조달 파트너 선정이나 투자 유치 과정에서도 유리한 포지션을 점할 수 있다.


선정된 기업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부터 보면, 이번 명단에 오른 기업들은 모두 윤리경영을 비용이 아닌 경쟁력으로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HCA Healthcare는 15회 선정, Oshkosh Corporation은 10년 연속, Flex와 Milliken & Company는 3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렸다. 장기 반복 선정 기업들의 공통된 특징은 컴플라이언스가 별도 부서의 업무가 아니라 경영 전략에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신뢰를 우선하는 경영 철학이 조직 전반에 깔려 있다.

차이점은 산업군과 성숙도에서 나타난다. 오랜 기간 선정된 미국·유럽 기업들은 이미 윤리경영 시스템이 제도화된 상태고, 에티스피어 선정 자체가 그 시스템의 정기적 검증 수단으로 기능한다. 반면 SK하이닉스와 세아홀딩스는 상대적으로 이 기준에서 신진 플레이어다. 글로벌 기준에 처음 부합했거나 연속성을 막 쌓기 시작한 단계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지속 여부가 실질적인 시험대가 된다.

결국 에티스피어 선정은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명단에 오르는 것보다 매년 그 기준을 유지하고 갱신하는 과정 자체가 기업의 윤리 역량을 증명한다.


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DEI 프로그램을 없애면 생기는 일 — 간과하는 세 가지 위험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DEI(Diversity, Equity & Inclusion)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치적 압력에 반응하는 것이든, 비용 절감을 위한 결정이든 간에 — 많은 경영진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DEI를 없애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리스크 관리 전문 매체 *Risk Management Magazine(RIMS)*에 실린 제니퍼 포스트(Jennifer Post)의 분석을 토대로, DEI 축소가 기업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정리한다.


1. 법적 리스크 — 소송의 문이 열린다

DEI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차별을 예방하는 구조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이 장치를 없애면 여성, 유색인종, LGBTQIA+ 직원 등 소수자 집단이 차별적 처우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곧 소송 리스크로 이어진다.

"DEI를 없앴으니 역차별 걱정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경영진도 있지만, 현실은 반대 방향의 소송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 금지 교육이 사라지고, 공정한 채용·승진 프로세스가 느슨해지면 — 법적 분쟁의 빌미가 더 많아진다.


2. 인재 리스크 — Z세대는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DEI에 냉소적인 경영진이라도 이 수치는 무시하기 어렵다. Z세대의 61%는 DEI를 지지하지 않는 기업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 역시 포용적인 조직 문화를 직장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꼽는다.

채용 시장이 치열한 지금,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데 DEI는 단순한 '사회적 책임' 그 이상이다. DEI를 없앤 기업은 조용히 인재 풀이 좁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아 있는 직원들의 이탈도 뒤따를 수 있다 — 특히 다양성을 중시하는 핵심 인재일수록.


3. 재무·평판 리스크 — 고객도 보고 있다

경영진의 77%가 DEI는 재무성과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81%는 고객 충성도와 연관된다고 답했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69%는 DEI를 적극 지지하는 기업에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DEI를 철회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순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바뀔 수 있다. 특히 MZ세대 소비자층이 주요 타깃인 기업이라면 이 리스크는 더욱 크다.

평판 리스크를 피하려는 시도로 많은 기업이 DEI라는 단어 대신 '직원 참여', '직장 문화', '소속감' 같은 표현으로 재브랜딩하고 있다. 이 전략이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 없이 용어만 바꾼다면 — 오히려 위선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포스트의 분석이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폐지보다 조정이다.

  • DEI 프로그램을 축소하기 전, 전면적인 위험 평가를 먼저 실시할 것
  • 조직의 가치와 목표에 맞게 프로그램을 재설계하고 필요하다면 재브랜딩할 것
  • 차별 금지 교육은 유지하고, DEI의 핵심 원칙을 일상적인 업무 프로세스에 내재화할 것
  • DEI는 한 번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

마치며

정치적 흐름에 따라 DEI를 없애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몰고 오는 법적 분쟁 비용, 인재 손실, 고객 이탈은 결코 작지 않다.

DEI는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리스크 관리의 문제다.


참고: Jennifer Post, "The Risks of Rolling Back DEI", Risk Management Magazine (RIMS), 2025년 11월 25일